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중국의 관영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경제개혁 바람을 타고 대륙 곳곳에 가짜 걸인들이 들끓고 있다’. 그 사례로 수도 베이징과 고도 경제성장 중인 남부의 광저우를 들었다. 관계기관이 3년간 두 지역에서 구걸행위를 벌이는 거지 2만5000여 명을 붙잡아 조사해 보니, 이들 중 8.5%만이 진짜 거지로 판명됐다는 것이다. 지체부자유자 행세를 하고 다니는 거지 중에서도 실제로 신체장애가 있는 이는 1.5%에 불과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중국은 1990년대 이후 ‘가짜 천국’으로 불렸다. 각종 상품과 제품 등에 짝퉁이 활개를 치면서다. 우리나라 담배와 맥주도 거의 똑같이 만들어 현지 한국식당에서 버젓이 팔았다. 심지어 주유소 중 절반이 넘는 곳의 계량기·휘발유가 엉터리라는 감독기관의 검사 내용까지 보도됐다. 술은 말할 나위가 없다. 위스키값이 턱없이 비싸 술집 주인에게 따지자 “가짜가 아니라 진짜라서 그렇다”고 했단다. 10년 전 한국의 어느 기업인이 칭다오 시내 주점에서 겪은 일화다.

요즘 시중에 ‘차이슨’이 화제다. 중국 영문명 차이나(China)와 글로벌 가전브랜드 D사의 합성어로, 중국 업체가 D사를 모방해 만든 제품을 뜻한다. 그런데, 엊그제 국내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무선청소기 등의 두 회사 제품을 비교 실험한 결과가 관심을 모았다. 차이슨의 가격이 10분의 1 정도로 싼 데도 성능에는 별 차이가 없는 걸로 나타난 까닭이다. 그만큼 가성비가 월등하니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잔고장이 날 것 같아 미심쩍다는 반응도 나왔다.

몇 년 전만 해도 중국산은 유명 제품 등을 본뜬 저가 짝퉁이란 이미지가 강했다. 어쩌다 잘 만든 중국 제품이 시장에 나오면 ‘대륙의 실수’라는 반어적 수식어가 붙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폄훼할 수만은 없게 됐다. 가격 대비 성능이 괜찮은 차이슨이 뜨고 이들 제품을 골라서 찾는 마니아까지 생겼다니 말이다.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2018 소비자가전박람회(CES)’를 둘러본 한국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은 새삼 ‘중국 쇼크’에 휩싸였다. 전체 참가 기업 4000개 가운데 중국이 1325개를 차지해 미국 다음으로 많았고, 로봇·드론 등 각 분야의 기술력이 뛰어나서다. 짝퉁의 본산이 어느새 ‘오리지널’을 위협하거나 능가하는 존재가 된 형국이다. 차이슨의 습격에 세계 가전시장이 재편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 기업의 분발과 경쟁력 향상이 절실한 때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