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봄, 부산도시철도 3호선 수안역이 들어설 부지에서 매장문화재 여부를 조사하던 발굴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인공못(해자)의 흔적에서 임진왜란 당시 희생됐던 조선군 및 민간인의 유골과 칼 등 각종 무기가 발견된 까닭이었다. 이 가운데 학자들의 관심을 더 끌어 모은 유물은 찰갑(비늘갑옷) 상의 한 점. 조선왕조실록 등에 기록이 남아 있으나 실물로 확인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으니 학계가 흥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조선 시대 군인들이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 자주 나타난다. 그러나 사료 부족으로 그들이 어떤 복장을 하고 싸움에 임했는지는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다만 사람 몸을 꿰뚫을 수 있는 화살이나 창이 사용됐던 만큼 튼튼한 보호장구가 필요했을 것은 분명하다. 임진왜란 때 일본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포르투갈 신부 루이스 프로이스가 쓴 일본사라는 책에도 “조선 병사들이 무쇠로 된 단단한 갑옷을 입고 있었다”는 글이 나온다.

문헌에 따르면 갑옷은 종류가 많다. 보편적인 게 철갑이지만 작은 철판을 비늘처럼 꿴 찰갑, 짐승 가죽으로 만든 피갑도 있었다. 또 종이를 여러 겹 붙인 지갑, 면직물을 이용한 면피갑도 보급됐다. 지갑이나 면피갑은 철갑 등에 비해 효능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되나 관련 기록에 “화살이 관통은 하지만 깊이 박히지는 않는다”라고 적혀 있는 점을 고려하면 나름 방탄기능이 양호했던 모양이다.

지난 30일 국립고궁박물관이 조선 후기 보군(보병)이 사용했던 면피갑 한 점을 공개했다. 독일 상트오틸레엔 선교 박물관이 기증한 이 갑옷은 18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외국으로 반출된 연유는 불확실하나 학계에서는 1910년대를 전후해 우리나라에서 활동했던 독일 신부들이 가지고 간 것으로 보고 있다. 1808년 편찬된 ‘만기요람’에 피갑 2892벌을 나눠줬다고 적혀 있지만 현존하는 유물은 10여 점밖에 되지 않아 사료가치가 높다는 평가다.

더구나 길이 101㎝, 어깨너비 99㎝ 크기인 이 면피갑 안쪽에는 사용자 이름으로 여겨지는 ‘李○瑞’라는 묵서도 있다. 갑옷 같은 유물에서 주인명이 명기된 사례는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문득 100여년 전 이씨 성을 가진 한 군인이 면피갑을 입은 채 굵은 땀을 흘리며 훈련에 열중했을 모습이 떠오른다. 나라를 지키는 일은 그때도 여전히 힘들었을 터다.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