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한 마음으로 시작한 3월의 마지막 토요일이었다. 따뜻해진 봄날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걷힌 쨍한 하늘도 반가웠다. 저녁에는 연말에 여행을 함께 떠나기로 한 부부와 동반한 술 약속도 있었기에, 그런 마음이 들 이유는 전혀 없었다. 역시 이유는 단 하나. MBC ‘무한도전’(이하 무도)이 끝나는 날이었던 탓이다. 처음 ‘무도’가 끝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혹자는 바보상자 따위에 홀려버린 일차원적 인간이라고 혀를 찰지도 모르겠지만, 나의 20·30대를 함께 해온 ‘무도’의 13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물론 시즌 1이 끝난 것이라고는 하지만, 나를 비롯해 많은 애청자는 사실상 종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인터넷에는 즐겁게 웃을 수 있게 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그보다 더 큰 아쉬움을 여기저기서 토로하고 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평범한 진리도, 갑작스럽게 찾아오다 보니 한동안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마지막 토요일 저녁은 기어이 오고야 말았다. 한동안 바빴던 뒤에 맞이한 오랜만의 본방사수였다. 생각보다는 담담하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방송은 진행되었고, 멤버들은 마지막 인사를 주고받았다. 나는 마시려고 냉장고에서 꺼내 둔 맥주 캔이 다 식도록 따지 못했다. 왠지 소주가 당기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문득 대학 시절 친구들과 내일에 대한 별다른 걱정 없이 껄껄 웃으며 ‘무도’를 보던 시간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이제는 무슨 일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다음 날 출근이 너무 걱정되던 일요일도 떠올랐다. 온종일 침대에 누워 ‘무도’ 재방송을 보며 기분을 추슬렀다. 그런 휴식 시간을 종종 가지곤 했는데 꽤 큰 위로였다. 언젠가 아내와 말다툼을 한 후 서로 말없이 저녁을 먹으며 ‘무도’를 본 일도 생각이 났다. 역시, 덕분에 우리는 실없이 웃었고 자연스럽게 화해했다. 고작 TV프로그램이었을 텐데. 돌이켜보면 어느새 나의 삶 순간순간들에 깊게 뿌리 내리고 있었다. 나는 결국 울컥하고 말았다. 그날따라 소주가 집에 없어서, 다행히 예능을 켜놓고 울면서 소주를 따르는 요상한 모습을 아내에게 보이진 않았다.
애청자로서 조금 더 ‘오버’하여 - 물론 나는 전혀 과장이라고 생각지 않지만 - 말한다면, ‘무도’는 한 시대를 이끈 문화적 흐름이었고, 상징이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2000년대 우리 사회는 이성과 합리의 시대에서 감성과 공감의 시대로 변화되는 시기였다. 삶의 숨겨진 무게 중심들도 서서히 이동했다. 근면과 성실의 기치는 여유와 느긋함으로, 고상함과 진중함의 사회적 관계들은 유쾌함과 가벼움이 대신하기 시작했다. 그런 시절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무도’가 있었다.
허술하고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인간적인 면을 부러 가리지 않은 멤버들의 신선한 모습은, 대중적 재미를 추구하는 예능으로서의 본연의 기능을 매우 충실하게 구현했다. 나아가 ‘무도’만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정치, 경제, 청년, 사회, 문화의 영역으로 예능을 확장하는 대범함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도 우스꽝스러운 대결에 기꺼이 참여했고, 아이돌 정치인 웹툰작가 인문학자 예술가들은 ‘무도’를 통해 자신과 자신들이 속한 세계를 유쾌하고 가볍고, 공감될 수 있도록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 그야말로 국민예능이었다.
무엇보다 ‘무도’는 최초의 프로그램명이었던 ‘무모한 도전’의 기치를 바탕으로 한 기상천외하고, 때로는 전혀 의미 없어 보이는 일들에도 적극 도전해왔다. 그런 가벼움이 아이러니하게도, 한없이 무거운 현실의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든든한 지지대였다. 사실 우리 시대는 ‘실패해도 좋다’며, 마치 너그러운 듯 도전을 강조하는데, 잘 살펴보면 은근히 부를 누리거나, 명예를 얻거나, 적어도 타인이 인정할만한 가치를 창출하는 도전만을 지지한다. 당연히 피로감과 부담이 쌓일 수밖에 없다. 때로 억지로 가치를 찾기 위한 강박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무도’의 어처구니없는 도전들을 보며 여유와 느긋함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 한 시절, 하나의 우주가 이제 내 삶에서 작별을 고했다. 살아가면서 몸과 마음에 쓸데없는 무게들이 쌓일 때면 무척 그리워질 것 같다. 안녕 무한도전. 고마웠어요.
문화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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