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black hole). 중력이 너무 강해 빛조차 탈출할 수 없는 천체를 말한다. 블랙홀에 대한 개념을 처음 창안한 이는 영국의 과학자 존 미첼이다. “태양과 같은 밀도를 가진 어떤 구체에서 방출되는 모든 빛은 자체 중력으로 인해 구체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는 1783년 왕립학회에 보낸 서한에서 이 개념을 이같이 설명했다. 그 가능성은 1915년 발표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해 예측됐다. 중력의 작용으로 빛이 휘어진다는 이론으로,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아서 에딩턴이 1919년 일식을 관측하면서 그 타당성을 입증했다. 블랙홀이란 이름을 붙인 건 1967년 미국의 물리학자 존 휠러다. 그 전까지는 ‘깜깜한 별’ 또는 ‘동결된 별’이라 불렸다.

블랙홀 연구를 심화 발전시킨 대표적인 인물로는 지난 14일(현지시간) 타계한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을 꼽을 수 있다. 그는 1966년 블랙홀의 중심에 무한대의 밀도를 지닌 특이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1973년에는 블랙홀의 면적은 줄어들지 않고 그대로이거나 늘어난다는 ‘호킹 면적 정리’를 발표했다. 그 2년 후엔 블랙홀에서 빛이 방출될 수 있다는 ‘호킹 복사론’을 개진하면서 양자우주론을 개척했다. 어떤 물체나 빛도 블랙홀을 빠져나올 수 없다는 당시 정설을 뒤집는 획기적인 이론이었다. 2015년에는 “블랙홀에 들어간 물체는 블랙홀 밖이나 다른 우주로 나올 수 있다”며 ‘블랙홀 출구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블랙홀 출구론은 물리학에 그치지 않고 인생론으로 확장돼 더욱 의미심장해졌다. “당신이 블랙홀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포기하지 마라. 탈출구는 있다.” 호킹이 강연에서 한 말이다. 그는 21세 때 루게릭병으로 2년밖에 못 산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물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이 말을 몸소 실증했다. “시한부 진단을 받았을 때 처형당하는 꿈을 꿨다. 사형 집행이 연기된다면 할 일이 많으리라는 걸 인식하게 됐다. 이후 나는 삶을 더 즐기게 됐다.” 진단과 달리 53년을 더 삶으로써 ‘시한부 블랙홀’ 탈출에 성공한 것이다.

호킹의 블랙홀 탈출은 남북·북미 정상회담과 겹쳐진다. 4, 5월로 예정된 두 회담이 ‘한반도 냉전 블랙홀’의 탈출구가 될 것으로 기대되어서다. 나아가 우리 사회의 미투운동에서도 ‘남녀차별 블랙홀’을 벗어날 동력이 다져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