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도가 달라지고 있다. 딱히 뭐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자부심이 생겼다고나 할까. 사람들의 자세가 달라졌다. 우선 인도의 델리공항에 내리면 거기서 일하는 경찰이나 공항 직원들의 허리가 반듯하게 펴졌다.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눈빛도 흔들리거나 상대적이지 않고 자신이 볼 곳을 정확히 보고 있는 느낌이다.
우선 인도 비자를 받는 일부터가 이전과는 달리 까다롭다. 비자를 아무나 받을 수 있던 시절에서 이제는 선별된 사람만이 받을 수 있도록 브랜드화를 추구하는 느낌이다. 그냥 쑥쑥 내주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절차와 격식이 다져져 왠지 느낌이 고압적이다. 이전에 인도 비자를 받아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요즘 인도 비자를 받기가 이전 같지 않다는 것을 단번에 느낄 것이다. 델리공항의 입국 관리국 직원의 모습도 이전과는 달리 여유롭다. 바쁘지 않고 느긋한 것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큰집이 작은집 가족들을 대하는 느낌이다. 이것은 우리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어느 나라 어느 국민에게나 그렇게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 것이다.
우리는 한때 팝송 한 줄 부르지 못하면 대학생이 아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통기타를 들고 팝송 한 줄 정도는 읊조릴 줄 알아야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유학 중 일본에서 한국으로 잠시 귀국했을 때 TV에 나오는 가수들의 노래에 변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팝송을 부르지 않고 우리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변화 이후 서태지와 K-팝이 나오기까지 통기타를 들고 외국 가요를 부르는 모습을 TV에서 잘 볼 수 없게 되었다. 팝송을 부르거나 외국 가요를 번안해서 부르던 우리가 우리 손으로 우리 노래를 지어 우리 식으로 부르게 된 것이 1980년대 말, 아마 88 올림픽 전후쯤으로 기억한다.
나로서는 그때 나름 큰 충격을 받았다. 사회 변화를 느낀 것이다. 팝송에서 우리 노래로 바뀐 것이 뭐 그리 대수냐고 말하겠지만, 이것은 스스로 자주적이고 개인적으로 한국 사람인 것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는 변화의 일단이 시작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팝송을 따라 부르던 세대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행위가 남의 날개로 날기를 기원한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던 것이 남의 날개가 아닌 자신의 날개로 스스로를 표현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때를 맞아 무르익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붉은 악마나 촛불 집회를 통해 우리의 자부심을 표현하게 된 것은 아닐까.
나는 인도 친구가 여럿이 있다. 그들은 대개 여행사 가이드이기는 하지만 이들의 여행 가이드로서의 설명도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요즘의 그들은 자신의 조국에 대한 프라이드로 똘똘 뭉쳐져 있다. 5000년 인도 역사는 4대 인류 문명 발상지 중의 하나임을 자랑하는 것은 물론 영국의 침략을 받기 전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 중의 하나였다는 것을 스스럼없이 내세운다.
그러면서도 영국의 식민지가 되어 모두 영어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의 실리콘 밸리 인재들의 절대다수를 인도인이 점하게 되었다고도 자랑한다. 우리로서는 언감생심이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이렇게까지 승화할 수 있다니. 인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무한 장점이다.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고 근자 몇백 년을 영국에 휘둘렸지만 이제는 그 설움을 딛고 새로운 세상을 주도할 자신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이번 인도 여행은 4년 만의 라자스탄 지역의 재방문이었다. 거기에는 지역마다 왕과 왕족들이 여전히 살고 있다. 인도라는 독립 국가로 편입되면서 그들의 재산은 지켜주고 대신 왕권은 인도 정부에 이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왕들의 족보는 적어도 500~600년을 지속해 온 왕족들이다.
여전히 계급이 존재하고 왕족들이 존재하면서도 근대화의 바퀴를 굴리기 시작한 인도를 요즘 만나게 된다. 30년 전 거대한 바퀴를 굴리려고 안간힘을 쓰던 중국을 보는 기분이다. 그리고 그 바퀴가 지금 맹렬히 굴러가고 있다. 요즘 인도에서 보는 인도인들의 자긍심은 도무지 움직일 것 같지 않던 바퀴를 굴리기 시작한 자신감 같은 것이다. 이 바퀴는 서서히 돌기 시작하다가 맹렬히 굴러가게 될 것이 틀림없다. 이제 우리는 좁은 동북아와 멀리 미국만을 바라보는 협시를 벗어나야 할 때다. 인도가 빠질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진작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