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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잊어버리다, 잃어버리다 /이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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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5-27 18:43:31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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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일 년여 머물던 요양원에는 치매 때문에 배회하는 노인이 있었다. 노인은 한시도 쉬지 않고 무언가를 찾아다녔다. 창문을 열어 보고, 사람들이 쓰는 사물함을 확인하고, 갑휴지를 벌려 속을 들여다보고, 침대 아래를 살폈다. 위태롭게 침대를 밟고 올라서서 사물함 위쪽으로 손을 뻗던 날도 있었다. 노인은 엄마가 누워있는 병실에도 들어왔다. 우리에게 공손한 인사를 한 다음 이곳저곳을 뒤져가며 애타게 찾는 일에 집중했다. 엄마의 간식을 나눠드리며 좀 쉬시라고 해도 간식은 주머니에 넣은 채 돌아다녔다. 그러다 낙심한 표정으로 내게 돌아와 말했다. “아유, 내가 집에 가서 저녁을 해야 하는데. 큰일이네. 나가는 문이 어디 있을까?” 갑휴지를 속을 벌려 찾고 있던 것이 나가는 문이었다니.

노인의 머릿속에는 오직 집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만 남아있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일단 지금 있는 공간을 빠져나가는 ‘문’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찾지 못했다.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통유리 문은 늘 잠겨 있었는데 사람이 들고 날 때를 보면 문이라고 알아차렸으나 그때만 나가지 못하도록 붙잡으면 금세 잊었다. 노인은 열심히 문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종국에는 문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렸다. 어떤 것을 잃어버렸다는 감각은 남아서 물건을 들쑤시고 다녔다. 그러다 다른 사람 자리에 놓여있던 옷이나 간식을 보면 집에 갈 때 가져가겠노라고 자신의 보따리에 꼭꼭 숨겨놓았다. 노인은 매일 그곳을 떠나기 위해서 고군분투했다. 이 경우, 노인은 집으로 향하는 문을 잊어버렸을까, 잃어버렸을까.

나의 경우, 지난 한 달이 사라졌다. 분명 책상 위 달력과 스마트폰 달력 앱에 원고 마감과 약속 등이 빼곡히 적혀있는데 그것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잡초처럼 일이 무성했으니 그것을 쳐내느라 하루하루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잊어버린 것이다. 가까스로 숨통이 트인 지난주가 돼서야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할 시간이 생겼고 “먹고 사느라 지난 한 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잊어버렸어” 그들에게 하소연했다. 그러다 이번 주에 알게 되었다. 내가 시간을 잊어버리는 동안, 동시에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있었다는 것을.

엄마의 병이 악화된 지난 오 년을 보내면서 ‘박영자 님 보호자 되시지요?’라는 질문으로 시작되는 전화통화를 가장 두려워한다. 오랜만에 그런 전화를 받았다. 엄마가 입원해있는 요양병원이었다. 엄마가 날이 갈수록 상태가 나빠지니 면담을 좀 하자는 내용의 전화였다. 엄마는 귤을 먹다가 흡인성 폐렴에 걸려 지난 설 연휴부터 지금까지 고생을 했다. 몸이 약해져서 빨리 낫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폐렴은 다 나았다고 했다. 문제는 연하곤란이 생겼다는 점이다. 삼키는 동작에 어려움을 느끼는 증상이다. 엄마는 음식물을 삼킬 때마다 캑캑 기침하거나, 주르륵 입 밖으로 흘렸다. 엄마가 앓는 파킨슨 증상의 하나다. 하지만 의사는 다른 원인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삼키는 기능의 문제는 없는데 삼키는 방법을 잊어버려서 못 삼키거나 감정적으로 우울해서 자신도 모르게 삼키지 않는 일도 있다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검사를 해보고 삼키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콧줄을 통해 식사를 해야 한다고. 콧줄을 하고 난 뒤 좋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몸 상태가 더 나빠질 수도 있다고. 집으로 돌아와 삼킴장애, 콧줄 식사 등을 검색했다. 제대로 걷지를 못하고, 몸을 못 가누고, 목소리도 작아지고, 망상이 남아 있어 대화 진행이 안 될 때가 많다. 엄마를 만나는 매 순간 지금이 최악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더 나빠질 수 있는가.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은데 아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 자신을 원망했다. ‘삼키는 방법을 잊어버리거나 감정적으로 우울해서 삼키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이 계속 떠올랐기 때문이다.
‘잃어버리다’의 뜻은 여러 개다. 그중에 ‘사람과의 관계가 아주 끊어지거나 헤어지게 되다’라는 뜻과 ‘몸 일부분이 잘려나가거나 본래의 기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다’라는 뜻이 내 눈에 박힌다. 엄마는 건강을 잃어버려서 먹고 사는 일을 못 하고, 나는 먹고사는 일을 한답시고 엄마에게 소홀히 하는 바람에 엄마를 잃어버리게 생겼다.

갑휴지 속을 들여다보며 문을 찾던 노인과 스케줄 표만 들여다보며 삶을 살던 내가 무엇이 다른가. 나는 무엇을 잊어버렸나, 어떻게 잃어버렸나. 원고 쓰느라 문장만 나열하던 내가 현실 앞에서 휘청거린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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