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지방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의 표심을 훔치기 위해 후보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지방선거는 이름 그대로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를 이끄는 주역을 선출하는 선거다. 공약을 꼼꼼히 살펴 우리 지역 발전에 이바지할 인물을 뽑아야 할 것이다. 지역 주민이 누리는 삶의 질을 좌우하는 지역 문화정책도 중요한 이슈로 대두해야 하리라 본다.

지역 문화정책이 일대 전환기를 맞고 있다. 중앙정부의 재원과 권한을 지역으로 대폭 이양하는 ‘지방분권’ 개헌이 화두가 되고 있는 가운데, 문화계에서는 ‘문화분권’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역이 중앙의 문화예산을 지원받으려면 중앙에서 마련한 각종 공모사업에 신청해 채택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중앙기관이 제시하는 기준에 맞추다보면 지역 실정에 맞지 않는 사업을 하거나 행정력이 낭비되는 경우도 잦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친 것처럼 지역 정서나 실정에 맞지 않아 겉도는 일도 흔하다. 서로 협력해야 할 지역끼리 공모 과정에서 불필요한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지역이 자체적으로 필요한 정책을 개발하고 사업을 추진하는 자율적 문화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바로 문화분권이다. 문화분권의 핵심은 중앙의 정책과 사업 및 예산을 대폭 지역으로 보내는 것이다. 중요한 결정 권한도 중앙에서 지역으로 이양해 지역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것이다. 문화분권이 실현되면 지역 주민 스스로가 문화의 주체로 나서 생활 속에서 다양한 문화예술을 만들고 누림으로써 윤택한 생활을 향유할 수 있게 되고, 예술인의 창작이 활성화돼 지역 문화 자산을 이용한 다양한 작품을 창작해 국가적으로도 풍성한 문화자산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럼 누가 문화분권의 실질적 주체가 되어야 하는가. 문화분권의 추진 주체를 형성하는 것이 당면과제로 보인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해 12월 문체부 산하기관인 ‘생활문화진흥원’을 ‘지역문화진흥원’으로 명칭을 바꾸고 지역문화진흥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기려 하고 있다. 일반 국민의 아마추어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기관의 성격은 거의 그대로 둔 채 명칭 변경을 통해 포장만 바꾼 것도 문제이지만 지역 사정을 잘 모르는 전문가 중심의 중앙기관이 문화 분권의 주체로 등장해 지역문화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는 것은 지방 분권의 시대정신에 맞지 않아 보인다.

문화분권의 추진 주체로는 지자체별로 설립되어 있는 지역문화재단이 바람직한 것 같다. 지역문화재단은 199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설립되어 왔고, 특히 2014년 지역문화진흥법 제정 이후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현재 광역지자체 문화재단이 16개(17개 중 94%), 기초지자체 문화재단이 71개(226개 중 31%) 설립돼 운영 중이며, 앞으로 더 늘어날 추세다. 이들 문화재단이 주로 하는 일은 공연장 전시장 등의 문화시설 운영, 예술창작 지원, 문화예술 교육, 축제 개최, 문화도시 조성, 문화 전문인력 양성, 국제교류 등 지역에서의 다양한 문화사업이다. 지역문화 진흥의 플랫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또 광역지자체 문화재단들은 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한광연), 기초지자체 문화재단들은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전지연)란 연합기구를 각각 구성해 협력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역문화진흥원은 원래대로 생활문화진흥원으로 되돌려 일반 국민의 생활 문화 진흥에 힘쓰게 하고, 지역문화 진흥은 지역문화재단들에게 맡기는 것은 어떨까. 한광연과 전지연을 묶은 ‘한국지역문화재단협의회’(가칭 한지협)에 지역문화 진흥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기면 좋겠다. 연합기구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느냐고 의문을 품을 사람도 있겠다. 그러나 전국 215개 문화예술회관들을 회원사로 거느리고 있는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한문연)도 1996년 문예회관들의 연합기구인 사단법인으로 출범했다가 2012년 법정법인으로 승격돼 문체부 산하 기관이 됐다. 한문연은 매년 중앙정부 예산을 집행하며 전국의 문예회관을 촘촘히 지원해 뿌리내리고 있다.

한지협이 설립된다면 ‘지역’과 ‘사람’이 중심이 되는 문화분권을 앞당겨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문화재단의 자율성을 신장하는 법과 제도의 개선, 국가 문화예산의 과감한 지역 이관, 지역 간의 문화 협력과 교류, 주민 참여와 문화 다양성 확대, 지역문화재단 역량 강화 등의 사업을 펼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지역의 사정과 특성을 잘 아는 지역 문화재단 대표들이 지역 문화정책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때 진정한 의미의 문화분권이 실현될 수 있다. 그때 비로소 지역은 제 몸에 맞는 멋진 옷을 입을 수 있을 것이다. 지역분권시대에는 문화에서도 지역이 주체적으로 서야 한다.

김해문화재단 김해문화의전당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