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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의 세설사설] 껍데기는,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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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4-29 19:25:59
  •  |  본지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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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판문점 선언’은 한반도에 미칠 긍정적 기운이 기대 이상이다. 일각에선 ‘CVID’ 담기지 않았다고 깎아내리지만 ‘완전한 비핵화’란 말을 이끌어낸 것만 해도 잘됐다. 북핵은 북미 간 타협이 핵심이다. ‘위장 평화쇼’로 딴죽 걸면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짓’ 아닌가. 중요한 것은 이행될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잘돼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가 깃들고 부산에서 출발한 기차가 평양, 신의주를 거쳐 시베리아를 횡단해 파리나 베를린까지 달리는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이 뛴다.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난관은 또 얼마이겠는가. 그래도 우리는 평화와 번영의 길을 손잡고 걸어 가보자.


   
지난주 금요일 새벽, 나는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잠의 늪에 잠겨 있던 의식이 명료하게 되돌아오는 그 짧은 순간, 가슴 한구석이 설레는 것을 느꼈다. 어두컴컴한 천장을 올려다보며 나는 “왜 이럴까? 오늘 별다른 일도 없는데…” 하고 잠깐 의아해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이의 정상회담이 예정된 날이란 걸 뒤늦게야 떠올렸다. 나는 마음속의 무릎을 쳤다. “아하…”

그러곤 일어나서 눅진한 어둠이 깔린 마당을 내다보다가, 슬리퍼를 끌고 공연히 동네 골목을 어슬렁거리다 들어왔다. 언제나처럼 커피 원두를 갈아 머그잔에 가득 따라놓고는 배달돼 온 아침신문을 읽었고, 여덟 시쯤 텔레비전을 켰다. 판문점을 향한 대통령의 차가 통일대교를 달리고 있었다. 문득 마당 가의 나무에서, 까치는 아니라도 새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상봉 장면을 상상하면서도 막연히 김대중-김정일, 노무현-김정일 때보다는 감격이 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랄까, 사과도 처음이 맛있지 두 개, 세 개째는 그저 그렇지 않나.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김 위원장과 악수를 하는 순간, 뜨거운 것을 삼킨 듯 가슴이 후끈해졌다. 어떤 가수의 노래 제목을 빌리면, ‘총 맞은 것처럼.’ 감동할 만한 순간엔 감동해야 하는 법이다. 풀리지 않는 갈증이랄까, 비원(悲願)이 가슴 한 귀퉁이에 바이러스처럼 잠복해 있다가 계기만 생기면 이렇게 명치를 뚫고 튀어나오질 않나.

두 정상이 전통의장대의 사열을 받으며 붉은 카펫을 함께 걸어와 평화의집으로 들어갈 무렵 시간에 쫓긴 나는 집을 나섰다. 하지만 지하철 안에서도 휴대전화의 DMB 화면에서 눈을 떼기 어려웠다. 내 휴대전화에 시선을 던지다 눈이 마주친, 옆자리의 내 또래 남자가 감회 어린 목소리로 한마디 건네 왔다. “결국 만나긴 하는군요.”

평소엔 수업시간에 일체의 정치적 발언을 삼가는 터다. 그래도 그날은 한 5분쯤 일장연설(?)을 했다. “지금 바로 이 시간, 판문점에선 남북 정상들이 회담을 하고 있다. 겨레의 명운을 가르는 역사적 시간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남북 화해나, 통일에 관심이 없다고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따지고 보면, 분단으로 인한 온갖 비용은 여러분에게도 지워져 있지 않나.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도 오늘의 회담이 잘되기를 기원하자.” 학생들은 내 말을 경청해 주었다. 나는 쑥스러워져서 말을 돌렸다. “이렇게 화창한 날, 회담은 회담이고 우리는 공부를 합시다.” 학생들이 하하 웃었다.

아차차, 장삼이사의 감회가 너무 길어졌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냉정한 시선으로 문재인-김정은 회담을 되짚어 보면, 내 개인적으로는 기대치만큼, 또는 기대치 이상이었다고 요약하겠다. 기대치만큼이란 건 ‘판문점 선언’이란 이름으로 발표된 남과 북의 합의 사항이고, 기대치 이상이란 건 두 사람의 만남이 한반도에 미칠 긍정적 기운이겠다.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은…’으로 시작된 발표문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었음을 8000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하였다’고 선언했다. 이미 채택된 모든 선언과 합의의 이행, 쌍방 당국자가 상주하는 연락사무소의 설치, 광복절 이산가족 상봉 진행, 동해선·경의선 철도와 도로 연결 등 구체안이 담겨 있었다. 상대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 중지, 10·4 회담의 합의 사항을 전제로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와 서해북방한계선 일대의 평화수역화도 들어 있었다.

다들 중요한 내용이고 차근차근 시행돼야 할 일이겠지만,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은 역시 ‘비핵화’와 ‘종전 및 평화체제 구축’일 터. 두 정상은 불가침 합의를 기초로 올해 안에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그리고 그를 위한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 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하겠다는 로드맵을 내놓았다. 모두의 관심사였던 비핵화 문제는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란 조항으로 압축했다.

자유한국당과 일부 언론은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가 담기지 않았대서 깎아내리는 모양이지만, 나는 ‘완전한 비핵화’란 말을 이끌어낸 것만도 잘됐다고 생각한다. 북핵은 기본적으로 북미 간의 타협이 핵심이다. 폐기 방식이라든가 로드맵은 ‘트럼프-김정은 회담’에서 다룰 의제 아닌가. 우리가 다 해버리면 트럼프는 뭣 때문에 김정은을 만나겠나. 북미회담의 징검돌을 놓는 자리인 만큼 이만한 합의를 명문화한 것으로 충분하다. 이걸 두고 ‘위장 평화쇼’라고 딴죽 거는 건 ‘밴댕이 심사’이자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짓’ 아닌가. 이렇게 불신을 증폭시켜서 무슨 도움이 되나.

더 중요한 것은, 이번에 합의된 화해, 교류, 협력 방안이 이행될 환경을 만들어 내는 일이겠다. 까놓고 말해, 5월 말이나 6월 초의 북미회담이 실패한다면 이번 합의도 상당 부분 좌초하거나 추진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우리로선, 트럼프-김정은 회담의 성공에 정성을 다해야 할 터. 한미 간 조율이나, 중국 일본 러시아의 협력을 이끌어 낼 후속 작업이 그래서 중요한 거다.

회담의 모두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역사적인 이 자리에 오기까지 11년이 걸렸는데 오늘 걸어오면서 보니까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 생각 들었다. 우리가 지난 시기처럼 또 원점에 돌아가고 이행하지 못하는 이런 결과보다는 앞으로 마음가짐을 잘하고 앞으로 미래를 내다보며 지향성 있게 손잡고 걸어 나가자.” 문재인 대통령도 이렇게 화답했다. “한반도의 봄, 온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전 세계의 눈과 귀가 판문점에 쏠려있다. 오늘 우리도 그렇게 통 크게 대화 나누고 합의에 이르러서, 우리 온 민족과 평화를 바라는 이 세계 모든 사람에게 큰 선물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두 사람의 말에 남북관계의 고민과 지향점이 담겨 있지 않나. 국제정세가 달라졌다고, 미국이나 한국의 정권이 바뀌었다고 남북 간의 합의가 손바닥처럼 뒤집어져서야 매양 ‘도로아미타불’이지 않을까. 어제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지켜봤던 장면은, 나무 심기나 만찬보다는 두 사람이 도보다리 벤치에 앉아 나눈 30분간의 단독회담이었다. 문 대통령은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설득하는 모습이었다. 김 위원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경청하다가 자신의 속내를 토로하는 듯 보였다. 말은 들리지 않았지만, 그 대화처럼 두 사람이 앞으로도 진심을 다해 남북의 미래를 함께 개척해 나가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이 절로 드는 것이었다.

한 10년쯤 전인가, 나는 통일부가 주관한 북한방문단의 일원으로 개성을 둘러본 적이 있다. 그때 차창 밖으로 보이는 민둥산, 낡고 퇴락한 시가지, 행인들의 남루한 입성에 가슴이 아팠는데 돌아와서도 그 잔상이 오래 남았더랬다. 지금도 크게 달라진 건 없을 거다. 남북, 북미회담이 잘돼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가 깃들고, 그들에게도 따뜻한 삶의 햇살이 깃들었으면 좋겠다. 한편으로는, 부산에서 출발한 기차가 평양, 신의주를 거치고 시베리아를 횡단해 파리나 베를린까지 달리는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이 뛴다.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랄 수도 있겠지만, 시베리아의 원유가 송유관을 타고 우리 땅까지 흘러들어올 수도 있잖겠는가.

문득 오래된 시 하나가 떠오른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이제 시작이다. 우리는 질러진 빗장을 겨우 다시 빼냈다. 이제 초례청 앞에 섰다. 앞으로 우여곡절, 난관은 또 얼마이겠는가. 그래도 햇살 쏟아지는 이 사월, 우리는 손잡고 걸어간다. 가보지 않은 길, 평화와 번영의 길을. 그렇다.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그, 모오든 쇠붙이는 한반도에서 가라.

소설가·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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