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안악3호분의 고분벽화에는 군사행렬도뿐 아니라 당시 생활상도 그려져 있다. 부엌 마구간 외양간 방앗간 등의 집안 부대시설이 그것이다. 한 부엌에서는 여인 3명이 조리하거나 소반 위에 그릇을 쌓아 올리고, 부뚜막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장면이 나온다. 발방아를 찧는 여인, 그 옆에서 키질을 하는 여인도 보인다. 근처에 크고 작은 ‘독’들이 길게 놓여져 있는 모습도 눈에 띈다.

독은 한자어 옹(甕) 또는 옹기(甕器)의 우리말이다. 흙·물·불·바람으로 빚어내는 옹기는 일반적으로 황갈색 유약을 입힌 질그릇의 총칭. 우리 민족의 독특한 음식·생활용기로, 삼국시대부터 만들어졌다. 신라와 백제에서는 쌀과 술, 기름과 간장, 젓갈 등을 여기에 담아뒀다는 기록이 있다.

그 형태는 장독, 동이, 소래기, 단지, 시루, 거름통, 약탕기, 식초병 등 아주 다양하다. 화분이나 등잔, 풍로, 질화로, 취사 및 운반용구 같은 것에도 사용됐다. 조선 초기 ‘경국대전’에는 이를 만드는 옹장(甕匠) 이야기가 적혔다. 황순원의 단편소설 ‘독 짓는 늙은이’(1950년)도 마찬가지다. 흙으로 독을 빚고 구워내는 일에 한평생을 바친 송 영감이란 노인이 주인공. 그가 독가마 앞에서 죽음을 맞는 마지막 대목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이렇듯 옹기는 우리 민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오랜 역사를 지녔다. 그 속담도 숱하게 많다. 하지만 시대 변천에 따라 쓰임새가 옛날만 못하고 급격히 줄어드는 추세다. 각종 편리한 생활용품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어쩔 수 없는 일이나, 한민족 고유의 옹기문화마저 사라져서는 곤란하다.

그 점에서 울산 울주군 온양읍 외고산 옹기마을은 소중한 존재다. 국내 최대 옹기 집산지이자 민속시설 집결지이니 말이다. 이곳에서는 ‘대한민국 옹기 공모전’이 진행 중이고, 다음 달 4~7일에는 옹기축제가 펼쳐진다. 무형문화재 장인들의 옹기 작품 시연, 관람객 대상의 체험 프로그램과 문화공연이 마련된다고 한다. 옹기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실용적 상품 개발의 계기로 삼겠다는 뜻이다.

요즘 재활용이 새삼 화두다. 폐기물 처리 문제가 워낙 심각하니 그렇다. 특히 썩지 않는 플라스틱, 폐비닐 등은 정말 골칫거리다. 이대로 뒀다간 환경재앙이 닥칠지 모른다. 옹기축제 소식을 접하며 떠오르는 생각이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