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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의 세설사설] 참담한 ‘재판거래’ 의혹, ‘디케의 칼’이 두렵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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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6-10 19:03:20
  •  |  본지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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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재판 거래’ 의혹으로 시끄럽다. 사법 파동을 넘어 사법 위기 수준이다.삼권분립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나라에서 대법원장이 상고법원을 따내겠다고 대통령에게 은밀한 거래를 제의했다니 참으로 참담하다. 현실이 이 지경이니 국민들이 앞으로 재판 결과에 승복하겠나.

대법원 청사엔 수건으로 두 눈을 가리고 한 손에 저울을 한 손에 법서를 든 정의의 여신 디케의 동상이 있다. 엄격하고 공평한 법의 잣대로 재판에 임하라는 것이다. 국민은 지금 묻고 있다. 두 눈을 가린 수건엔 처음부터 눈구멍이 나 있지 않았나? 그 저울의 한쪽엔 미리부터 쇳덩이가 놓여 있지 않았나? 디케의 칼은 당신 자신들에겐 향하지 않나? 당신들은 답변할 책임이 있다.


   
이번 주는 나라의 앞날을 가늠하는 중요한 이벤트가 겹친 ‘골든 위크’다. 당장 내일 대망(?)의 ‘북미 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열린다. 모레는 지방선거일이다. 그 일들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게다. 이번 주 내내 그 이야기로 신문 방송이 도배되겠지.

애초엔 나도 북미 정상회담이나 지방선거를 쓰려고 했던 터다. 그러다 화두(?)를 ‘재판 거래 의혹’으로 바꿨다. 사법부는 세상의 마지막 보루여서 바깥에서 입방아 찧는 게 능사는 아니라 여겨 말 보태는 걸 삼갔던 터였다. 그랬는데 돌아가는 꼴이 심상찮다. ‘사법 파동’ 수준에서 ‘사법 위기’를 거쳐 ‘사법 내란’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지 않나. 글쎄, 이거야말로 광역단체장 몇 석, 국회의원 몇 석을 어느 당이 더 얻나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가 아닌가.

다들 아시겠지만 경과를 간단히 짚어보면 이렇다.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충격적인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상고법원’ 설치에 목맨 전임 양승태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가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정권에 ‘재판 거래’를 시도한 정황이 담긴 문건이 다수 발견됐다는 거다. 시국 사건이나 정권에 부담이 되는 사건에 대해 정권의 입맛에 맞춘 판결을 내리고 그걸로 대통령에게서 반대급부를 얻어내려 하지 않았느냐는 거다.

‘재판 거래 의혹’을 받는 사건엔 당시 시국 현안이 망라돼 있다. 통합진보당 관련 재판, 전교조 법외노조화처럼 정권이 기획한 굵직한 사건이 있는가 하면, KTX 승무원 및 쌍용차 정리해고 사건, 철도노조 파업 등 민생과 노동 관련 사건도 있다. 결과적으로 정권의 이해관계를 충실히 반영한 판결들이다. 세월호 사건의 재판부를 수뇌부 입맛대로 구성하려던 정황도 드러났다. 게다가 말 안 듣고 삐딱한, 이른바 ‘승포판(승진을 포기한 판사)’들을 뒷조사해 블랙리스트를 만들지 않았느냐는 의혹도 나왔다. 지목된 400여 건의 문건 중 공개된 것은 100여 건에 지나지 않으니 어떤 의혹이 더 튀어나올지 모른다.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의 제목도 가관이다.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 추진을 위한 BH(청와대)와의 효과적 협상 추진전략’. 이게 도대체 법원의 문건인가, 로비스트의 제안서인가. ‘최근의 우호적 분위기 등 적극 활용, 박지원 의원 일부 유죄 판결, 원세훈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 등 여권에 유리한 재판 결과→BH에 대한 유화적 접근 소재로 이용 가능’ 따위가 적힌 문건 내용은 읽는 사람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든다. ‘상고법원 판사 임명에 대통령님 의중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란 구절도 있다니 그야말로 절창(?)이랄밖에.

도무지 일국의 최고 사법기관에서 생산된 문건이라고는 차마 믿을 수 없다. ‘상고법원’을 따내기 위해 대통령을 설득하려던 건 맞지만 의도적으로 재판을 왜곡한 것까진 아니고 이미 나온 판결 중에서 대통령의 구미에 맞는 걸 골라 생색내려던 거였다고? 무슨 변명이 이렇게 구질구질한가. 삼권분립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나라에서 사법 정의를 대표하는 대법원장이 대통령을 만나 ‘우리가 정권 운영에 이렇게 협조했으니 대가를 주시오’ 따위의 구구하고 은밀한 대화를 나눴을 거란 상상만으로도 참담하다.
우리나라 사법부엔 치부와 상처가 적지 않다. 조봉암과 민족일보 조용수, 인혁당에 대한 사형 선고 등등에 유신헌법 개헌의 ‘개’자만 꺼내도 15년형을 정찰제로 선고한 과거까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는 몇 차례 사법 파동도 겪었다. 하지만 그때의 허물이 독재 권력의 압력에 버티지 못했던 것이라면, 그나마 일선 판사들이 최소한의 기개를 보이기라도 했다면, 이번엔 사법부 수뇌 스스로 권력에 투항한 것이니 더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대통령과 정부의 권력 남용에 맞서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할 사명을 진 사법부 수장의 처신이 그랬다면 그는 대통령의 ‘애완견’을 자청했다고 할밖에. ‘애완견’이란 말이 무엄한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에 동조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를 두고 영국 언론은 ‘부시의 푸들’이라고 불렀다. 블레어는 그나마 국익이라는 변명거리를 내세웠지만 스스로 ‘VIP’의 품에 파고들어 가 재판을 ‘마사지’해 드렸다고 아양을 떠는 대법원장에게 붙여드릴 다른 마땅한 애칭(?)을 나는 찾아내지 못했다.

이러니 재판 받은 당사자들이 들고일어나는 건 어쩌면 당연지사다. 최고재판소의 판결이니 눈물을 흘리면서도 승복했던 그들이다. 부당해고됐다는 KTX 승무원들도 그런 사람들 아닌가. 1, 2심에선 승소해 밀린 임금을 받아냈지만 대법원이 하급심을 뒤엎었던 거다. 도로 토해내라는 판결에 빚돈 아닌 빚돈에 졸리다가 자살한 사람까지 나왔다. 대법원 로비를 점거해 “진상을 규명하고 대책을 내놓으라”고 절규하는 건 그들 처지에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세상이 복잡해지고 이해관계가 엇갈릴수록 재판 수요는 늘어난다. 대통령 탄핵에서부터 각종 행정행위, 나아가 저잣거리 장삼이사의 다툼까지도 법정으로 가는 세상이다. 그런 현상이 바람직한 건 아니지만, 우리 사회의 갈등을 최종적으로 판단해 줄 곳이 법원밖에 없으니 그렇지 않나. 그전엔 억울해도 승복하던 국민이 이제 “너희 판결 못 믿겠다. 대통령 비위 맞추느라 재판을 왜곡시킨 너희가 내 사건이라고 제대로 재판했겠나”하고 달려든다면 어떡할 건가. 그런 아노미의 빌미를 만든 게 바로 사법부 자신이 아니었나 말이다.

더 딱한 건 이 문제를 둘러싸고 사법부가 분열 조짐을 보이는 것. 소장 판사들은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삼권분립을 훼손한 ‘양승태 대법원’의 비리를 검찰에 수사 의뢰해 진실을 엄정하게 규명하고 책임 있는 사람들을 처벌하자고 나섰다. 반면, 부장급 이상 중견 판사들은 대법원이 검찰에 수사 의뢰하는 걸 반대하고 있다.

중견 판사들은 이번 일이 잘못이기야 하지만 법원의 문제를 검찰에 맡기면 앞으로 판사들이 소신대로 재판하지 못하고 여론의 눈치를 보게 될 거란 논리를 내세운다. 하지만 속내는 권위의 상징인 법원 청사에 검찰 수사관들이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하고, 판사들이 줄줄이 검찰청에 불려 다니면 체모가 말이 아니게 될 거란 거부감이 더 큰 이유일 터다. 그래서 그들은 검찰에 수사를 의뢰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보인 현직 대법원장을 공격하고 있는 판이다.

하지만, 지금이 체면 따질 때일까. 샅샅이 밝히고 따져도 국민이 믿어줄까 말까인데, 대충 문대고 넘어가는 게 가능할까. 사법부는 신뢰라는 토대와 공정이란 기둥을 떠받치고 선 ‘법의 집’이다. 지금 봉당이 갈라지고 기둥이 무너지는 판에 자기네 권위를 따질 형편인가. 이번 일을 강진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미진이라고 생각한다면 무너지는 지붕에 깔려 죽을 수도 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대법원장이 입에 발린 대국민 사과나 내놓는 게 아니다. 사법부를 이 지경으로 만든 양승태를 비롯해 연루된 전·현직 고위 판사들에 대한 엄정한 조사와 합당한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 그런 연후에 사과하고 사법 개혁안을 내놓아야 한다. 아니, 사법부 성원 모두가 국민에게 석고대죄해야 한다.

헌법 제1조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돼 있다. 선출되지 않은 그들에게 막강한 사법 권력을 쥐여 준 까닭은 주권자인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란 거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103조도 있다. 그러니 헌법 제1조와 103조가 훼손되지 않았느냐는 국민의 의구심을 풀어주어야 할 의무가 그들에게 있는 거다.

   
대법원 청사엔 한 손에 저울을 들고 한 손에 법서를 든 정의의 여신 디케의 동상이 있다. 원래의 디케상은 두 눈을 가리고 법서 대신 칼을 들고 있다. 저울은 어느 한쪽에도 기울지 말고 균형을 지키라는 거고 눈을 가린 건 재판 당사자가 누구인지 따지지 말란 뜻일 테다. 칼을 든 건 죄를 저지른 자를 추상(秋霜), 가을서리처럼 냉엄하게 단죄한다는 뜻이겠다. 국민은 지금 묻고 있다. 대법원의 두 눈을 가린 수건엔 처음부터 눈구멍이 나 있지 않았나? 그 저울의 한쪽엔 미리부터 쇳덩이가 놓여 있지 않았나? 디케의 칼은 당신 자신들에겐 향하지 않나? 당신들은 답변할 책임이 있다. 사법시험 공부할 때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는 법언을 되뇌었을 당신들이 아닌가.

소설가·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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