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여자 육상을 경기에 채택한 건 1928년 암스테르 대회가 처음이었다. 그것도 800ｍ 한 종목에만 도입했다가 그 다음 대회부터는 없앴다. 이후 1960년 로마올림픽에 여자 800ｍ가 재등장할 때까지 마라톤은 물론 여자 중장거리 육상 종목은 하나도 없었다. 여성에게 해롭고 신체적 능력도 안 된다는 게 표면적 이유였지만, 남녀 차별적 사고가 깔려 있었다.

하기야 고대 올림픽은 그 자체가 금녀(禁女)의 무대였다. 여성은 선수 출전은커녕 관중으로도 입장이 금지됐다. 근대 들어서도 여성은 따돌림을 받았다. 마라톤의 경우 1972년에야 여성에게 대회 참가의 문이 열렸다. 올림픽에서는 1984년 LA대회 때 여자마라톤이 처음으로 정식 종목에 올랐다.

그렇게 되기까지 옷지 못할 사연도 많았다. 여성 선구자 격인 보비 깁은 1966년 보스턴마라톤 대회 때 숲에 숨어 있다가 몰래 남자 선수들과 섞여 뛰었다. 이듬해 같은 대회에서는 캐스린 스위처가 여성임을 숨기고 출전했다. 레이스 도중 탄로 나면서 주최 측의 제지를 받았지만 끝내 완주를 이뤘다. 이는 여성의 뛸 권리와 남녀평등을 상징하는 역사적 장면으로 남았다. 그랬던 스위처가 2018 런던마라톤에 51년 전 여성 최초의 마라톤 등번호였던 261번을 달고 뛴다는 소식이다. 영국의 여성 참정권 100주년을 기념하는 뜻이 담겼다고 하니 의미가 더 각별하다.

‘세계 여성의 날’ 110주년이었던 그제, 지구촌 주요 도시에서는 깁과 스위처 같은 외침이 거리에 울려퍼졌다. 양성 평등과 성폭력 근절, 여성 존종, 반여성 정책 폐지 등을 촉구하는 목소리였다. 미투(MeToo·나도 당했다) 물결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터라 예년보다 그 무게가 더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미투 운동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뜻하는 하얀 장미를 시민에게 나눠주는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이제 하얀 장미는 미투 캠페인의 상징물로 통한다. 지난 1월 미국 그래미 시상식에서 참석자들이 성폭력 반대 메시지로 이 꽃을 들고 나오면서다. 예로부터 하얀 장미가 순결, 평화, 공감, 저항 등을 상징하는 까닭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도 올해가 여성 참정권 70주년이다. 1948년 제헌 헌법에 남녀 평등한 참정권이 인정됐다. 하지만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