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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미투운동, 방관도 폭력이다 /이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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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3-05 19:28:20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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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한 대로 말하고 행동하지 못할까. 사람들은 적잖이 자신의 말과 행동 때문에 후회하고 비난받는다. 명예가 바닥으로 추락하고 많은 사람에게 지탄받을 것을 생각했다면 요즘 불거진 성폭력과 같은 문제는 아예 없었을지도 모른다.

인간 사고와 행동의 인과관계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 심리학이다. 심리학자는 사랑과 증오와 같은 추상적인 관념을 실험 테이블로 끌어와 계량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인문학적 감성은 물론 사회문화 현상의 폭넓은 이해를 필요로 한다. 더구나 인간 행동은 이성과 감정뿐 아니라 때와 장소 등의 맥락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결코 단순할 수 없는 특별한 해석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인간은 정말 특별한 존재일까?

가령, 폭력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그 원인을 알아낼 수 있다면 폭력 예방에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폭력 연구를 통해 대책을 세우는 연구를 한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폭력을 정의하는 것일 테다. 우리 사회는 인간 자유의지에 영향을 주는 모든 위력을 폭력이라 하는 것에 합의된 듯하다. 폭력은 힘센 사람이 약한 사람에게 휘두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사회적 약자들이 같은 처지에 놓인 약자 혹은 더 약한 사람들에게 휘두르는 폭력도 있다. 소위 ‘을의 갑질’이라는 이런 현상을 정신분석학자 프란츠 파농은 수평폭력이라 명명했다. 성폭력이나 젠더 간 갈등, 각종 혐오문제도 동일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폭력을 통제하기 위해 인류가 고안한 방법은 폭력의 사용을 한 곳으로 몰아준 것이다. 오직 국가만이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국가는 국민으로부터 민주적인 절차와 방법으로 폭력의 행사권을 위임받았다. 하지만 국가의 통제는 폭력이 이루어진 뒤에 행사를 한다. 자신을 폭력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는 개인이 폭력에 적극적으로 맞설 때이며 그래야만 폭력 예방이 가능하다.

최근 성폭력 피해자들의 폭로와 그 폭로를 지지하는 움직임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폭로로 밝혀진 성폭력의 유형은 하나같이 권력을 이용한 성적 착취였다. 이를 단순히 개인의 일탈이나 특정 집단의 특수성이라고 좁혀서는 안 된다. 권력을 이용한 폭력은 매우 흔한 현상이고 특정 집단에서만 발생하는 일일 리 없다. 문화예술계의 폭로가 주목받고 있는 까닭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대중적으로 알려진 인물이기 때문일 뿐이다. 젠더 권력과 성차별에 의한 폭력은 드러나지만 않았을 뿐 사회 곳곳에서 분명 넓고 깊게 퍼져 있다.

폭력문제는 특이한 성향의 소수 사람만 저지르는 비도덕적인 행위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심리학자 짐바르도는 실험에 참여한 일반인들을 죄수와 교도관처럼 입게 하고 스탠퍼드대학교 지하실에 마련한 가짜 감옥에서 실험을 했다. 교도관 역할을 맡은 일반인이 죄수 역할을 맡은 일반인에게 그 상황과 주어진 역할만으로 너무 쉽게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는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교도소를 폭력적인 장소로 만드는 이유는 죄수와 교도관의 자질 문제가 아니라 교도소의 권력 구조가 불러온 사람들의 폭력 성향이라는 것이다. 스탠퍼드 감옥실험은 개인 의지만으로는 폭력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 실험이다. 사회적 역할은 이른 시간 내에 인성을 압도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권력이 주어지거나 여건이 돕는다면 누구나 폭력의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인간은 누구도 예외 없이 존엄한 존재다. 그 어떤 누구도 나의 존엄성과 인권을 침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누구도 타인의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폭력은 나와 남이 다르다는 생각, 그 잘못된 우월감과 알량한 권력을 과시하려는 지배 욕망에서 나온다. 부모라서, 남자라서, 여자라서, 부하라서, 제자라서, 심지어 사랑하기 때문에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나의 권리가 타인의 고통이라면 그것은 폭력이다.

폭력을 막는 방법은 나와 다를 바 없는 타인의 존엄성 훼손에 눈 돌리지 않는 것이다. 사건을 방관하는 일도, 피해자의 폭로를 묵살하는 일도 모두 다름 아닌 폭력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인간은 특별하다. 인간은 타인을 사랑할 줄 알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아주 특별한 존재다. 또 다른 하나 된 열정, 미투운동(#MeToo)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인지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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