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당의 지방선거 후보군을 들여다보니 한숨이 절로. 정치판을 유랑하던,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 ‘올드 보이’가 적지 않기 때문. 이런 현상은 자유한국당이 훨씬 심해.여당이라 해서 대통령의 후광 효과만 믿고 새로운 인물 발굴과 정책 개발에 소홀하다간 큰코다칠 수도 있어.

서병수 현 시장과 오거돈 후보의 ‘리턴 매치’가 된 부산시장 선거. 선거란 주어진 인물 중에서 쓸 만한 사람을 뽑는 절차. 나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고의 가치로 아는 사람, 초고층 건물 허가 척척 내주는 시장보다 공원·문화시설 만들 사람을 뽑겠다. 특별히 기형적으로 변질할 우려가 큰 북항 재개발을 제대로 마무리 지을 사람이면 좋겠다.


버스를 타고 거리를 지나는데 요란한 확성기 소리가 들려 무심코 고개를 돌렸더니 어느 정당의 유세차량이었다. 어깨띠를 맨 사람도 눈에 띄었다. 벌써 저러나 싶어 지방선거 날짜를 꼽아 보곤 두 달이 채 남지 않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이렇게 해서 선거가 시작되나 보다. 아직은 신문, 방송에서만 요란할 뿐 유권자들이야 무관심하고 심드렁한 표정이지만. 선거에 대한 관심이야 어찌 됐든 주요 정당의 후보자가 속속 확정되고 있다.

서울의 경우 더불어민주당에선 박원순 현 시장과 박영선·우상호 의원이 당내 경선을 앞두고 있고, 자유한국당에선 김문수, 바른미래당에선 안철수 씨가 확정됐다. 경기도의 여당에선 이재명·전해철 두 사람 중에서 나설 거고 자유한국당에선 남경필 현 지사가 공천장을 받았다. 수도권과 호남에선 여당의 누구라도 야당 후보와 현격한 지지율 격차를 보인다.

정도의 차는 있지만 대구·경북 빼고는 비슷한 양상이어서 이번 선거는 맥 빠진 대결이 될 거란 소리도 나오지만 그건 성급한 예측이다. 선거란 투표함을 열어보기 전까진 모르는 거고, 조변석개하는 게 민심 아닌가.

그나마 호사가들의 관심을 끄는 곳은 PK지역일 터다. 부산에선 서병수 현 시장과 오거돈 전 해수부 장관의 ‘리턴 매치’가 성사됐다. 경남은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김경수 의원과 전직 경남지사인 김태호 씨의 대결이 예고돼 있다. 울산은 현직인 자유한국당 김기현 시장에게 변호사 출신인 송철호 씨가 도전장을 내민 형국.

하지만 각 당의 후보군을 들여다보니 한숨이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수십 년간 정치판을 유랑하던 ‘올드 보이’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맥아더 말마따나 노병은 사라질 때는 사라져야 하지 않나. 나이가 많아서 ‘올드 보이’란 게 아니다.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란 거다. 이런 현상은 자유한국당이 훨씬 심하다. 서울만 해도 김문수는 경기지사를 거쳐 대구에서 국회의원에 나왔다가 떨어진 사람이다. 근자엔 ‘태극기 집회’에서 극우적인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홍준표 대표가 손사래 칠 만한 사람만 일부러 골라 출마를 권유했다가, 돌고 돌아 김문수로 낙점한 건 이미 서울을 포기한 게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는 판이다.

경남도 마찬가지. 김태호라면 경남지사를 이미 두 번씩이나 지낸 사람이다. 이명박 정권 때 국무총리로 지명됐다가 이런저런 흠결로 낙마한 적도 있다. 새 술은 새 병에 담아야지 이미 흘러간 이를 지명도 하나 보고 또 내세우나. ‘홍준표식 공천’의 절창은 무어니 해도 충남지사 후보로 이인제를 내세운 것. 그가 알려진 건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시 대선주자였던 이회창을 견제할 ‘젊은 피’로 꼽은 게 계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도대체 언제 얘기인가. 이미 23년 전이다. 그때의 ‘젊은 피’는 이미 ‘낡은 피’의 대명사가 돼버렸다.

닳고 닳은 ‘올드 보이’를 내세운 것에서 보수 정당의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엿보인다. 쓸 만한 사람이 다들 외면하는 것 자체가 ‘늙은 보수정당’의 어두운 그림자가 아닐까. 박근혜 탄핵과 구속 이후에도 반성과 혁신을 외면하고 구태의연한 발목 잡기나 종북몰이에만 의존하니 그렇잖나. 선거를 앞둔 정당에 모진 소리가 될진 모르지만, 이대로라면 기껏 광역단체장 2, 3석 건질 뿐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도 대패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럼 장기적으로는 소멸의 길을 걷다가 새로운 보수 이념을 내세운 정치세력에게 대체당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여당이라 해서 썩 후한 점수를 받고 있는 건 아닐 게다. 지금에야 지지율 70%를 오르내리는 대통령의 후광 효과로 야당들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있지만 집권당다운 인물 발굴과 시대에 맞는 정책 개발에 소홀한 채 대통령의 옷자락이나 잡아끄는 ‘코트테일’전략으로 일관하다간 큰코다칠 수도 있을 터. 선거란 반전의 미학을 가진 ‘정치의 꽃’이란 말이다.

어쨌거나 개인적으로 아쉬운 대목은 이번 지방선거의 핵심적인 정책 쟁점이 떠오르지 않고 있는 것. 2016년 선거에선 ‘무상급식’ 같은 민생 이슈가, 2014년엔 세월호 사고의 여파로 ‘안전한 나라 만들기’가 쟁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상급식이나 국민 안전권은 국가 어젠다이지만 지방정부의 몫도 적지 않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쟁점이었다. 좀 더 기다려 볼 일이지만, 이번 선거의 전국적 쟁점은 ‘남북, 북미 대화’와 ‘개헌’ 정도가 아닐까. 하지만 지방선거 이슈론 어울리지는 않는다. 지방 분권화와 지역 경제 살리기, 중앙과 지방정부가 힘을 합쳐 실행할 만한 일자리 만들기 같은 실용적이고 민생 중심의 정책 대결이 펼쳐져야 할 터.

내가 부산 사람이니 부산시장 선거에 관심이 없을 수는 없다. 수성에 나선 서병수 현 시장과 ‘3전4기’에 나선 오거돈 후보의 ‘리턴 매치’는 이번 선거에서 전국적인 관심을 끌 거다. 보수정당 후보가 낙선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보수의 아성’이었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이젠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 2014년 지방선거만 해도 두 사람의 득표율이 50.65% 대 49.43%였지 않았나. 겨우 1.22%포인트 차이였으니 오 후보는 다 잡은 대어를 놓친 꼴이었고 서 후보는 사자굴에 끌려갔다가 겨우 살아났던 건 다들 기억하는 바다. 게다가 재작년 총선에선 당시 야당이 5석이나 확보했던 터다.

솔직히 나는 기시감을 주는 ‘올드 보이’들의 리턴 매치가 그다지 달갑지 않다. 부산에 활력을 줄 참신하고 역동적인 인물들이 나섰더라면 좋을 텐데. 부산시장 자리를 최종 목표로 안주할 이들보다는 정치적 청사진과 장래성을 가진 인물이면 더 좋았을 거다. 하지만 선거란 어차피 주어진 인물 중에서 쓸 만한 사람을 뽑아내야 하는 절차 아닌가.

지난 선거에서 사실상 범야 단일 무소속 후보로 나섰다가 쓴잔을 마신 오거돈 후보는 정권이 바뀐 이번엔 여당 후보로 나섰다. 아깝게 떨어진 전력도 있고, 네 번이나 선거에 나섰으니 “이번엔…” 하는 동정(?)여론도 있는 모양이다. 개인적인 지명도에다 아직까진 지지도에서 비교우위가 있고, 대통령과 여당에 우호적인 국민 일반의 여론을 타고 있으니 이번엔 해볼 만할 게다. 그러나 ‘늙은’ 이미지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한 번쯤 시장 자리를 누리다가 그만둘 사람이 아니냐는 시민들의 의구심을 어떻게 불식하느냐가 그의 과제일 터다.

서병수 후보로선 이번 선거가 지난 4년의 시정에 대한 심판의 자리이다.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시민들은 그의 4년에 그다지 후한 평가를 하지 않고 있는 게 사실이다. 부산의 지난 4년은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었던’ 시간이지 않았나. 후하게 쳐주면 비교적 안정적으로 시정을 꾸렸다는 이야기가 되겠지만, 부산의 청사진을 내놓고 실행하지 못했다는 뜻도 된다. 지난 4년에 대한 시민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한편으로 새로운 4년에 대한 청사진을 제대로 내놓는 것에서부터 그의 선거운동이 시작돼야 할 터.

유권자로서 나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고의 가치로 아는 사람을 우선해서 뽑겠다. 이를테면 고리원전 문제에 진짜 관심을 갖는 사람, 아이들이 탈 없이 등하교하도록 신호등이라도 하나 더 만들 사람 말이다. 홀로 사는 노인과 결손 가정 아이들이 눈칫밥 먹지 않게 해주겠다는 사람도 좋다.

시민의 일상적 행복을 늘려주겠다는 사람도 스카우트 대상이다. 복잡한 도심에다 초고층 건물 허가를 척척 내주는 시장보다는 공원이나 문화시설을 만들 사람이 누군지 살피겠다. 특별히, 자칫 기형적으로 변질할 우려가 큰 북항 재개발을 제대로 마무리 지을 사람이면 좋겠다. 덧붙이자면 ‘가덕도신공항 유치’ 비슷한 공약은 이제 그만 봤으면 좋겠다. 신공항 유치를 반대해서가 아니다. 역대 정권과 시장 후보마다 ‘동남권신공항’을 가덕도에 만든다고 큰소리쳤지만 결국 공염불이 되고 말았잖나. 부산과 인접 도시들의 불화나 일으키고, 시민들을 거듭 실망하게 한 것 말고 뭐가 있었나. 이번엔 속고 싶지 않을 뿐이다. 대차게 나갈 자신이 없다면 남이 씹다 단물 다 빼 먹곤 기둥에 붙여놓은 껌을 다시 떼다 우물거리지는 말라.

어쨌든 선거철이 다가왔다. 황사바람 같은 선거 바람도 불어오겠지. 이번엔 제발 허위 비방전을 벌여 고소 고발 따위로 선거가 얼룩지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름대로 경륜 있는 사람들 아닌가. 공정하고 당당한 경쟁을 펴기를 기대한다.

소설가·경성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