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은 나름의 딜레마와 함께한다. 건축가들은 삶의 많은 부분을 어떻게 하면 현실적이면서 아름답고 유용한 공간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 할애한다. 이런 점에서 올해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부를 수 있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한 인도의 90세 건축가 발크리시나 도시(Balkrishna Doshi)의 경험은 여러모로 특별하다.

1913년 아시아 첫 노벨상 수상자였던 라빈드라나트 타고르가 문학상을 받은 이후 인도는 물리 경제 의학 평화 부문에서 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였지만, 여태껏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은 이는 없었다. 1979년에 설립된 프리츠커 건축상은 지금까지 아시아 국가 중 일본이 6명으로 가장 많은 수상자를 배출했고 2012년에는 중국에서 한 명의 수상자가 나왔다.

가구 만드는 집안에서 태어나 90세가 되어 뒤늦게 국제적인 인정을 받은 것에 대해 누군가 묻자, 그는 “때가 되어야 온다. 이런 명예로운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스승 르코르뷔지에 덕분이다. 그의 가르침이 정체성에 물음을 던지게 했고 지역적으로 적용되는 지속가능하고 전체적인 거주공간을 위한 새로운 현대적 표현을 발견하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긴 문명의 역사와 다양한 언어, 문화를 가진 인도는 이러한 다양성이 창의적인 건축양식에 스며들어, 특유의 개성 있는 문화유산 및 뛰어난 건축 공간이 많이 존재한다. 아잔타 동굴의 벽화, 엘로라의 조각과 사원건축의 조화, 1200년 전에 만들어진 ‘건축양식이 노래한다!’는 수사가 딱 들어맞는 ‘함피’유적지 등은 우리 상상을 자극하는 재미난 공간이다. 예를 들어 함피 강당에서 음악가들이 180개의 기둥을 두드리면 먼 거리에서도 오케스트라의 선율과도 같은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또, 타지마할의 대리석에 장식된 보석들은 달빛 아래 영롱한 빛을 발한다. 건축학적으로 알려진 유적은 이 밖에도 많지만, 인도 근대 건축이 이와 같은 인정을 받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1950년부터 세계적인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그늘에서 자랐지만 발크리시나 도시는 인도 도시 공간의 삶의 트렌드 세터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인도 풍수지리와 디자인을 접목한 건축을 만드는 친환경 디자인 회사 ‘바스투 실파’를 설립하였고, 디자인을 기후 토양 그림자의 움직임을 통합한 것이라 보았다. 그는 “나는 항상 공간이 살아있다고 생각했다. 빛과 공간, 그 공간에 들어가는 움직임의 종류는 나에게 있어 아주 중요하다. 이것이 대화를 만드는 것이고 활동을 만드는 것이며 삶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다. 나에게 건축에 대한 철학이 있다면 그것은 건축이 삶의 배경이라는 것이다”라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가 건축적 도전을 시작한 것은 전설적인 스승 르코르뷔지에와 파리에서 일할 때부터였다. 이후 그는 스승과 함께 인도에서 대학 캠퍼스, 정부 건물과 저비용 주택들을 만들어 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인도 저비용 주택 부문의 선구자로서 그는 지역사회가 각각의 벽들로 나누어지지 않고 자라고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는 교육기관을 디자인하는 데도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며 “교육기관은 제2의 집 같아야 한다. 그저 칸칸이 나뉘어 있는 방이 아니라 교류의 장이며, 심사숙고하고, 질문을 던지며, 마음을 깨우치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그는 도시 디자인의 근대적 경향에 대해 “많은 건축가가 부자들의 사치와 소비를 위한 집, 박물관 등을 위한 소위 ‘건축적 방종’에 사로잡혀 있다”고 경고하며 과시적 소비를 위한 비즈니스에서 그들의 몫을 요구하는 개발업자들에게도 일침을 가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는 후계자를 양성하는 스승으로서 ‘내가 어떻게 감히 존경하는 스승의 생각을 훔칠 수 있나? 그건 도둑질과 같다’며 건축가는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시대를 앞서가는 스타일만이 아니라 현실을 인지하며 한 걸음씩 걸으며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것이 건축가의 의무라고 했다.

공간이 삶을 축하할 때 비로소 건축이 된다는 발크리시나 도시의 말은 한국 사회에도 시의적절한 말이다. 부동산이 단순히 부의 자랑이거나 경제적인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은 다소 서글픈 현실이다. 도시는 내일의 묘지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삶의 힘을 마련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이와 동시에, 한국 건축가들에게도 본인의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많이 주어져야 한국 건축도 세계적인 수준으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부산국제교류재단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