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회는 ‘고비용 저효율 집단’의 상징으로 꼽힌다. 제 할 일은 하지 않고 막대한 세비를 축낸다는 점에서다. 거기에다 200가지가 넘는 특권을 누리니 국민적 불신과 지탄의 대상이 될 만하다. 설령 4년 임기 내내 국회에 불출석한다고 해도 아무런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 게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다. 연금은 의원 신분을 하루만 유지해도 받도록 돼 있다. 이보다 더 좋은 직업이 또 있을까 싶다.

상당수 중진 의원이 이런저런 핑계로 툭하면 국회 본회의를 빼먹는 것도 그런 연유일 터다. 최근 한 매체가 20대 국회의원 293명의 전반기 본회의 출석률을 조사한 결과, 무단결석 상위 10명 중 9명이 재선 이상 다선 의원이었다. 1위는 8선으로 최다선인 자유한국당 서청원 의원. 그는 84회의 본회의 중 38회(45%)만 참석했고, 사유서 제출 없이 임의로 빠진 것도 46회에 이른다고 하니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올해 초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제안 게시판’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국회의원 급여를 최저시급으로 책정해 주세요’. 나랏일 제대로 하고 국민에게 인정받을 때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바꿔달라는 등의 내용이다. 이 청원에는 27만7674명이 참여하면서 청와대 답변 기준(한 달 이내 20만 명 이상)을 가뿐히 넘었다. 물론, 청와대가 해결할 수는 없는 문제다. 그럼에도 청와대에 이런 요구가 몰린 건, 속 터지는 마음을 그렇게라도 표출하고 싶어서일테다. 그 청원은 이미 마감됐지만, 같은 게시판에는 국회의원 급여나 특권 등에 대한 비판 글이 수백 건 게재돼 있다. 대통령 연임제처럼 국회의원을 연임만 가능하도록 하고, 무보수와 함께 모든 특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내용도 눈에 띈다.

이처럼 국회와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이 우리처럼 강한 나라는 드물 듯하다. 따지고 보면 개헌의 최대 걸림돌도 그런 불신과 의원 특권이란 얘기가 있다. 제왕적 대통령에 쏠린 권한을 국회로 분산하고, 의원 정수 확대가 불가피한 선거제 개편(연동형 비례제표제 도입)을 위해서는 국회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전제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까닭이다. 이원정부제와 의원내각제가 대통령제보다 국민 찬성률이 현저히 낮은 것도 마찬가지다.

그간 정치권에서는 국회의원 특권을 내려놓겠다는 말을 숱하게 했다. 총선이나 대선 등의 단골메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만이었다. 결국 선거용 립서비스였던 셈이다. 2년 전에는 국회의장 직속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추진위원회’라는 기구까지 구성해 개혁안을 내놨다. 의원 연봉 삭감, 독립기구에서 의원 보수 산정, 외국출장 때 공관 지원 최소화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정당들의 미온적 태도로 사문화되고 말았다.

이번에도 그런 약속이 또 나왔다. 지난달 자유한국당이 국회의원 불체포·면책 특권과 특수활동비 폐지, 세비 결정권 반납 등을 발표한 것이다. 개헌안에 그 내용들을 담자는 뜻이다. 두고 볼 일이나, 실현되리라 믿는 국민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특권을 없애자는 판에 당 대표 일행이 공항에서 보안검색 없이 탑승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VIP검색대 사용 운운하는 걸 보니 말이다. 더구나 같은 당 소속 의원은 그 사건과 관련된 공항관계자들이 경찰 수사를 받게 되자 국회 상임위에서 이를 장관에게 따지고 ‘야당 의원 서러워 못 해 먹겠다’며 퇴장하는 볼썽사나운 모습까지 나타냈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에 대한 논란 또한 국회의원 특권의 비뚤어진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가 민주당 의원 시절 피감기관 돈으로 외유성 해외출장을 다녀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변명의 여지가 없다. 국민 눈에 온당하게 보일 리 만무해서다. 더 놀라운 사실은 수천 개 피감기관 중 16곳의 실태를 봤더니 이들 기관 지원으로 해외출장을 간 경우가 민주당 65차례, 한국당 94차례 등 167차례나 됐다는 점이다. 의원들이 관행이란 미명 아래 몰염치한 행태를 다반사로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데다 한국당 원내대표는 얼마 전 가족과 함께 항공기로 제주여행을 다녀오면서 자신의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고 두 차례 탑승한 사실이 드러났다. 규정 위반이라 일반인은 탑승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상황인데, 그가 어떻게 비행기를 탈 수 있었는지는 ‘불문가지’다.

요즘 프랑스에서는 정치개혁 바람이 거세다. 상·하원 의원 30% 감축, 예산안 표결 시한 단축 등의 개혁법안이 발의됐다. 비효율적이고 민의와 동떨어진 정치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다. 반면 우리 국회는 거꾸로 가고 있다. 4월 임시국회만 해도 보름이 넘도록 개점휴업 상태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판하면서 의원 자신들의 제왕적 금배지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는 듯하다. ‘철밥통 같은 국회의원도 이제 최저임금을 받고, 국민소환제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성난 민심의 목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