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미국 시애틀에서 있었던 일이다. 34세의 한 유대인 젊은이가 이 도시의 소규모 커피 제조회사를 380만 달러(약 40억 원)에 인수한다. 대부분의 자금은 그의 열정에 투자한 지인들이 맡았다. 자신은 ‘일 지오르날레’라는 커피 음료 매장을 운영하느라 여유자금이 없었다. 통합 회사 명칭은 피인수 업체의 ‘스타벅스(Starbucks)’라는 이름을 그대로 유지했다. 특히 바다의 여신 ‘사이렌(Siren)’을 형상화한 초록색 둥근 로고가 자신의 공격적인 경영 철학에 부합한다고 여겼다.

그로부터 30년 만에 이 회사는 세계 77개국에 2만8000개 매장을 갖추고 연매출 215억 달러(약 22조 원·2017년 기준)를 달성하는 지구촌 최대 커피 체인으로 성장했다. 오늘날 스타벅스는 전 세계에 커피를 파는 것이 아니라 ‘커피문화’를 전파하는 ‘커피 제국’으로 불린다. 가맹점주 프랜차이즈 방식이 아닌 사실상의 직영 매장으로 운영하고, 30만 명이 넘는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이런 ‘커피 제국’을 건설해 ‘커피 황제’로 불리는 이가 하워드 슐츠(65)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가 비록 ‘커피 황제’로 불리지만 정작 커피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오로지 그가 관심을 갖는 것은 혁신을 통한 전진과 나눔이다. 그는 ‘어떻게 하면 오늘보다 내일을 더 낫게 만들까’ ‘한 발이라도 더 나아갈까’와 같은 고민을 달고 살았다고 한다. 사회생활은 제록스 복사기 판매사원으로 시작했다. 1983년 처음 스타벅스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스웨덴 커피머신 업체 ‘해마플라스트(Hammarplast)’의 미국 부사장으로서 판매 촉진을 해볼 요량으로 회사를 방문한 것이 출발점이다.

스타벅스 이사회 의장인 그는 미국판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1953년 뉴욕 브루클린 뒷골목에서 퇴역군인의 아들로 태어나 공공임대주택에 살며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2017년에는 ‘포브스지’ 선정 미국 부호 232위에 올랐다. 그런 슐츠 의장이 그제 은퇴를 선언했다. 세계인들의 시선이 그의 다음 행보에 쏠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저서 제목이자 일생의 철학인 ‘전진(Onward)’이라는 말을 떠올리면서 그의 도전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해하는 것이다. 특히 2년 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맞설 민주당의 유력 주자로 거명되면서 관심이 더 커진다. ‘부동산 황제’와 ‘커피 황제’의 한 판 승부, 성사만 되면 ‘빅매치’인 건 분명하다.

이승렬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