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문화 권력을 내세워 약자에게 군림하고 착취한 그 잘난 거장이 어디 한둘일까. 예술계의 어른들, 평소에 권위와 체면으로 무장한 분들은 왜 아직 꿀 먹은 벙어리인가. 왜 이럴 때 자성의 말 한마디 내놓지 않는가. 왜 스스로 종아리를 걷지 않는가.


니체가 말했던가.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세상의 괴물과 싸우려고 가난한 예술의 길을 자청한 우리가 아닌가. 어쩌다 우리의 일부가, 아니 우리 자신이 괴물이 되고 말았나.


언론과 여론의 뭇매에 만신창이가 된 연극연출가 이윤택 씨에 대해 글을 쓰기로 작정했을 때 나는 곤혹스러웠다. 쓸까 말까 여러 번 망설이기도 했다. 주저한 까닭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노도처럼 분노한 사람에 끼어들어 돌을 던지는 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는 군중을 향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저 여인을 돌로 쳐라”라는 예수의 말씀을 동원하자는 건 결코 아니다. 나처럼 문단 말석을 더럽히는 이름 없는 소설가가 아니라, 더 알려지고 존경받는 예술인들이 책임 있는 발언을 해 주기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망설인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이윤택과 개인적으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온갖 추문이 양파 벗기듯 까발려지기 전만 해도 나는 그에게 아무런 유감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연극 거장에 경외심을 품고 있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글쎄, 서지현 검사가 안태근의 성추행을 폭로했을 땐 나도 마음 놓고 비난하는 대열에 섰다. 시인 고은이 ‘괴물’로 고발됐을 땐 문단의 원로 선배여서 당혹스러웠지만 “에이, 망령 난 노인네…”하고 한마디 내뱉고야 말았다. 그런데 잘 아는 이를 대놓고 ‘단죄’하는 일이 어렵다는 건 이번에 알았다. 나보다는 그와 훨씬 더 친했던, 내가 좋아하는 어떤 분들의 곤혹과 절망이 눈에 밟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건 명색 예술에 종사한다는 사람이라면 이 엄중한 사태에 한마디는 하는 게 최소한의 도리가 아니겠냐는 생각 때문이다. 매주 내 의견을 피력할 이 소중한 지면을 얻은 자로서 마땅히 발언해야 할 문제에 입 다무는 것이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도 있었다.

사설이 너무 길어졌다. 이윤택과의 교유기를 늘어놓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만, 그를 처음 만난 건 1988년 가을로 기억한다. 기자 초년병으로 연극 취재를 맡게 됐던 내가 부산 광복동에 있던 ‘가마골소극장’을 찾아갔던 거다. 그는 그때 ‘산씻김’이란 연극을 지도하고 있었다. 외딴 산장에 납치된 여인네가 허공에 두 발로 미친 듯 허우적거리며 신음하는 장면이었는데 그는 배우에게 고함지르며 끝없이 같은 장면을 반복시키는 것이었다. 그때는 극단 창단 2년쯤 지났을 때라 그는 지방극단 무명 연출자에 지나지 않았다. 삼십대 중반 연출가의 격정적인, 혹은 광기 어린 연기지도를 컴컴한 객석에 혼자 앉아 지켜보며 그가 성공할 것임을 직감했던 기억이 난다.

어쨌거나 그 후 30년간 나는 그가 한국 연극계의 대표 주자를 거쳐 거장이 돼 가는 과정을 멀찌감치 지켜보았다. 그가 좌충우돌 벌인 치기 어린 소동을 목격하기도 했고, 극단 운영이 지나치게 독선적이란 이야기도 듣긴 했지만 재능 넘치는 ‘천재’의 몸부림이라 여겼다. 나는 밀양이나 김해에서 그의 작품을 관람하기도 했고 여럿 틈에 끼여 그와 술을 마시기도 했다. 지난해엔 한 무크지의 요청으로 그와 장시간 대담을 나눈 적도 있다.

이윤택은 다혈질이고 다변이다. 아니, 온몸으로 에너지를 발산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말하고 있는 와중에도 새 아이디어가 분출해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예술적 창의성과 저돌성으로 자신의 성채를 쌓아 올렸다. 극작, 시나리오, 시작(詩作)에서부터 연극과 뮤지컬 연출, 그리고 ‘연극계의 삼성’이라고 불렸다는 대규모 극단 운영까지. 그가 만들어낸 성공담은 경이와 찬탄의 대상이었다고 해야 할 터이다.

그런데 이윤택이 처참하게 무너졌다. 그가 30여 년 쌓아 올린 성채는 단단했지만 굉음을 내며 무너지는 데는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제자 단원들이 잇달아 쏟아내는 SNS 글과 방송 인터뷰를 읽고 들으면서도 그가 오랜 시간 저지른 그 숱한 성폭력과 성적 착취가 차마 믿기지 않았다. 지금 그에겐 ‘두 개의 가면을 쓴 인간’ ‘양의 탈을 쓴 늑대’ 따위 온갖 비난이 따라 다니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는 ‘괴물’이 되고 말았을까. 다른 사람도 아닌 그 자신이 오랜 시간 쳐놓은 덫에 스스로 치인 것이어서 일말의 변명의 여지를 줄 수도 없다는 게 더 참담하다. 나아가 사과 기자회견조차 사전 각본에 따라 연습까지 했다니 더는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그를 ‘괴물’로 만든 것은 ‘성공 지상주의’가 아니었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추측해 보는 것은 나의 몫이다. 그를 변호하자는 건 아니지만, 불우하고 고단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예술 천재’는 연극판에서의 성공을 위해 오로지 앞만 보고 직진하지 않았을까. 특유의 저돌성과 카리스마를 무기 삼아 단원들을 닦달해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유능하게 세일즈하고, 구름 같은 평판을 얻고, 그것이 다시 새로운 작업(혹은 사업)을 위한 자본재가 되고…. 그는 그 와중에 입에 담기 어려운 추문까지 생산했던 셈이다.

예술을 도구로 삼아 성공의 고속도로를 쾌속 질주하면서도 그가 몰랐던 게 있지 않나 싶다. 예술의 진정한 존재 이유 말이다. 예술이란 건 인간과, 인간으로 구성된 세상을 상상력과 감수성을 도구 삼아 탐구하고 해석하는 작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술이 존재하는 까닭은 감동과 깨달음일 터다. 더 궁극적인 이유는 고통받는 이들을 위무하고 힘이 되어 주는 것, 그리하여 인간에게 자유와 해방, 구원을 주려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보면, 예술이란 필경은 강자보다는 약자, 가진 자보다는 없는 자의 편이 돼야 한다고 나는 소박하게 믿는다. 해방과 구원은 소비자의 몫만은 아니다. 창작하는 사람도 작품을 만들 때 제 몸에 묶인 굴레를 하나하나 풀어내면서 자기 구원의 동아줄을 찾아내는 것이다.

작품이 제아무리 기발하고 창의적이며 상상력이 빛난다 해도, 그래서 눈부신 성공을 거둔 다 해도 위선의 바벨탑이라면 의미가 없다. 작품의 제작에 참여한 사람의 눈물과 땀을 착취해 세워진 ‘우상의 탑’이어선 더 문제가 된다. 나아가 배우에의 꿈 하나로 젊음을 저당 잡힌 어린 여성 제자에 대한 성적 착취의 수단으로 악용했다면 그건 ‘소돔과 고모라’의 탑이 되고 마는 게 아닐까. 명색 예술가란 사람이 자기에게 미래를 의탁한 제자들을 긍휼히 여겼다면, 그 여성 단원들이 느꼈을 수치감과 절망, 트라우마를 단 한 번이라도 이해했다면 어떻게 그런 일을 예사로 강요했을까. 여성 단원들의 고발을 지켜보면서 나는 30년 전 그가 연출한 작품에서 별장에 납치돼 성적 착취를 당하는 장면을 연기하던 배우를 떠올렸다.

어디 그만 그렇겠는가. 고은, 오태석, 조민기…. 거명된 이가 한둘이 아니다. 알량한 문화 권력을 내세워 약자에게 군림하고 착취한 그 잘난 거장이 어디 한둘일까. 지금 누군가가 자기를 고발할까 봐 숨죽이고 눈알만 굴리는 자들은 또 누구일까. 아니, 그들만 그런 것도 아니다. 이런 풍토가 만연하도록, 곪은 상처가 고름을 스스로 터트릴 때까지 방관했던 그 많은 문화예술인도 ‘공범자’이다. 그렇게까지 썩은 줄은 몰랐다고 변명하겠는가. 이 글을 쓰는 나를 포함해 몰랐다는 사람도 면책될 수는 없다. 같은 판에서 함께 숨을 쉬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우리 모두 부채 의식을 가져야 할 일이다. ‘내 탓이오’하고 가슴을 두드려야 한다.

이윤택을 덮은 돌무덤 위에 돌 하나 더 던지는 것 같아 가슴이 무겁지만, 이참에 하고 꼭 싶은 말이 있다. 예술계의 어른들, 평소에 권위와 체면으로 무장한 분들은 왜 아직 꿀 먹은 벙어리인가. 왜 이럴 때 자성의 말 한마디 내놓지 않는가. 왜 스스로 종아리를 걷지 않는가. 정부를 비난하고 사회의 변화를 촉구하는 성명서는 그렇게 자주 내던 예술가 단체는 또 뭘 하고 있나. 얼른 사태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건가. 우리가 청소하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들까지 빗자루로 싹싹 쓸려가 버릴 거다.

니체가 말했던가.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만일 네가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연도 네 안으로 들어가 너를 들여다본다’. 세상의 괴물과 싸우려고 가난한 예술의 길을 자청한 우리가 아닌가. 어쩌다 우리의 일부가, 아니 우리 자신이 괴물이 되고 말았나. 우리 속의 심연은 얼마나 깊고 괴괴한가. 나는 어둠 속에 괴어 있는 그 심연이 두렵다. 식은땀이 난다.

소설가·경성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