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개헌과 관련하여 정부 형태에 대한 논의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미국은 선진국 중에서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이다. 미국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선진국이 의원내각제나 의원내각제를 기본으로 하는 정부 형태를 취하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칼 뢰벤슈타인은 ‘미국을 떠난 대통령제는 민주주의에 대한 죽음의 키스’라고 표현했다. 제도는 운용하기 나름이라고 하지만 대통령제는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어 어떻게 운영하더라도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미국이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으면서 민주주의가 잘 운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원이나 연방대법원이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대통령을 견제하는 권력 구조도 중요하지만 연방제도 그 이유 중의 하나이다. 외교·국방이나 연방 차원의 대응이 필요한 사안 이외의 대부분은 각 주(州)가 권한을 갖는다. 주에는 자체 방위군도 있고, 민감하고 중요한 이슈가 되는 기호용 대마나 동성 간의 결혼, 낙태, 사형제도 등도 주마다 따로 법을 정하며, 주 대법원을 비롯한 별도의 사법체계까지 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 중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된 보기 드문 나라이다. 그 이유는 권력기관 상호 간이나 언론, 시민단체 등에 의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비교적 잘 작동하는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이러한 점을 보면 우리 국민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미국처럼 중앙에 집중된 권한을 지방으로 분산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현실은 지방으로의 권한 이양은커녕 오히려 중앙에 더 집중하여 지방을 차별하는 일들이 여러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 예로 한국전력공사가 법률고문을 모집하면서 지원자격을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등록된 변호사’로 한정하여 공고한 것이다. 부산지방변호사회에서는 이 공고가 국가인권위원회법의 ‘출신 지역 등’을 이유로 특정한 사람을 배제하는 평등권 침해행위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시정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는 이 같은 진정에 대하여 오히려 ‘해당 진정은 위원회 조사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각하결정을 하였다. 이러한 한국전력이나 국가인권위의 결정이 부당함은 너무나 명백하여 부산지방변호사회에서는 국가인권위를 상대로 각하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였고 1심, 2심 모두 국가인권위가 위법하다는 판결을 이끌어 냈다. 공고를 낸 한국전력이나 차별에 대한 진정을 각하한 국가인권위 모두 중앙의 편의를 위하여 지방을 차별한 것이다.
입법에 의한 차별의 사례도 있는데 행정소송은 피고의 소재지 즉 행정관청 소재지의 행정법원이 관할이 되는 것이 원칙이나 행정소송법에는 이에 대한 예외를 두어 대법원 소재지 즉 서울의 행정법원에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법은 오로지 서울 변호사들이 세종시까지 가야 하는 불편함을 덜어주는 것이다. 서울 변호사들만 세종시에 가야하는 불편함이 있는 것이 아님에도 아무런 합리적인 이유도 없이 이러한 특혜를 부여한 것이다. 민간영역을 제외하더라도 국가작용인 행정·입법 등 여러 분야에서 일상적으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중앙집중이 해소되고 그에 따르는 자연스러운 결과로 지방 차별도 없어져야 한다. 즉 중앙에 집중된 많은 권한이 지방으로 대폭 이양돼야 한다. 이와 관련, 부산을 중심으로 지방분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며 이들은 헌법에 이런 내용이 포함되기를 희망하고 있기도 하다. 지방분권이란 지방자치 단체가 중앙정부의 권한과 자원을 나눠 갖는 것을 말하는데 현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행정권과 재정 비율이 80:20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을 60:40의 수준까지 끌어올리려고 한다. 미국 예처럼 대통령제 정부 형태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하고 성공하기 위해 지방으로의 권한 이양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민주주의가 어느 한 사람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방식이 아닌 국민이 주인이 되어 국민의 여러 목소리를 통합하여 국가를 운영하는 제도인 한, 누구에게 예속되어 눈치 보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 꼭 필요하고 이러한 관점에서 지방분권은 꼭 이루어져야 한다. 산은 많은 나무와 꽃이 제각각 어우러져야 아름답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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