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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의 세설사설] 멀고 먼 비핵화, 평화의 적은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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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5-27 19:23:47
  •  |  본지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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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숨 가쁜 중재외교 행보 속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정상회담 취소 후에 이어진 회담 재개 시사.북미 간의 어지러운 공방전에 이어 주말 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번개팅’까지 단 며칠 사이 신문 헤드라인 꺼멓게 장식할 일에 갈피를 잡기가 어려웠다. 워싱턴으로 판문점으로 쉴 새 없이 쫒아다닌 문 대통령도 안쓰러울 정도다.


북미 간에 리스크는 언제 어디서든 상존한다. 양쪽이 신뢰를 쌓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미국 행정부와 의회에 포진한 네오콘의 동향과 북한 군부 강경파의 반응과 중국의 행보에도 우리 정부는 유념해야 한다. 북미 의 ‘치킨게임’은 이제 시작이다. 평화의 길로 가는 운전자 노릇 제대로 해내려면 돌부리를 잘 피하면서 인내와 지혜가 필요하다.


   
해일처럼 몰아쳤던 북한과 미국 간 격랑이 겨우 가라앉는 모양이다. 지난 주말은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도무지 갈피를 잡기가 어려웠다. 그만큼 북미 사이의 공방전이 어지러웠던 거다. 거기에 문재인 대통령의 북미를 넘나든 숨 가쁜 중재 행보도 있었으니. 

우선 그새 일어난 일부터 살펴보자. 문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트럼프를 만난 건 22일이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설명하면서 김정은에 대한 트럼프의 의구심을 풀어주느라 애를 썼을 터. 그랬는데, “북한이 리비아의 전철을 밟을 수 있으며 대북 군사 옵션이 배제된 적 없다”고 했던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을 ‘얼뜨기’라고 원색 비난한 북한 외무성 부상 최선희의 성명이 23일 튀어나왔다. 대표적 매파인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난한 16일의 김계관 성명에 이은 제2탄. 그래도 북한은 24일엔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했다. 그런데 트럼프가 느닷없이 김정은과의 회담을 취소해 버렸던 거다. 

반전이 나왔다. 바로 다음 날 김정은의 위임을 받은 김계관이 사뭇 정중한 어조로 회담 재개를 희망한다는 성명을 내놓았던 것. 북한의 ‘야코’를 죽인 트럼프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잘 하면 예정대로 김정은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 말해 우리를 또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엊그제는 문 대통령이 김정은과 한 달 만에 다시 통일각에서 ‘번개팅’을 가졌다. 하나하나만도 신문 헤드라인을 꺼멓게 장식할 일이 단 며칠 사이에 연쇄 폭발했던 게 아닌가.

문 대통령은 어제 ‘제2차 문-김 정상회담’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김 위원장에게 북한이 비핵화를 착실히 이행하면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경제적 번영을 돕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뜻을 전했다”고 했다. 두 정상은 고위급회담, 군사회담, 이산가족 만남 등 4·27 판문점 선언의 이행도 재확인했다. 다시 말해 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트럼프의 의중을 재차 전달하는 한편, 한국이 북한의 충실한 친구가 돼 줄 것을 보증할 테니 미국에 대한 의구심을 버리라고 설득한 셈이다. 

어쨌거나 어제 트럼프가 “6월 12일 싱가포르 회담을 재추진하겠다”고 언급했으니 말 많고 탈 많았던 북미회담이 예정대로 성사되긴 할 모양이다. 어쨌든 회담을 취소한다는 트럼프의 한마디에 세계가 요동쳤고 우리는 일희일비해야 했다. 워싱턴으로, 판문점으로 쉴 새 없이 쫓아다닌 문 대통령도 안쓰러울 정도였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를 만났고, 북한이 핵실험장을 폐쇄했다는 소식에 일이 잘 풀리겠거니 했던 나는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트럼프가 북한과의 회담을 취소했다는 뉴스에 망연자실했더랬다. 앞으로의 사태 전개가 걱정되기도 했다. 북미 관계가 극도로 경색돼 한반도에 무거운 긴장이 내려앉고 미국의 군사옵션이 재론되고…. 그런데 하루만에 트럼프가 “나도, 북한도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여유를 부리는 걸 보고는 허탈하달까, 도깨비에 홀린 기분이 들었다. 아니, 놀림을 당한 기분이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미래를 걸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북미협상이 성공하기만을 기다리는데 정작 그는 그게 게임이었다니. 

트럼프가 1987년 썼다는 ‘협상의 기술’이란 책엔 이런 내용이 들어 있다. 통 크게 생각하라, 지렛대를 활용하라, 비용을 줄여라, 협상을 즐겨라 등이 그의 사업 전략이란 것. 눈에 띄는 건 ‘되받아치라’는 대목. 상대가 협상을 주도하려고 하면 끌려다니지 말고 판을 뒤집어엎으라는 거다. 그렇게 해서 그는 부동산 거부가 됐다는데, 이번에 북한과의 ‘치킨게임’에서도 장기를 유감없이 써먹은 셈이다. 그는 지금 노림수가 맞아 떨어진 걸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벼랑 끝 외교’를 조자룡 헌 창 휘두르듯 하던 북한이 이번엔 허를 찔려 주먹 맞은 감투 꼴이 되긴 했지만 계속 당하고만 있을는지는 두고 볼 일이긴 하다. 

어쨌든 앞으로의 상황 전개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지난 일을 복기해 볼 필요는 있겠다. 북미 간 협상이 파투 직전까지 간 건 서로 손에 쥔 패를 감추고 상대에게 더 큰 베팅을 요구하다 생긴 일이 아닌가. 북한은 핵을 언턱거리 삼아 확실한 체제보장, 통 큰 경제지원을 받아내려던 것이고, 미국은 비용은 최소화하면서 김정은의 손에서 핵을 완전히 빼앗으려던 게 아니었나. 미국은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부터 이행해라, 그러면 수교나 평화협정을 생각해 보겠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북한은 단계적으로 해체할 테니 그때마다 대가를 지급하라는 것.

흥정할 때 서로 배짱부리는 거야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서로 간에 불신이 지나쳤던 게 탈이었다. 표면적으론 북한이 선공했지만, 미국의 무리한 요구가 발단이 아니었나. 볼턴이 핵무기와 핵물질, ICBM을 통째로 미국에 넘겨야 한다, 생화학무기나 기타 탄도미사일도 이참에 폐기해야 한다고 했던 거다. 협상 출구에나 나올 소리를 입구에서 꺼내고, 당초엔 없던 추가옵션까지 내놓으니 북한이 발끈했던 거다. 

북한도 무리하긴 했다. 미국이 생각보다 강경하게 나오자 ‘벼랑 끝 외교술’을 또 써먹다 동티가 났다. 미국과 약속한 싱가포르 실무협상장에 ‘노쇼’해 바람맞힌 것, 볼턴과 펜스를 거친 어조로 비난한 것, 회담 보이콧 고려를 먼저 입에 올린 것 등등이 그것이다. ‘벼랑 끝 외교’라는 게 국제적으로 고립된 처지에서 발언권을 높이려는 북한의 안간힘이란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협상 중인 상대에 대한 공개 모욕이 현명한 짓일 순 없다.

북미 간에 맞대면이 이뤄진다 해도 고비는 첩첩산중이다. 이번에 드러났듯 리스크는 언제, 어디서든 상존한다. 무엇보다 북미 양쪽이 서로 신뢰를 쌓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내가 보기엔 북미 간 다리를 놓는 우리 정부가 특히 유념해야 할 대목이 몇 가지 있다. 

우선 미 행정부와 의회에 포진한 ‘네오콘’의 동향이다. 신보수주의자와 기독교 우파의 동맹인 ‘네오콘’은 자신들을 ‘적(敵)그리스도’와의 성전을 수행하는 정의의 사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왕년에 부시를 앞세워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해체한다며 이라크를 침공한 것도 그들이 아니었나. 볼턴으로 대표되는 ‘네오콘’은 계속 북미협상 무용론을 펼치며 판을 흔들려 할 거다. 왜냐. 그들은 미국이 세계의 지배자로 군림하기 위해선 가상의 적이라도 만들어 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니까. 냉전이 사라진 후 미국은 이라크, 리비아에 이어 빈 라덴의 알카에다를 적으로 삼았던 터다. 이제 적으로 삼아 우려먹을 대상은 북한 정도랄까. 미국에 핵물질을 고스란히 바쳤다가 후일 미국의 지원을 받은 반군에게 비참하게 죽은 카다피의 ‘리비아 방식 핵 폐기’에 북한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건 이유가 있다.

마찬가지로 북한 군부 강경파의 반응도 주의가 필요하겠다. 지금 미국에선 CIA 국장이었던 국무장관 폼페이오, 북한에선 통일전선부장 김영철, 한국에선 국정원장 서훈 등 정보라인이 물밑 협상을 이끌고 있다. 이번에 볼턴이 회담 취소를 트럼프에게 쑤석였던 대로 네오콘이 언제든 발호(?)할 수 있는 것처럼 북한에선 협상 국면에서 소외된 군부 강경파들이 재를 뿌릴 가능성이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아가 중국의 행보에도 주의해야 할 터. 중국이 북한을 협상장으로 끌고 가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겠지만 제 전략적 이익을 챙기겠다고 나서면서 협상을 방해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부가 중국과의 채널 관리에 더욱 신경을 쓸 일이다. 

문 대통령도 유리그릇 다루듯 해야 한다고 했지만 대사를 망칠 위험 요인은 언제라도 튀어나올 수 있다. 북미의 ‘치킨게임’은 이제 시작이 아닌가. 이번에 절감했듯 평화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숱한 고비를 넘기고 우여곡절을 거쳐야 할 일이다. 문 대통령과 외교안보라인이 ‘평화의 길’로 가는 운전자 노릇을 제대로 해내려면 여기저기 돌출할 돌부리를 잘 피하면서 인내와 지혜를 발휘해야 할 터. 

   
한마디만 더 하겠다. 보수야당과 일부 보수언론은 좀 자중하면 좋겠다. 대통령이 동분서주하는 마당에 힘을 보태주지는 못할망정 트럼프가 북미회담 취소 카드를 던지자마자 ‘거 봐라’는 식으로 기다렸다는 듯 비난을 퍼붓는 꼴은 도무지 봐주질 못하겠다. 왜 이렇게 얄팍하고 당파적인가. 그런다고 국민이 표를 주는 게 아니란 걸 아직도 모르겠나.

소설가·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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