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만 있으면 또 너희를 추모하는 행렬이 줄을 잇겠구나. 너희는 그 행렬이 왜 이어지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아가미도 없이 물속을 부유하겠구나. 나 역시 그 행렬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이렇게 편지를 쓴다. 그날은 그저 오늘과 같이 아무렇지도 않은 날이었다. 물론 너희야 수학여행을 가는 기쁨에 생애 최고의 날이었겠지만.

4년이 지났다. 슬픔과 분노의 1년이 지났고, 잊지 않겠다는 약속의 2년이 지났고, 진실을 밝히겠다는 다짐의 3년이 지났고, 아직도 너희 죽음의 진실을 모른 채 4년이 지나고 있다. 그리고 세상은 너희가 떠나던 그 날과 마찬가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너희 또래의 아이들은 여전히 너희와 똑같은 방식으로 살고 있단다. 너희는 절망과 슬픔과 분노의 원동력이 되긴 했어도 세계를 바꾸는 변화의 동력은 되지 못했다.

지난 4년, 사람들은 세계를 바꾸길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경쟁교육이 너희를 죽였다고 동의하면서도 자식을 학교에 안 보내는 어른은 없단다. 시스템이 너희를 죽였다고 동의하면서도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 죽음의 진실을 밝히겠단다.

경찰이 너희를 구조하지 않았다는데 동의하면서도 경찰이 친 폴리스라인을 누구도 넘지 않았단다. 너희 죽음의 진실을 밝히겠다고 어른들이 거리에 나가 눈물을 흘리며 주먹을 쥐던 시각, 너희와 같은 아이들은 모두 학원에 가 있었단다. 너희의 친구들은, 너희의 동생들은 너희를 슬퍼할 겨를도 없이 학교와 학원으로 내몰렸단다. 어른들은 이 세계가 부당하다며 거리에 몰려나왔지만, 제 새끼들은 이 부당한 세계에서 성공하기를 바라며, 이 부당한 경쟁체제 안에서 이기기를 바라며 아이들을 입시전쟁터로 내몰았단다. 정의? 공정? 공생? 진실? 윤리? 그것은 오직 ‘수사’로만 존재했기에 너희 죽음의 진실은 너희와 함께 수장돼버렸단다.

아프지만 그날의 한 순간을 복기해보자. 세월호가 기울어져 선체의 반 이상이 바닷물속에 잠겼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나왔다. 그리고 너희들은 대부분 스마트폰을 쥐고 카톡을 하거나 문자를 보내며 가만히 있었다. 쥐새끼도, 바퀴벌레도 물속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칠 시각에 너희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그것은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다. 너희의 생명에 대한 감각, 생존에 대한 본능이 왜곡돼 있었던 거다. 물론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방송)이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다른 감각의 명령이 하나 더 있었다. 아가미가 없는 동물은 물속에 있으면 죽는다는, 물에 잠기면 숨을 쉴 수 없다는, 무조건, 일단은 물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그 생존감각, 생명감각의 명령은 너희에게 작동하지 않았다. 이 내부의 명령, 생명의 명령은 다만 몇몇 아이에게만 작동했을 뿐이다. 너희는 스마트폰이라는 환상, 그 사각의 창 안에 갇혀버린 것이다.

이것이 그동안 우리가 새끼들을 키운 방식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교육이다. 나는 세월호가 침몰한 뒤 이것이 가장 절통하고 원통했다. 이 나라의 교육이 동물도 가지고 있는 생존의 본능, 생명의 감각을 왜곡시킨 것이다. 생명을 그저 가만히 있도록 키운 것이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4년째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세월호 침몰의 그 외부적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싸웠다. 그러나 누구도 이 내면(교육)의 문제,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연루된 이 문제, 우리 자신이 방조하고 방관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 경쟁적 입시교육의 문제에 대해서는 싸우지 않았다.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리본은 상징으로, 외부의 적(불의)에 대항한다는 알리바이로만 남았고, 기실 어떤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내가 이 말을 하면 돌 맞아 죽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생애 절정의 순간에 세계의 가장 깊은 심연 속으로 가버렸으니, 어쩌면 너희는 이 땅에서 가장 행운아인지도 모른단다. 너희는 더는 이 세계의 악몽을 보지 않아도 되니, 너희야말로 선택받은 사람들인지도 모른단다.

미안하지 않다. 나는 너희에게 미안하지 않다. 세계는 너희가 떠났던 4년 전과 하나도 다르지 않기에 미안하지 않다. 너희 때문에 뭔가 달라져서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해서 나는 하나도 미안하지 않다.

작가·헤세이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