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공보비서 성폭행 의혹이 폭로된 직후 뜬금 없는 한 단어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올랐다. ‘괘념치 않다’란 말이었다. 알고 보니 성폭행 이후 안 전 지사가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을 통해 피해자에게 보낸 메시지 때문이었다. 대화방에서 “뭐하니” “미안, 내가 스스로 감내해야 할 문제를 괜히 이야기했다”고 한 뒤 “괘념치 말거라”고 한 말에 대한 네티즌 반응인 셈이다.

요즘 흔히 쓰지 않는 단어니 뜻을 잘 몰라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체로 성폭행 가해자가 보낸 메시지로 황당하다는 공분이 표출된 게 아닌가 싶다. 실제 상당수 네티즌은 “괘념치 말거라”란 말이 새 유행어가 될지 모르겠다며 비아냥도 함께 쏟아냈다.

‘괘념(掛念·걸 괘, 생각할 념)’. 글자 그대로 ‘마음에 걸어두다’란 뜻이다. 뭔가를 마음에 걸어둔다는 것은 과거의 안 좋은 일로 앙금이 남아 있다는 의미일 터. 그래서 국어사전은 괘념을 ‘마음에 두고 걱정하거나 잊지 않음’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괘의(掛意)나 괘심(掛心)도 같은 말. ‘괘씸하다’는 우리말도 괘심(掛心)에서 유래했다. 그러고 보니 ‘남에게 예절이나 신의에 어긋난 짓을 당해 분하고 밉살스럽다’는 뜻의 괘씸하다란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결국 “괘념치 말거라”란 안 전 지사의 메시지는 난 괜찮으니 그깟 일로 너도 신경 쓸 필요없다는 의미쯤 되겠다.

심리분석 전문가들은 안 전 지사의 표현을 두고 ‘범죄자의 중화심리’로 설명하고 있다. 둘의 관계는 성폭행, 즉 사회적 범죄가 아니라 개인 간 성관계란 점을 담고자 했다는 것. 스스로는 자책감을 덜고 피해자에겐 수치심을 줄이려는 심리적 희석 의도가 있다는 이야기다. 처음엔 범죄로 여겼을지 모르지만 별 탈 없이 횟수를 더해가며 점차 자신을 합리화하고 결국 범죄로 인식 못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안 전 지사의 이 표현에는 위계에 기댄 권력형 폭력의 이미지가 넘실댄다. 생소한 어투에서 봉건시대 사극 분위기마저 물씬거린다는 네티즌의 반응도 괜한 게 아니다. 미안하다는 말 정도까지는 그나마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러나 씻기 힘든 상처를 입혀놓고 피해자에게 신경 쓰지 말라는 건 2차 폭력이나 다름없다. 괘념을 넘어 괘씸하기 짝이 없는데 그냥 잊으라니 분함에 더 치를 떨었을 법하다. 도지사 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무감각해졌을지 모를 일이지만 권력형 폭력의 참담한 말로다.

장재건 논설실장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