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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詩의 값, 시인의 자리 /정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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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5-11 19:00:05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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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가 카톡으로 기사를 보냈습니다. ‘2018년 직업 연봉순위, 소득 낮은 직업 TOP 10’이란 제목의 블로그 기사였습니다. 소득 낮은 직업 중 최저 소득 직업이 어이없게도 ‘시인’이었습니다. 후배는 기사와 함께 ‘이럴 수가, 시인이 1등!’이라는 멘트를 날렸습니다. 여기서 1등은 소득이 가장 낮은 직업이라는 말입니다. 시인들의 소득이 ‘시시’한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헛헛한 웃음이 나왔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시인들의 연 평균소득은 542만 원이었습니다. 하위 25%의 평균소득은 200만 원, 상위 25%의 소득은 600만 원. ‘소득 상위 시인일지라도 한 달에 50만 원밖에 벌지 못한다’고 ‘경고’해 놓았습니다. 직업 중에 시인이 소득 꼴찌를 차지했고, 16명의 시인의 답한 결과였습니다.

저는 이 결과를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시인의 실제 소득보다 꽤 많은 소득이 나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시인의 실제 소득은 평균 542만 원보다 훨씬 저소득입니다. 대기업 평균 초봉 3855만 원, 35개 공기업 평균 초봉 3528만 원이라고 합니다. 환경미화원 초봉이 4000만 원대이며 10명 뽑는데 172명이 응시해 17.2 대 1의 경쟁을 보이는 것에 비해 시인은 참혹할 정도의 연봉일 것입니다. 환경미화원에 대한 비교는 비하는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이 기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시인은 우리나라에선 직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를 전문적으로 짓는 사람’이 시인이라는 사전적 해석처럼, 시인은 시를 짓는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시를 생산한다고 즉시 수입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그 시가 청탁을 받아 지면에 발표돼야 고료라는 소득이 발생합니다.

우리나라 문예지 중에서 ‘시의 값’을 제대로 지급하는 문예지는 전체의 10% 정도 될까요? 그런 잡지에 시를 발표하는 시인은 몇 %가 될까요? 고료를 받는 시인이라도 그 기회가 그렇게 자주 오는 것은 아닙니다. 최영미 시인이 ‘괴물’이란 시를 발표한, 스스로 ‘7만 원 받은 시’라고 소개한 계간지 ‘황해문화’에 저는 시인이 된 지 35년 동안 두 번의 발표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전국에 문예지가 다양하게 있지만 대부분 고료 대신 문예지를 보내주는 것으로 갈음합니다. 으레 시인들은 ‘원고료는 책으로 대신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청탁서를 받습니다. 시인은 시를 짓지만 제값을 받지 못하고 책으로 대신 받는 현실입니다. 그것만으로 계산해보면 시인의 실제 소득은 마이너스(-)일 것입니다. 다행한 것은 시인에게 고료 수입 외 ‘업무수당’이 있습니다. 강연, 낭독, 기고, 심사, 인세, 저작권료 등등의 수입이 발생합니다. 역시 극히 일부가 누리는 수입입니다. 우리나라에 전업시인이라 말할 만한 시인은 어느 정도일까요? 제가 알기로는 10명이 안 됩니다.

많은 시인이 직업을 가지고 시를 씁니다. 그래서 시인이 생계를 유지하며 존재할 수 있습니다. 시를 쓰는 일은 존재의 이유에 있습니다. 시인이 현실 직업이라면 ‘굶어 죽는 시인’이 자주 나왔을 것입니다. 시인의 수가 지금처럼 2만이니, 3만이니 하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시인의 자리는 넘치는데 시의 값은 바닥인 것이 현실입니다.
시인이 직업이 되는 세상을 상상해봅니다. 국가고시처럼 시험을 쳐 등단을 하면 국가가 4대 보험을 책임지고, 시를 쓰면 국가가 월급을 주고, 퇴직 후에는 연금을 주는 세상. 국가가 집필실과 휴양지를 제공해주고, 국무회의에서 시를 읽는 세상. 그 시가 국민들의 애송시가 되는 유토피아는 불가합니다. 있어서도 안 됩니다. 시는 국가의 소유가 될 수 없으며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 결과입니다.

시가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시인의 자리 또한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시인의 영역은 한정되어 있는데 시인의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증가와 반비례하여 독자의 수는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시가 시인을 먹여 살리는 재화가 되지 않기에 현실에서 시의 값이든 시인의 자리이든 시시해지는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시에 대해서는 긍정적입니다. 4차 산업혁명이 만들어 가는 새로운 미래에 정신적인 작업인 시는 높은 가치로 존재할 수 있다고 봅니다. 로봇과 AI(인공지능)와 알고리즘이 사람의 직업을 빼앗아가도 시인의 자리는 침범하지 못할 것입니다. 많은 미래학자가 시의 존재가치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습니다.

로봇이 기사를 작성하고, AI가 소설을 쓰고 있지만 시의 자리로는 들어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는 기계가 넘보지 못하는 영혼의 작업입니다. 그러하기에 미래에 시는, 사람의 좋은 친구가 될 것입니다. 시를 쓰는 사람에게든 시를 읽는 사람에게든 큰 선물로 남을 것입니다. 비록 ‘2018년 직업 연봉순위, 소득 낮은 직업 TOP 10’에 시인이 1위지만, 미래에는 사람의 직업 만족도에서 1위를 차지할 것입니다.

시인·경남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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