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원전참사가 발생한 지 지난 11일로 만 7년이 넘었다. 이웃나라 일본은 참사 이후 당시 민주당이 ‘탈원전정책’을 추진했으나 정권 연장에 실패해 아베 정권 이후엔 ‘원전재가동정책’을 적극 펴고 있다. 그러나 최근 높아지고 있는 일본의 탈원전 여론과 더불어 일본 야당이 ‘원전제로법안’을 발안하는 등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물론 아직은 미풍에 그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2018.3.10)에 따르면 입헌민주, 공산, 자유, 사민 야당 4당이 3월 9일 ‘원전제로기본법안’을 중의원에 공동제출했다. 시행후 5년 이내에 모든 원전의 폐로를 결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입헌민주당은 다른 야당에게도 공동제안을 요청했지만 희망의당과 민진당 양당은 동조하지 않았다. 다만 4당 의원에다 민진당 내 ‘무소속모임’중 가시와자키가리와원전 소재 니가타현의 의원 2명이 찬성에 이름을 올렸다. 법안에는 모든 원전을 ‘조속히 정지, 폐지한다’고 하는 기본이념을 명기했다.

	일본 도쿄 시민들이 원전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같은 날 도쿄신문에 따르면 이러한 원전제로기본법안을 주도한 당이 입헌민주당으로 전국에서 타운미팅을 열어 시민의 의견을 반영해 법안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입헌민주당은 올해 1월부터 법안의 골자나 전문을 타운미팅이나 인터넷으로 공개해 시민의 목소리를 모았으며 고이즈미, 호소카와 전 수상이 고문을 맡았고 있는 ‘원전제로자연에너지추진연맹’ 등 다양한 단체와도 대화를 거듭해왔다는 것이다. 법안은 모든 원전을 정지해 시행 후 5년 이내에 모든 원전의 폐로를 결정하는 것을 규정했는데 2030년까지 전력수요를 2010년 대비 30% 이상 줄이는 목표와 재생에너지의 비율을 40% 이상으로 확대시키는 것이다.

기자회견을 한 오사카 세이지 입헌민주당 에너지조사회장은 “법률을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국민운동으로 확산해가는 것이 중요하다. 발신력이 있는 고이즈미, 호소카와 전 수상의 원전제로자연에너지추진연맹 등 다양한 단체와 연대해 큰 물결을 이루고 싶다”고 밝혔다.

야당 4당이 제출한 원전제로법안 전문은 다음과 같다.

	일본 토교 시부야구의 요요기 공원에서 반원전 집회에 참석한 시민이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우리나라는 2차 세계대전에서 원자폭탄 투하로 인한 미증유의 참화를 입었지만 1955년 원자력기본법 제정 이래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이름 아래 원자력발전을 추진해왔다. (중략) 발전에 드는 경비가 싸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 핵연료사이클을 통해 에너지를 무한히 얻을 수 있다는 등의 주장은 원자력발전에 관한 여러 문제로부터 국민의 눈을 가리고, 일부러 강조된 원자력발전의 안전성은 일본의 원전에서 사고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는 안전신화를 낳았다. 그러나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사고는 원자력발전에 의존하는 경제사회의 구조에 근본적인 개혁을 가하는 계기가 됐다. (중략) 이러한 현실에 직면한 금일, 우리들에게는 지금까지 국가의 원자력정책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에 협력해 일본의 경제사회를 지탱해온 지역경제의 발전을 촉진하면서 모든 실용발전용원자로 등을 조속히 정지하고 계획적이고 효율적으로 폐기함과 동시에 전기의 수요량의 감축 및 재생가능에너지전기의 공급량을 증가시킴으로써 에너지수급구조를 전환해 지속가능한 사회를 실현할 책무가 있다. 원전폐로?에너지전환을 실현하기 위한 개혁을 종합적이고 계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이 법률을 제정한다.’

이러한 일본 야당의 ‘원전제로법안’은 아베 내각의 ‘원전재추진정책’에 맞서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원전사고 이후 민주당이 ‘원전제로’를 선언했지만, 2012년 12월 아베 정권이 들어선 뒤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원전을 폐지하겠다던 민주당 정부의 방침을 백지화하고, 2017년 기준 2%대인 원전에너지생산 비율을 2030년까지 20~22%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선 일본 국내 원전 30기 정도의 재가동이 필요한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일본 국민 여론은 아베 정권과 달리 ‘원전폐지’가 70%대를 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쿄신문(2018.3.4)에 따르면, 일본여론조사회가 지난 4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63.6%가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한 ‘지금 당장 모두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도 11.4%에 달하는 등 ‘원전제로’ 정책에 대한 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일본 국민 75%가 원전 폐지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단계적으로 줄여야 하지만 새로운 원전을 만들어 일정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19.9%, ‘새로운 원전을 만들어 후쿠시마원전 사고 이전 수준을 회복해야 한다’는 응답은 2.4%에 불과했다.

	후쿠시마원전사고 당시 수습에 나섰던 간 나오토 전 총리가 쓴 『나는 왜 탈원전을 결심했나』의 한국어 번역판 책 표지

『나는 왜 탈원전을 결심했나(원제 : 도쿄전력 후쿠시마원전사고-총리로서 생각한 것(2012)』(김영춘·고종환 역, 간 나오토, 에코리브르, 2018)에서 원전사고 당시 사고 수습에 나섰던 간 나오토 전 총리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식’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결론짓고 있다.

‘2012년 9월 하순 민주당에서는 노다 총리가 재임되고 자민당에서는 아베 신조 씨가 총재로 선임되었다. 이제부터 일본의 원자력 행정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이 1년이 큰 갈림길이다. 민주당과 노다 내각은 2030년대 원전제로를 목표로 한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정권을 담당한 정당이 원전제로를 단언한 것은 의미가 크다. 1년 안에 이루어지는 국정선거는 원전제로에 예스인가, 노인가를 선택하는 것이다. 결정은 정치가가, 경영자가 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 스스로 하는 생존방식의 선택이다. 그리고 자식과 손주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각오를 묻는 선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탈원전에너지전환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명확한 그림이 나오지는 않고 있다. 지난해 우리사회가 겪었던 신고리5·6호기공론화문제를 통해 우리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앞으로 우리의 갈길은 어떠해야 하는지, 간 나오토 전 총리의 말대로 그냥 정치가에게만 맡길 일이 아니다. 오는 지방선거, 또는 다음 총선, 그 다음 대선까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탈원전에너지전환에 대한 생각을 키워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래는 그냥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김해창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