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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럼] 멸종위기의 흉부외과 /한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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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5-27 19:17:44
  •  |  본지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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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란 생존해 있던 종(種)이 어떠한 이유로 인해 더 이상 존재하기 힘든 상태를 말한다. 시베리아 호랑이, 수달, 반달가슴곰, 바다사자…. 그리고 2018년, 한국의 흉부외과 전문의 이야기다.
   
흉부외과는 의료계의 대표적인 ‘3D’과로 분류되어왔다. 생명을 직접 다루는 만큼 흉부외과 의사의 업무량과 스트레스는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강도이다. 산재보험법 시행령에서는 일반직종 근무자의 경우, 주당 60시간 이상의 근무를 ‘과로’라고 판단한다. 작년 12월부터 시행된 전공의 특별법은 주당 최대 80시간 수련 금지, 36시간 연속 수련 금지 등을 담고 있다. 의료계의 약자인 그들의 근무환경을 개선하고자 한 것이다. 반면 필자의 지난주 근무시간은 120시간이 넘었다. 몇 년째 계속된 흉부외과 전공의 부재로 전문의인지 전공의인지 모르는 소위 ‘전문공의’ 혹은 ‘전공의 24년 차’의 삶은 더욱 가혹해졌다. 10시간이 넘는 대규모의 심장수술을 마친 뒤에도 중환자실 집중치료를 위해 밤새 매달리고, 다음날 충혈된 눈으로 연속해서 외래진료를 보거나, 바로 응급실 당직을 서야 하는 날들을 몇 년째 보내고 있다.

작년 전국의 흉부외과 전공의는 41명 모집 정원에 24명이 지원하여, 엄청난 미달사태가 벌어졌다. 그들 대부분이 서울의 대형병원에 지원하는 터라, 여타 지역의 병원에서 흉부외과 전공의는 거의 멸종되어 버렸다. 2017년, 배출된 흉부외과 전문의 숫자는 고작 19명에 불과하다. 이들 중에 군 복무나 타과로 업종 변경 등 여러 여건을 고려한다면, 실제로는 한 해 10명 미만의 흉부외과 전문의가 배출된다. 이들이 전국에서 심장과 폐, 생명의 장기를 수술하는 것이다. 2025년에 은퇴할 흉부외과 전문의 수는 55명으로 단순한 셈법으로도 현재 상태보다 연간 40명이 부족할 것이라고 흉부외과 학회에서 예상했다. 이것이 흉부외과의 현실이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환자는 미국에서 심장수술을 받고,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환자는 국내에서 한국인 의사에게 수술받으며, 어느 쪽도 아닌 환자는 동남아 혹은 인도 의사에게 수술받아야 할 것’이라는 자괴감 가득한 농담이 가까운 미래에 실현될 수도 있다.

최근에 갑자기 벌어진 상황은 아니다. 정부는 2009년도부터 흉부외과 가산수가제를 통해 부족한 인력에 응급수혈을 하고자 했다. 하지만 국공립이 아닌 사립병원에서는 정확하게 실행되지도 않는 허울뿐인 처방이었다. 의사들에게 희생이나 봉사정신을 강요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흉부외과에 부여된 ‘3D’의 의미가 극적이고(Dramatic), 역동적이며(Dynamic), 환자나 의사 모두가 미래를 꿈 꾸는(Dreaming) ‘3D’라는 우리끼리의 자긍심에만 더 이상 호소해서는 안 된다. 필자 역시 제자들에게 선뜻 흉부외과를 권유할 자신이 없다. 그가 앞으로 만나야 할 불면의 고통과 박탈감, 소홀한 가장(家長)의 미안함을 내가 어찌 책임지겠는가?
의료의 특성상 전문의는 장기간의 숙련이 필수적이며, 이제는 회복할 수 없는 멸종의 마지막 단계에 와있다. 결코 과장이나 엄살이 아니다. 최근 흉부외과 학회에서는 300병상 이상 병원에서 흉부외과 전문의 고용 의무화, 흉부외과 가산수가제의 실질적인 수행 등 몇몇 시급한 보완책을 정부에 다시 건의하고 있다. 단기간의 미봉책으로는 이 위기를 절대 극복할 수 없으며, 이런 절실함과 심각함을 지금 통감하지 않으면 이미 늦다.

   
개인적으로 흉부외과는 참으로 매력적인 과이다. 단 한 번이라도 죽어가던 환자가 내 손을 통해 살아나 미소 가득한 얼굴로 병원문을 나서는 과정을 경험한다면, 그 기억은 흡사 중독성 강한 마약과도 같아서 또다시 비슷한 상황의 환자에게 정신없이 매달리게 한다. 환자에게 집중하는 동안에는 배고픔도, 목마름도, 피곤함도 느끼지 못하고 오직 과거에 경험했던 그 쾌락만을 갈구한다. 그렇게 흉부외과 전문의는 만들어진다. 필자가 경험했던 이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쾌락을 새로 시작하는 의대생들에게도 자신 있게 권유하고 싶다. 제발, 제발 멸종만은 안 된다.

부산백병원 흉부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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