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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사연 있는 그림 하나쯤 /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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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2015년 아버지 장례 치른 뒤에 너무 생각나서 구입했어요. 그림 속 할아버지가 마치 제 아버지 같았거든요.”

공무원 봉급으로 7년간 미술품 300여 점을 구입해 화제가 된 법무부 부산출입국사무소 허욱 팀장(국제신문 지난 10일 자 2면 보도). 부산 해운대 신시가지 코오롱아파트 상가 3층 ‘화; 고방’ 갤러리에서 만난 그는 컬렉션전에 선보이는 그림 50여 점에 얽힌 일화를 한 점씩 정성스럽게 설명해줬다. 작품을 산 경로, 작가에 대한 평소 생각, 작품이 좋은 이유 등 그의 ‘보물’ 50점에 대한 소개만 한 시간이 걸렸다. 특히 마음을 울린 그림은 민중미술가 이윤엽의 판화 작품 ‘중풍 걸린 사람’이었다.

허 팀장은 아트페어에서 이 그림을 처음 봤다고 했다. 아트페어 구석 자리 부스에 액자도 없이 걸려 있던 작품이었다. 작가노트가 그의 눈길을 끌었다. ‘산에 올라가면 늘상 만나는 중풍 걸린 사람, 이 분은 참으로 내공이 크다. 산길을 헤치고 나왔는데도 옷매무새가 흐트러짐이 없다. 자식들이 잘사는 것 같다. 옷이 항상 깔끔하다’는 작품의 뒷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허 팀장은 그림의 주인공이 꼭 아버지 같았다. 아버지는 그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중풍에 걸렸다. 몸의 왼쪽 중심이 무너져 왼손이 항상 아래로 향하고 오른손은 지팡이를 짚은 모습이 아버지를 떠올리게 했다. 2015년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집에 왔는데 이 그림이 너무 생각이 났다. 경기도 평택 대추리에 사는 작가에게 이메일로 작품을 의뢰했다. 한 가지 부탁을 곁들였다. 작품에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군인이자 영어선생, 울 아빠’라고 써달라고 했다. 작가는 그의 부탁을 들어줬다. ‘중풍 걸린 사람’은 허 팀장이 가장 아끼는 작품 중 하나다.

이윤엽은 미술시장에서 작품 가격 면에서 그리 촉망받는 작가는 아니다. 그는 팔릴 만한 꽃·풍경을 그리거나 유행하는 사조를 좇지 않는다. 그보다 사회적 약자를 위로하고,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목판화를 많이 만든다. 허 팀장은 그런 이윤엽의 판화 작품이 좋아 여러 점 구매했다. 허 팀장 같은 컬렉터의 존재는 이윤엽 작가가 작품활동을 이어가는 큰 동력임이 틀림없다.

국가도 지방자치단체도 ‘문화’를 이야기한다. 부산의 시정 목표는 ‘문화로 융성하는 도시 부산’이기까지 하다. ‘문화로 융성한’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오페라하우스를 짓고, 아트센터를 만들고, 더 많은 미술관이 들어서면 문화로 융성한 도시가 될까. 허 팀장을 만나고 생각했다. 문화가 융성한 도시는 집집마다 사연 있는 그림이 하나쯤 걸려 있는 도시가 아닐까.

문화부 lin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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