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택시기사를 민심의 바로미터라고 한다. 운행 요금을 측정하는 미터기처럼 사회 분위기를 비교적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창구라는 뜻이다.

선거철이면 국회의원들은 택시를 몰며 바닥 민심을 전하겠다고 나서고, 르포 기사의 첫머리가 택시기사의 푸념으로 시작하는 건 익숙한 레퍼토리다. 택시기사가 추천하는 맛집 타이틀은 또 얼마나 솔깃한지. 지역 구석구석을 누비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그 자체로 강력한 메신저이다.

일상에서 택시기사를 만나는 경험은 사소하지만 뜻밖의 수확을 할 때가 많다. 지난가을이 그중 하나였다. 여느 날처럼 무거운 짐을 우르르 이끌고 택시에 올랐었다. 한숨 돌리고 나자 “하늘이 참 높네요”라는 기사 아저씨의 인사가 반갑게 들렸다.

그제야 창밖을 올려다봤다. 가을 하늘은 하루에 30㎝씩 높아진다던데, 어디까지 높아진 건지 그 끝이 가늠되지 않았다. 기사 아저씨의 인사말이 아니었다면 아깝게 지나치고 말았을 풍경이었다.

운이 좋게도 그날 만난 택시기사는 처음 본 사람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찬찬히 풀어놓는 재주가 있었다. 아저씨는 부산에서 밀려나 밀양 가까이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매일 아침 낙동강에서 피어나는 물안개를 볼 때는 그 누구도 부럽지 않다고 덧붙였다. 어찌나 풍광이 좋은지 매일매일 위로가 된다는 말이 나에게도 다독임으로 다가왔다.

아저씨의 이야기는 지난날 무궁화호를 타고 떠났던 기차여행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구포를 돌아 물금역으로 향할 때, 선로 옆에서 일렁이던 낙동강의 물결이 얼마나 눈부셨던지, 위로가 되고도 충분한 광경이었다.

이윽고 사거리에 택시가 신호를 받고 잠시 멈춰 섰다. 기사 아저씨는 가로수로 심어진 은행나무를 가리키며 가을의 가이드처럼 설명했다. 샛노랗게 먼저 물들어버리는 나무는 그만큼 여름에 열매를 많이 달아 고생을 많이 한 나무이고, 그 옆에 아직도 새파란 나무는 열매를 적게 맺어서 아직은 시들 생각이 없는 거라고 했다. 창밖을 내다보며 은행나무 한 그루마다 눈도장을 찍었다. 어찌나 신기하고 재밌던지 목적지에 다 와 가는 것이 아쉬웠다.

단풍은 사람이 걷는 속도대로 물들며 남쪽으로 내려온다. 기사 아저씨의 네 바퀴는 강물이 흐르는 속도와 단풍이 번지는 속도로 부산을 누비고 있었다. 삭막한 도로 위에서도 아름다움을 채집하는 밝은 눈이 있었기에 가능한 속도였다.

낙엽을 실로 묶어둘 수 없듯이 시간은 흐른다. 하지만 그날 만났던 택시기사는 이야기로 많은 순간을 붙잡아두고, 만나는 이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지천을 물들이는 단풍처럼 사람들의 마음에 선명한 빛깔을 남겨주는 것이다.

처음 택시를 몰 때 매번 다른 곳을 가보고 얼마나 신났는지 몰랐다며 아저씨는 20년 전을 떠올렸다. 돈을 벌며 새로운 구경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젊은 시절의 아저씨는 가슴이 뛰었다. 지금은 거리에 손님이 있는지 없는지만 보게 되었다며 웃고 말았지만. 아저씨는 여전히 사계절의 가이드이자,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해주는 이야기꾼이다. 택시에서 내리며 큰 목소리로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고 인사했다. 아저씨는 “잘 들어줘서 고맙다”며 웃었다.

감성은 지루한 일상에 빛을 낸다. 홀로 품고 있던 감성은 세월을 따라 단련돼, 달리는 네 바퀴를 타고 더 큰 감동을 만들어간다.

봄이 왔다. 봄은 ‘보다’라는 말에서 왔다.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볼 때 봄은 시작된다. 영어로 ‘I see you’는 사랑 고백과도 같다. 사소한 눈길에서 애정이 피어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간만큼 자신을 알게 된다. 아름다운 순간을 채집해 사람들과 반갑게 나누고자 했던 그 마음을 만나, 봄을 더 기쁘게 맞이하게 되었다.

그때 그 기사 아저씨는 새로운 계절에 또 어떤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매일 아침 천천히 물안개가 피어나 아저씨의 출근길을 무사히 배웅해주길, 나뭇가지에 돋아나는 새순들이 허전한 거리에 반가운 길동무가 되어주길 바란다. 내가 만났던 따뜻한 메신저, 부산의 택시기사 아저씨에게 봄이 왔다고 인사를 보낸다.

미디토리 협동조합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