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공화국’이라는 말은 그저 하는 수사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시인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시인이 많으며, 시인의 숫자만 놓고 보면 해마다 노벨문학상을 독식해도 시원찮을 판이다. 내 주변만 돌아봐도, 시쳇말로 개나 소나, 게나 고둥이나, 아니, 시인공화국의 일원으로서 좀 더 감각적으로 청단이나 홍단이나, 아니, 그래도 이건 너무 상투적이니 ‘낯설게 하기’ 기법을 활용하여 200이나 300이나 다 시인이다. 한국처럼 시인도 많고, 시인 지망생도 많고, 시인입네 하는 사람도 많고, 시집을 자비로 출판하는 사람이 많은 나라는 단연코 세상에 없다. 실로 위대한 시인공화국이라 칭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한국 사람은 시를 읽지 않는다. 해마다 수많은 시인이 쏟아져 나오고, 그 쌓인 시인만큼 수많은 시집이 쏟아져 나오지만 1000권이 팔리는 경우는 드물다. 교과서에 실린 시 말고 새로 나온 시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렇지만 한국의 시인은 모두, 위대한 저항시의 전통을 이어받았는지 어쨌는지,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시를 쓰고, 시집을 낸다. 시를 향하여 이렇게 깊고도 끈질기게 지조를 지켜가는 나라 역시 단연코 세상에 없다.
시인은 많은데 시를 읽지 않는 나라, 이처럼 역설적이고 아이러니하면서, 중의적이고 반어적이면서, 이상하고 모순적이면서도, 그 모순의 시적 통합을 이룬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앞의 문장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저 문장에서 한 가지 사실을 발견(유추)할 수 있다. 시인은 있는데, 독자가 없다는 사실 말이다. 그러니까 ‘시인 따로, 독자 따로’, 시인과 독자가 분리되었다는 사실 말이다. 그렇다, 분리, 이것이 시인은 많은데 독자가 없다는 사실의 근원적 배경이다. 왜 시인과 독자가 분리되는 안타까운 사태가 일어난 것일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 한국에서 시인이 되는 길은 몇 가지 살펴보자. 먼저 신문에서 공모하는 신춘문예에 당선되거나, 주요문예지에서 공모하는 신인문학상에 당선되면 된다. 일단 한 번 당선만 되면 죽을 때까지 시를 쓰지 않아도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니까 수지는 몰라도 명예는 남는 장사다. 세계챔피언 타이틀 방어에 15차까지 성공한 장정구는 ‘전직’ 권투선수지만, 위대한 시인에게는 전직이라는 말 따위가 아예 없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듯이 한 번 시인은 영원한 시인이다.
물론 이 길만 있는 건 아니다. 문예지라는 게 주요문예지만 있는 게 아니다. 별의별 문예지가 많으니 거기로 등단해도 된다. 다만 권위라든지, 인지도라든지 따위가 별로 없는 데로 등단하면 주눅이 들거나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경우를 많이 봤으니 유의할 것. 별의별 문예지만 있는 것도 아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게 어울려 만든 ‘끼리끼리 문예지’들도 있다. 당연히 이런 문예지로 등단할 수도 있다. 다만 이런 문예지로 등단을 하기 위해서는 시의 편수라든가, 시적 기량이라든가, 시적 완성도 따위보다는 술이라든가, 촌지가 훨씬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이도 저도 안 된다? 절대 좌절하지 마시라. 라스트 찬스가 또 있다. 이 길은 아주 외로운 길이며, 누구나 쉬, 쉬, 하는 길이지만 이것만큼 확실한 길은 없다. 그냥 제 돈으로 시집을 묶어버리면 되는 길, 자비출판의 길이다.
이리하여 한국에서는 시인이라고 선언한 자들, 아니 우기는 자들과 자신도 모르게 독자로 전락한 자들이 나뉜다. 등단한 자와 등단하지 않은 자, 그러니까 시인 자격을 얻은 자와 얻지 못한 자로 나뉘며, 문단(무대)과 독자(객석)가 나뉜다. 그런데 이 나뉨은 독자가 기획한 것도, 의도한 것도, 원한 것도 아니고, 다만 그들 시인(문인)들이 스스로 나눈 것이다. 시인들이 만든 등단제도와 관습 때문에 그렇게 나뉘게 된 것일 뿐이다. 시인은 자신이 발 디딘 ‘지금 여기’의 상투와 제도와 관습과 규칙과 상식을 의심하고 깨뜨리는 자다. 한국의 시인은 시인의 조건(등단제도), 그 존재의 조건에 대한 질문을 100년간 방기하고 유예해 왔다.
다시 시인은 누구인가? 시를 쓰는 자다. 시는 무엇인가? 지금 여기를 노래하는 자, 질문하는 자다(답하는 자가 아니다). 지금 여기는 무엇인가? 당신의 삶과 죽음, 당신이 발 디딘 곳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독자다. 켁, 이상하지 않은가? 당신은 왜 시인이 아니고 독자인가? 이 질문의 끝에서 당신은 왜 또 독자로 전락하고 마는 것인가? 도대체 시인은 누구인가?
작가·헤세이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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