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날씨답다, 얼마나 변덕스러운지. 지난주는 제법 따사로워 아이들과 봄 이야기를 나눌 작정이었다.
막상 아이들이 왔는데, 햇살이 점점 기운을 잃더니 책방 참새반에 냉기가 돌았다.
“얘들아! 지금이 봄 맞아? 선생님은 너무 추워서 겨울인 거 같아. 겨울 맞지?”
내 말에는 언제나 “아니에요!”라고 대꾸할 준비가 되어 있는 아이들도 헷갈리는지 대답이 한참 만에 나왔다. “봄이에요! 학교에서도 봄 책 하는데요.”
나도 언제나 아이들에게 “아닌 것 같은데?”하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순순히 넘어가는 건 생각할 기회를 뺏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너희들이 본 봄 말해봐. 봄이라면 증거가 있겠지.”
동현이는 온천천에서 나무에 새잎이 난 것을 보았다고 했다. 채하는 학교 가다 더워서 잠바를 벗었다 했고, 가영이는 엄마가 물통에 따뜻한 물 대신 차가운 물을 넣어줬다고 했다. 채원이는 분홍색 꽃을 보았고, 민준이는 밖에서 뛰어놀았단다.
“성현이는 오늘도 마스크 했잖아. 목도 따뜻하게 하고 왔고. 그러니까 아직 겨울이지.”
내가 수긍을 안 하니 아이들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뭘. 너희들도 아직 다 내복 입었잖아. 잠바도 저렇게 두꺼운 거 입고 왔으면서.”
그러자 가영이가 얼굴 가득 웃으며 큰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나는 오늘 내복 벗고 이것만 입고 왔어요!”
맞다. 춥기는 하지만 그래도 봄은 봄이지. 아이들에게 몇 년 전 책방 마당에서 찾은 봄을 보여주었다.
봄 찾기 / 1학년 주명서 임은서 이상윤
참새가 많이 돌아다닌다/ 동백꽃이 많이 떨어졌다/ 병아리가 태어났다 / 민들레가 바람에 흔들린다/ 제비꽃이 예쁘다 / 참새가 짹짹 운다 / 나무에 새잎이 많이 나왔다.
“선생님. 진짜 병아리가 태어났어요?” 그랬다. 책방 마당에는 한때 어미닭이 있었고 병아리가 태어났다.
강아지와 토끼가 있었던 적도 있다. 마당 식구들은 시골로도 가고 탈출하기도 하고 고양이에게 먹히기도 했다. 그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니 아이들의 눈빛이 아련하다.
본 적도 없는 병아리와 토끼를 그리워하는 눈빛이다. 지금도 병아리와 토끼가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눈빛이다.
“선생님. 그런데 참새도 많이 있었어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만 나오면 나는 의기양양해진다. “그럼! 많지. 날이 따뜻해지면 마당에 참새가 많이 와. 그런데 왜 오는지 알아?”
이번에는 아이들이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내가 답을 말해준다.
“바로 나 때문이라고, 참새선생님이 있어서라고, 참새선생님과 참새들은 친구니까 놀러오는 거라고.”
아이들의 눈에 호기심이 가득 어린다.
“그런데 왜 선생님은 참새선생님이에요?”
3학년만 되어도 ‘개구리선생님의 비밀’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고 하고 넘어갈 테지만, 2학년들이어서 친절하게 이유를 말해준다.
“왜냐하면 나는 가끔 참새로 변하기 때문이야.” 아이들의 눈은 커질 대로 커진다. “진짜예요, 진짜예요, 진짜예요?”
“그럼, 진짜지, 옛날에는 자주 변했는데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 자주 못 변해, 변하는 데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거든, 한 번 변하면 너무 오래 쉬어야 해서….”
아이들은 절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하고도 입을 못 다문다. “아니지요, 아니지요, 아니지요?”
“진짜야, 나는 누가 볼 때는 안 변해, 놀라서 난리 나거든, 비오는 날도 안 변해, 비 맞으면서 날기 싫어서, 좁은 곳에서도 안 변해, 날개 부딪히니까.”
이쯤 되면 아이들은 참기 힘들다. 그 이상한, 신기한 장면을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선생님 변해보세요, 참새로 변해보세요, 한 번만 변해보세요!”
“안 돼, 집에 가서 엄마한테 말할 거잖아, 사람들이 알면 정신없어, 기자들 오고, 신문 텔레비전에 나고, 그러니까 절대 안 돼.”
“비밀 지킬게요, 말 안 할게요, 한 번만 변해보세요, 딱 한 번만요!”
“그래도 안 돼!” 설마 하면서도 참말이길 바랐는데 끝까지 거절하니 아이들이 냉정해진다.
“흥! 거짓말.”
이때 짜잔! 내가 변하면 얼마나 좋을까. 내 말이 참말이라면 정말 좋겠다.
아마 이명박 전 대통령도 자신의 말이 참말이길 그 누구보다 바라는지도 모른다.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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