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간호학과에 다니는 학생들이라면 꼭 거치는 의식이 하나 있다. ‘나이팅게일 선서’다. 학생들은 기초간호학 수업을 마친 뒤 임상실습을 나가기 전 간호사 복장을 한 채 촛불을 들고 경건한 자세로 선서를 한다.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로 시작되는 나이팅게일 선서는 촛불처럼 자신의 몸을 태워 간호를 받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숭고한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런 야무진 선서와는 별개로 간호사로서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란 참 어렵다. 요즘 어떤 직업인들 만만한 게 있겠는가만 간호사 역시 3D 업종에 속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환자는 계속 늘어나는데도 인력 충원이 제대로 안 돼 살인적인 업무에 시달린다. 대한간호협회 자료에 따르면 간호사 한 사람이 돌봐야 하는 환자 수는 25~40명이다. 미국의 5.4명, 일본의 7명 등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경력 1년 미만의 간호사 평균 이직률은 33.9%나 된다.

간호사 사회의 엄격한 기강도 이직률을 높이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특히 대형 병원의 경우 신입 간호사가 선배로부터 일을 배우는 과정에서는 그 수위가 더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간호사들은 이런 행동을 ‘태움(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활활 태워 괴롭히겠다는 뜻)’이라고 부른다. 욕설과 험담은 약과이며 심하면 등 때리기나 귀 옆 머리 잡아당기기, 독방에 가두기 등과 같은 폭력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태움문화는 얼마 전 한 대형병원 20대 간호사가 조직 내 괴롭힘으로 투신자살을 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 이후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간호사들의 증언이 잇따르며 파장이 더욱 커지고 있다. 물론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병원인 만큼 어느 정도의 기강잡기는 필요악일지 모른다. 그러나 군사독재시대나 존재했을 법한 이런 태움문화가 아직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면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 등은 간호사 인권 침해에 대한 조사에 들어가기로 했다. 또 간호사단체에서는 1인당 환자 수 법제화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시급한 과제는 간호사 내부의 자정노력일 것이다. 나이팅게일 선서 때 촛불을 태우면서 헌신을 생각했던 간호사라면 타인의 인격마저 활활 태워버리는 행위가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잘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