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제나라에 들렀을 때 환공의 사당에서 신기한 그릇 하나를 발견했다. 속을 비워두면 기울어지고, 중간쯤 채워 놓으면 반듯하게 서며, 가득 채우면 자빠지는 그릇이었다. 이를 보고 크게 깨달은 공자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아무리 지혜가 있다 할지라도 자기 몸을 지키는 데는 어리석은 것처럼 해야 하며, 아무리 공로를 천하에 끼쳤다 하더라도 자기 몸을 지키는 데는 양보해야 한다. 이것이 자기 몸을 바르게 하는 도리이다”고. 과욕과 지나침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이 그릇은 제환공이 늘 곁에 두고 보며 경계수단으로 삼았다는 ‘유좌지기(宥坐之器)’로, ‘순자’와 ‘공자가어’에 나오는 고사다.

비슷한 이야기가 그리스신화에도 실려 있다. 제우스의 아들 탄탈로스가 신의 음식을 지상으로 가져가 친구들에게 나눠주며 자랑하고 다녔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제우스는 탄탈로스를 죽여 지옥에서 굶주림과 목마름의 형벌을 받게 했다. 물이 턱에까지 차는 연못에 갇혀 있으나 물을 마시려 하면 빠져나가고, 머리 위에 잘 익은 과일이 열린 가지가 늘어져 있지만 손을 뻗으면 멀리 이동하는 형벌이었다. 액체가 부풀어 오르다 한계에 이르면 모두 쏟아지는 현대의 화학실험기구인 ‘탄탈로스의 접시’는 여기서 유래했다.

유좌지기나 탄탈로스의 접시와 같은 그릇이 조선 시대에도 제작됐다. 실학자 하백원과 도공 우명옥이 각각 만든 ‘계영배(戒盈杯, 가득 참을 경계하는 잔)’다. 여기에 술을 용량의 70% 이상 채우면 밑으로 흘러내렸다. 우명옥의 계영배는 조선 후기의 거상 임상옥에게 전해졌다. 임상옥은 거기에다 ‘가득 채워 마시지 말기를 바라며/너와 함께 죽기를 원한다’는 글을 새겨 소장하며 과욕을 다스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로부터 ‘노벨평화상을 받으시라’는 축전을 받았다. 김 전 대통령이 지핀 남북 화해 불씨를 활활 타오르는 불꽃으로 일궈주길 바라는 소망이 담긴 축전이다.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해 “노벨평화상은 도널드 트럼트 미국 대통령이 받아야 하고, 우리는 평화만 가져오면 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로를 다른 이에게 돌리는 겸양의 미덕과 한반도 평화에 대한 염원이 묻어난다. 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 당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서도 “여기까지 온 것은 김 위원장님의 아주 큰 용단 덕분”이라며 자신을 낮추고 김 위원장을 높였다. ‘계영배 외교’라 할 만하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