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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건 칼럼] 박근혜 선고를 기억하는 두 가지 시선

‘문재인판 블랙리스트’ 등 야당 딱지 억울하다지만

‘오늘을 잊지 않겠다’는 청와대 다짐 흐트러지면 과거 정권과 다를 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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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은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1심 재판부가 징역 24년을 선고했다. 우리 헌정사의 엄청난 비극임에도 중형이 예상된 탓인지 국민 대다수는 그러려니 했다. 법원 앞에 모여든 태극기 부대의 외침은 더욱 공허하게 들렸다. 그 때문인지 청와대는 “오늘 모두의 가슴에는 메마르고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고 다소 감상 섞인 논평을 내놨다. 자유한국당조차 “오늘 판결 내용은 예견됐던 것”이라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한 꺼풀만 더 들여다보면 이날의 중형 선고를 바라보는 같은 듯 다른 두 가지 시선이 느껴진다. 청와대는 안타까움과 함께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오늘을 잊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을 교훈으로 삼겠다는 다짐인 셈이다. 자유한국당은 “오늘 이 순간을 가장 간담 서늘하게 봐야 할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날을 세웠다. 홍준표 대표는 페이스북에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올렸다. 대표적 친박인 김진태 의원도 페이스북에 “오늘을 기억하자. 역사는 반복된다”고 썼다. 요컨대 한국당 또한 이날을 청와대와는 다른 측면에서 결코 잊지 않겠다는 결기를 비친 것이다.

한국당의 결기는 곧바로 이어졌다. 최근 일부 언론이 제기한 이른바 ‘문재인 정권판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서다. 외교 안보 관련 국책연구소나 정부 입김이 센 기관 단체에 비판을 자제하라거나 방송 출연을 금지시키라는 정부 측 주문이 잇따르고 있다는 보도에 따른 것이다. 여기에다 우리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는 미국 존스홉킨스대 산하 한미연구소의 소장 교체 압력 의혹까지 불거졌다. 보수 성향으로 알려진 이 연구소 소장의 인사에 청와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이야기다.

이를 두고 장제원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문재인 정권은 비참한 말로를 맞았던 여느 정권들과 너무도 똑같은 길을 가고 있다”며 “문재인 정권판 블랙리스트 진실은 그리 오래지 않아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전 정권 아래에서 이뤄진 블랙리스트와 같은 행태가 문 정부에서도 재연되고 있다는 공세다. 블랙리스트 혐의 등으로 박 전 대통령이 중형을 선고받은 바로 다음 날 똑같은 블랙리스트 딱지를 문 정부에 붙인 것이다.

문 정부로서는 난데없는 블랙리스트 딱지에 발끈할 만했다. 청와대 대변인이 곧바로 해당 보도를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국책연구소 등에 이런저런 압력을 가했다는 내용의 사실관계가 맞지 않거나 근거가 부족하다는 게 청와대 반박의 골자다. 존스홉킨스대 산하 한미연구소 소장 교체 요구도 국회 차원의 문제 제기로 청와대 행정관이 자문에 응하는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청와대 해명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면이 없진 않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일 수도 있고, 특히 의혹이 옳든 그르든 이번 사안을 ‘문재인 정권판 블랙리스트’라고까지 할 만한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일부 언론 보도를 두고 옳다구나 하며 한 발 더 나간 한국당의 공세 역시 볼썽사납다. ‘간담 서늘’ 운운하며 틈만 생기면 문 정부에 복수의 칼날을 들이대려는 적개심이 고스란히 묻어나서다.

그러나 오얏나무 아래에선 갓끈도 고쳐 매지 말아야 하는 법. 청와대는 해당 의혹이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 또한 일부에게는 과거 정권에서 숱하게 내뱉던 변명처럼 들릴 수 있다. 더구나 박근혜 선고를 결코 잊지 않겠다는 한국당으로서는 이번 사안처럼 조금이라도 허점이 보이면 박 전 정권의 국정 농단 사례를 들이밀며 블랙리스트 같은 온갖 딱지를 붙일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이 같은 또 다른 국정 농단 프레임에 말려 들지 않으려면 사소한 논란의 소지라도 남기지 말아야 옳았다.

이번 의혹이 아니더라도 문 정부가 과거 보수 정권과 무엇이 다르냐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는 마당이다. 이 중엔 얼토당토 않는 견강부회식 공세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몇 가지 문제만 해도 야당 등이 마냥 근거 없는 비판만 쏟아낸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없지 않다. 교육정책 등의 엇박자로 당정청이 삐걱대기 일쑤다. 민주당 전직 의원 등을 낙하산으로 꽂는 것도 과거 보수 정권과 그다지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쓴소리는커녕 청와대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소리마저 나온다.

청와대는 우리는 다르다며 억울해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알게 모르게 조금씩 초심이 무뎌지는 게 권력의 속성이기도 하다. 이전 정권의 잘못을 닮아가면서도 스스로를 합리화해서는 달라질 게 없다. 곧 집권 2년 차에 들어서며 ‘오늘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결코 빈말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부메랑이 될 것’이라며 달리 ‘오늘을 기억하겠다’는 서슬 퍼런 덫에 스스로 걸려드는 비극이 벌어져서야 될 일이 아니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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