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예술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들을 한다. 그러나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예술의 문외한에게도 놀라움을 주는 예술품들은 얼마든지 있다. 가까운 부산시립미술관에 자리잡은 ‘이우환 공간’의 2층 마지막 방은 예술을 잘 알지 못하거나 예술품에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조차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경험을 하게 된다. 현대의 산물인 철판-철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방의 한가운데 놓인 우주의 한 조각인 바윗덩어리가 마주 보고 있는 장면을 대하는 순간, 예술이라고는 전혀 알지 못한다는 사람들조차 마음의 동요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방에 발이 묶인 채 마음이 동요한 원인을 찾아 나서게 된다.
그 방에서 우리가 본 것은 이우환의 예술 작품이고, 그 예술품을 보고 마음의 동요의 원인을 찾아 나서는 예술 문외한의 행위는 예술에 대한 원초적 질문의 시초이다. 이 질문은 답을 찾을 수도 있고, 영영 답을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행위가 바로 예술품을 보고 얻게 되는 감동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본인은 알지 못한다. 그러니 예술품을 보고 감흥을 느낀 적이 없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의 예술섬으로 유명한 나오시마에도 이우환 미술관이 있다. 이 미술관의 설계자는 노출 콘크리트 건축물로 유명한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이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이우환 미술관에는 이름 그대로 이우환의 작품들이 전시 소장되어 있다. 이우환의 작품만이 전시된 이우환 미술관. 당연한 발상이고 우리는 여기에 익숙하다.
나오시마 옆에는 테시마라는 예술 섬이 또 하나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테시마 미술관이라고 명명된 미술관이 있다. 이 미술관은 우리의 상식을 깬다. 테시마 미술관에는 소장품이 한 점도 없다. 이곳을 말로 설명하기란 정말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모든 미술관의 정보를 다 합쳐도 테시마 미술관 하나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소장 작품이 한 점도 없는 미술관이 상상할 수 있겠는가?
테시마 미술관에 들어가면 오래된 성당이나 성스러운 곳에 들어간 종교 집단의 사람들처럼 관광객들이 겸허해지고 조용해지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각자의 자리를 찾아 앉거나 선 채 고요히 명상의 시간을 맞는다. 이것이 테시마 미술관이 주는 신비로운 경험 중의 하나이다. 미술관이 어디 종교 시설도 아니고 기도를 하는 기도처도 아닌데….
테시마 미술관의 수장고는 하늘로 뚫린 두 개의 구멍이다. 그리고 소장품이라고는 그 두 개의 구멍으로 보이는 하늘과 구름과 그리고 그들의 보여주는 시시각각의 변화쯤 될 것이다. 덤은 그 구멍으로 밀려 들어오는 가없는 바람이 테시마 미술관의 소장품 모두이자 백미이다.
이 자연적 상황에 가해진 인공이라고는 단 하나, 테지마 미술관 바닥 여기저기의 바늘 크기만 한 구멍에서 아주 천천히 불규칙하게 솟아나는 물방울들이다. 이것들이, 이 하나의 물방울이 커지면서 구르기 시작하고 구르면서 먼저 굴러간 물방울과 합쳐지고 합쳐지면서 또다시 굴러갈 힘을 비축한다. 그러면서 힘이 비축되거나 중력을 거부할 수 없는 크기가 되면 다시 구르기 시작하고 구르기 시작한 물방울은 때로 물방울의 모양을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뱀처럼 길게 늘어진 채 굴러가기도 한다. 그러다 다양한 모양으로 흐르던 모든 물이 만나는 곳에 이르면 삼투압과 중력에 의해 물은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물방울에서 시작된 사람들의 시선은 물방울을 따라가다가, 물방울이 흐르는 이치를 따라가다가, 종국에는 사멸되고 사라지는 자신의 육체를 따라가다가, 영원히 반복되는 물의 본래 모습을 따라가다가, 종국에는 우리 영혼의 존재에 대해 질문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테시마 미술관이다.
종교보다 강렬하게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예술품을 이전에 본 적이 없다면, 그리고 그 텅 빈 공간의 강력한 충만감을 경험한 적이 없다면, 우리의 미술은 아직도 우리에게 종교보다 높은 경지를 보여 주지 못한 것이다.
종교적 아이콘도 아니고 건물의 내벽을 치장하는 자본의 상징물도 아닌, 말 그대로 그 현존하는 예술로서 우리를 이런 지극한 경지로 안내해 줄 예술품은 이 땅 어디에 없는가? 놀라움과 마음의 동요와 경건함을 넘어 새로운 감동을 줄 이 땅의 예술가를 우리는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가?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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