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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의 세설사설] 찬란한 봄이 한반도에 찾아오는가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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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3-11 19:20:43
  •  |  본지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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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남북 정상회담, 비핵화 의지 천명과 미국과의 대화 용의 표명 등 김정은은 한미합동 군사훈련 중단 같은 까다로운 조건 달지 않고 지름길을 골랐다. 질러가는 길을 선택하기로는 트럼프도 마찬가지.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김정은의 메시지에 부대조건을 달지 않고 즉석에서 단안을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바라는 게 있다. 북한과의 실무협상에서 처음부터 고압적으로 나오지는 말았으면 하는 것. 정상회담 전제 조건으로 북한이 내놓을 수 있는 건 거의 다 내놓았다. 흥정이란 건 받는 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이 아닌가.


   
지난 한 주 경천동지할 뉴스가 잇따라 쏟아졌다.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였던 안희정 충남지사의 성폭력 의혹이 터져 국민을 놀라게 하더니 평양에 다녀온 특사단이 4월 남북 정상회담 합의 소식을 전했다. 더 놀라운 건 워싱턴에 간 한국 특사단에게서 김정은의 메시지를 전해 들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 북미 정상회담을 수락했다는 사실이다. 남북한과 미국 간에 숨 가쁘게 돌아가는 상황 전개가 너무 현란해서 어찔하다.

올해 초 이 지면에서 나는 문재인 정부가 북미 대화의 ‘중매쟁이’ 노릇을 해야 할 것이고, 또 할 것이라고 쓴 적이 있다. ‘핵 모라토리엄(동결)’이 프로세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예측하며 ‘상식에 기초한 상상력’으로 풀어야 할 문제라고도 썼다. 상황이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어 반갑다. 그런데 남북한과 미국의 상상력은 내 예상보다 훨씬 대담하다. ‘혼담’이 빠르게 오가더니 벌써 ‘맞선’ 날짜가 잡히지 않았나.

평양에서 받아 온 보따리도 두툼했다. 오는 4월 판문점에서의 남북 정상회담, 비핵화 의지 천명과 미국과의 대화 용의 표명, 대화 중 핵실험·탄도미사일 발사 중지, 남한에 핵무기와 재래무기를 쓰지 않겠다는 약속이 그 속에 들어 있었다. 남북 정상 간 핫라인 설치와 남측 태권도시범단·예술단의 평양 공연도 이바지 음식의 웃기처럼 올라 있었다. 김정은은 한미합동 군사훈련 중단 같은 까다로운 조건을 달지 않고 지름길을 골랐다. ‘솔직하고 대담했다’는 게 그에 대한 특사단의 인상담이라던가. 질러가는 길을 선택하기로는 트럼프도 마찬가지. 그 역시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김정은의 메시지에 별다른 부대조건을 달지 않고 즉석에서 단안을 내렸다.

다들 궁금해했던, 한국 특사 편에 전한 김정은의 비밀 메시지에 담긴 카드는 ‘북미 정상회담 제안’으로 밝혀졌다. 트럼프가 얼른 수락한 걸 보면 그게 다는 아닐 거다. 정의용 특사가 워싱턴에 가기 전, 나는 그 메시지에 ‘일단 핵동결을 하겠다. 제재와 압박을 풀어준다면, 그리고 체제 보장을 위한 구체적인 약속을 해준다면, IAEA(국제원자력기구)나 미국 정부 파견단이 북한에 들어와 핵사찰을 하게 하고, 미국이 요구하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에 나서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지 않을까 추측해 봤는데 아마 그런 제안도 포함됐을 성싶다.
트럼프의 반응도 적극적이었다. 그는 특사단에게서 메시지를 전해 듣자 펜스 부통령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 배석자들에게 “그것 봐라, 대화를 하는 게 잘하는 거다”고 활짝 웃었다. 4월에 김정은과 만나겠대서 정 특사가 남북 정상회담을 지켜본 다음 5월에 하시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을 정도였다는 거다. 한국 특사가 백악관에서 ‘북미 정상회담 성사’라는 세계적 뉴스를 직접 발표하도록 주선하기도 했다. 미국은 물론 세계 언론이 이 깜짝 놀랄 만한 뉴스를 긴급 타전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젠 회담 장소, 일정, 의제 등을 놓고 북미 간에 숨 가쁜 실무회담이 진행될 차례다. 한국 정부도 일정한 역할을 할 것임이 틀림없다. 4월 말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릴 문재인-김정은 회담에선 한반도 평화 정착과 교류 재개 등 고유 현안에 덧붙여 트럼프-김정은 회담의 멍석을 까는 논의도 이뤄지겠지. 북미회담 장소로 벌써 평양, 워싱턴, 판문점 등이 꼽히고 있다. 다들 의미는 있겠지만, 한국의 ‘중매쟁이’ 역할을 부각한다는 차원에서 우리 정부가 ‘맞선 장소’를 주선하면 어떨까. 서울이 좀 부담스럽다면 풍광 좋은 제주도도 괜찮을 성싶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바라는 게 있다. 북한과의 실무협상에서 처음부터 고압적으로 나오지는 말았으면 하는 것. 내가 보기엔 정상회담의 전제 조건으로 북한이 내놓을 수 있는 건 거의 다 내놓았다. 북한이 유화적으로 나온다고 해서 추가 조건을 내걸지는 말라는 거다. 기선을 제압하는 것도 협상의 기술이겠지만 흥정이란 건 받는 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이 아닌가. CVID부터 미리 약속해야 대화를 계속하겠다고 다그치는 건 북한더러 처음부터 발가벗고 나오라는 것이나 다름없는 소리다.

그러니 지금 필요한 건 ‘당근과 채찍’이 아닐까. 이를테면, 1단계로 한 6개월쯤 핵 실험도 않고, 미사일도 쏘지 않는 ‘핵 모라토리엄’을 이행하면 현재의 제재 중 약한 걸 풀어주고, 2단계로 북한이 핵사찰을 허용하면 제재 중 상당 부분을 풀겠다는 식의 단계적 접근법은 어떨까. 그래서 궁극적으로 CVID를 이행하면 클린턴 행정부 때처럼 북미수교까지 가겠다는 방식 말이다. 북한이 계속 착실한 모범생 노릇을 한다면 ‘평화협정’을 맺겠다고 약속할 수도 있지 않나.

여담이지만, 일본이 당황해하는 꼴이 고소하긴 하다.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회담까지 열린다니 아베와 일본 극우들이 크게 놀란 모양이다.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던가, 수십 년간 일본의 한반도 전략은 ‘이이제이(以夷制夷)’가 아니었던가. 남북이 서로 으르렁거려야 동북아에서의 발언권이 세진다고 믿는 일본이다. 그래서 늘 미국 보수 정권의 애완견 노릇을 해오지 않았나.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헌법을 바꾸려는 데 북핵 위협을 써 먹어온 게 아베 정권이다. 극우는 북한의 핵무장을 빌미로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호시탐탐 노려오지 않았나. 그러기에 북한이 미사일을 쏠 때마다 호들갑을 떨면서 국민에게 긴급대피령을 내리곤 하지 않았던가. ‘패싱’을 당할까 봐 아베가 부랴부랴 트럼프를 만나러 간다는데 행여 재를 뿌릴 생각일랑 말아야 할 터. 어쨌거나 한국 야당의 어떤 국회의원 말마따나 ‘겐세이 놓아선’ 곤란하니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정부가 일본을 너무 따돌리지는 말 일이다. 한국에서도 북한이 시원시원하게 나오는 것을 보고 야당과 보수 일각에서 “핵무기 개발할 시간을 벌려는 수작”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런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한정 없이 의심만 하다가는 대화 자체를 시작하지 못한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대화의 문을 걸어 잠그고 압박했을 때엔 어디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았단 말인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북미 회담의 성사를 두고 “궁지에 몰린 북한의 안보 쇼로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고 깎아내린 건 지나치달밖에. 그는 “잠정적 북핵 동결을 인정하자는 식의 주장은 한반도 5000만 국민에게 재앙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글쎄, 단추를 끼우는 것에도 순서가 있는 법이다.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것도 분수가 있지 대화를 해 보지도 않고 ‘핵 인질’ 운운해서야 쓰겠는가. 홍준표 대표를 단장으로 해서 보수 야당 인사들을 특사단으로 평양에 파견했다면 북한의 ‘백지 항복’ 선언을 받아오기라도 했을 거란 건가.

여우가 길을 가다 높다랗게 매달린 포도를 봤다. 여러 번 펄쩍 뛰어봤지만 닿지 않았다. 그러자 “저 포도는 시어서 맛이 없을 거야”하고 돌아섰다. 지금 홍 대표의 언행이 이솝 우화의 여우 짝 아닌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초조한 마음도 알만하고 흩어진 보수의 표심을 끌어당기고 싶은 욕심도 알겠는데, 이건 국민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다. ‘북핵’이란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하지 않나. 문재인 정권이 방향을 잃을 땐 쓴소리도 해야겠지만 미리 어깃장을 놓아선 안 될 일이다. 대안도 없이 자꾸 초를 치면 국민적 ‘왕따’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터. 백지장도 맞들면 나을 판에 도와주면 국민이 그 공을 헤아려 줄 테니 좀 어른스럽게 굴라.

대통령과 정부에게도 한마디. 지금까지는 아주 잘해왔다. 그러나 늘 봐왔던 북한은 변덕이 심하고 잘 삐친다. 미국 행정부 내 매파들의 동향도 안심할 수는 없다. 중매를 잘하면 술이 석 잔이지만, 잘못하면 뺨이 석 대라지 않던가.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북한, 미국 양쪽을 잘 다독거려가며 끝까지 혼담을 성사시켜야겠다. 문 대통령도 “기적처럼 찾아온 기회를 유리그릇처럼 다뤄야 한다”고 했다는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경구를 명심할 일이다. 혼담엔 말을 보태주는 쪽이 많을수록 좋은 만큼 중국, 러시아와도 잘 상의해야 하겠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라는 영랑의 시가 떠오른다. 다가오는 4월과 5월은 과연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를 가져다주는 찬란한 봄이 될 것인가. 국민은 비원(悲願) 속에 모란 피는 봄을 기다리고 있다. 개봉박두!

소설가·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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