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이윤택 전 예술감독이 여성 단원들을 상습 성추행한 데 대해 어제 공식 사과했다. 이날 이 씨는 “피해를 본 당사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며 정말 부끄럽고 참담하다”고 말했다. 또 자신이 저지른 죄와 관련해 법적 책임을 포함해 어떤 벌도 달게 받겠으며 연극계에서 완전히 물러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씨가 그동안 우리나라 문화계에서 차지했던 위상으로 볼 때 이 같은 사과와 거취 표명은 발언 수위 여부를 떠나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공식 사과에도 불구하고 이 씨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아직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한 그의 태도 때문이다. 우선 그는 성추행이 “극단을 18년간 운영하며 관습적으로 일어난 아주 나쁜 형태의 일”이었다며 범죄를 개인의 잘못보다는 연극계 전체의 분위기 탓으로 돌렸다. 자신은 의도하지 않았으나 성추행이 관행이었던 까닭에 어쩔 수 없이 그랬다는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어린 나이인 19세와 20세 때 두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는 한 단원의 주장에 대한 해명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이 씨는 “성관계 자체는 있었지만 강제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반박을 했다. 이어 앞으로 법적 절차에 따라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강변했다. 그렇다면 굳이 왜 사과 기자회견을 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성관계는 인정하나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라는 황당한 답변을 내놨다.

이 씨가 단원들에게 가한 행위는 엄벌을 받아야 하는 심각한 성범죄다. 공교롭게도 피해자들이 밝힌 사건 발생 시점은 모두 공소시효를 지났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법적 책임을 묻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진정성이 결여된 그의 형식적인 사과만으로 사태가 봉합될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 청와대 게시판에는 이 씨의 성범죄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조사를 요구하는 청원이 줄을 잇고 있다. 일벌백계를 위해서라도 문화계 권력의 방자한 횡포에는 어떤 식으로든 단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