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2일 또 한 전직 대통령이 구속됐다. 헌정 사상 네 번째다. 올해 일흔 살이 되는 우리 헌정사에서 참담한 기록이 또 하나추가됐다. 그러나 놀라거나 화를 내는 모습은 주위에서 별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덤덤한 표정이다. 일각에서는 정치 혐오증이 다시 도진다고 난리다. 안 그래도 20여 일 앞으로 다가운 지방선거 투표율이 더 떨어질까 걱정이다.

영장에 적시된 혐의 가운데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뇌물’이었다. 액수가 110억 원대. 혐의 일체를 부인하고 있으나 2007년 후보시절에 받은 일부 금액은 시인했다. 뇌물이 아니고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결국 둘 다 ‘나쁜’ 돈이지만 정치자금법상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경우에는 공소시효가 5년이다. 임기만큼 5년(대통령의 임기 중에는 시효가 정지된다)이 더 늘어나더라도 2017년에 시효가 끝나 처벌할 수 없다. 뇌물인 경우는 다르다. 공소시효 10년에 임기 5년을 더하면 2022년이 되어야 시효가 끝나니까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이런 ‘나쁜’ 돈이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얼마 전 국내 대표적인 한 ICT기업의 임원들이 관련 상임위 국회의원들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기부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카드깡’ 방식으로 법인카드로 상품권을 현금화한 뒤 이를 여러 명의 임원 명의로 후원금을 쪼개어 기부했다. ‘카드깡’이나 ‘쪼개기’ 같은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굳이 정치인에게 후원금을 대주는 이유는 뭘까. 자신들에게 유리한 입법이 이뤄지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특혜를 받으려는 일종의 ‘보험’ 인 셈이다.

2004년 3월 정치자금법 개정 전에는 기업들이 합법적으로 개인후원회에 5000만 원, 중앙당후원회에 연간 2억 원 한도 내까지 후원이 가능했다. 현행법상 기업이 큰돈을 의원에게 주는 길이 막히자 회사 자금을 임원이나 사원 여러 명 이름으로 ‘쪼개서’ 개인의 후원금 형태로 둔갑시킨다. 개인은 연간 2000만 원 한도 내에서 국회의원 후원회 등에 500만 원까지 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동안 ‘관행’으로 인정되어 온 정치인 포럼의 운영경비가 ‘정치자금’이라는 최근 대법원 판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포럼이 활동 경비 및 인건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 회원 67명으로부터 특별회비 명목으로 받은 1억6000만 원을 불법 정치자금으로 본 것이다. 대법원이 정치자금 투명화를 위하여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 주는 대목이다. 자금 조달에 엄격한 규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정치권력과 ‘나쁜 돈’의 결탁으로 ‘나쁜 정치인’에게 유리한 정치적 결정이 이뤄지고 헌법에 보장된 투표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선관위는 이 판례에 근거해서 입후보예정자가 당선과 관련된 정치활동을 도모할 목적으로 포럼이나 연구소를 만들어 인력 및 시설의 운영비용을 자신이 부담하지 않고 지인 등 제3자로부터 수수하는 경우에 대해 정치자금부정수수죄(정치자금법 제45조)여부를 면밀히 검토하기로 했다. 다만 정치인이 이른바 싱크탱크 등을 통하여 정책을 자문 받거나 사회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단순히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거나 호감도를 향상시키는 행위는 허용하기로 했다.

이번 지방선거는 작년 대통령 선거 이후 높아진 민주 시민 의식과 참여 열기를 동네 민주주의로 전환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선관위는 올해 지방선거의 슬로건을 ‘아름다운 선거 행복한 우리 동네’로 정하고 주민이 주인이 되는 ‘동네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 힘쓰기로 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정치자금의 합법적인 조성 및 투명한 회계처리를 위해 이번에 새로 도입한 정치자금 공개시스템(http://ecost.nec.go.kr)이다. 후보자가 자발적으로 정치자금 수입·지출 내역을 유권자에게 공개하여 후보자의 정치자금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후보자는 유권자에게 정치자금 정보를 공개하여 후보자의 깨끗한 이미지를 내세울 수 있고, 유권자는 후보자 선택을 위한 기본 정보로 활용한다.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와 국민의 알권리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제대로 실현만 된다면 기대효과가 상상 이상일 듯하다.

지방선거를 치르는 올해를 투명한 정치자금 문화가 정착하는 원년으로 만들자.

부산 동구선관위 지도홍보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