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이 넘는 시간을 우리 경제와 산업, 기업과 도시를 분석하고 그 앞날을 내다보면서 늘 남의 기술을 빌려와서 걱정이었고, 언제는 늘 남의 돈을 빌려와서 걱정이었고, 또 언제는 늘 남의 브랜드를 빌려와서 걱정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왜 민주정치의 수준이 낮은가 하는 걱정도 늘 빠지지 않았고, 물론 통일의 과제도 언제나 깔려있는 걱정거리이다. 그런데 요즘 글로벌사회를 들여다보면 정말 격세지감이 든다. 도대체 우리가 하던 그 많던 걱정거리가 다른 나라에서 나타나고 있으니, 그것도 선진국들이나 대국들이 주로 그런 문제를 안고 있으니 더욱 느끼는 감정이 새롭다.
우선 영국이 소매은행 신설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미 2010년 이후 26개 소매은행이 새로 진입했으며, 2017년 연말 현재 5개가 심사 중이다. 영국은 그동안 수십 년을 은행의 합병과 연대를 통한 대형화에 앞장서온 나라인데 지금은 소매은행을 늘리려 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대형은행의 집중도가 높아져서라고 하는데, 그럼 그동안 금융기관 대형화가 부진해서 늘 고민하던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실은 우리 정부가 영국 같은 나라의 초대형화를 의식하고 그동안 지나치게 금융기관 대형화에 천착해온 감이 있어서 걱정이었는데 이런 금융선진국의 태도 변화는 우리에게 운신의 폭을 늘려주는 소식이다.
두 번째 이슈는 일본과 스위스가 가상화폐에서 지금 공격적인 입장을 취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그들은 가장 안정적인 법정통화 위주의 대외 투자나라이거나 글로벌 중개 나라인데 이런 놀라운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다른 나라가 가상화폐의 법정통화 여파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이들은 가장 먼저 가상화폐를 받아들이는 반응을 보여 놀랐다. 그 속내를 한번 들여다보면 일본과 스위스는 그동안 엔화나 스위스 프랑이 안정된 통화여서 유동성 관리가 참 쉬운 나라였지만 장기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그들은 자금이 불안한 나라가 되어 가고 있어서 아직은 초기인 가상화폐의 등장에도 지나치게 예민해진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중국이 그렇게 무심하던 주택시장 과열을 뒤늦게 규제하면서 주택시장이 조정국면에 진입해 자칫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이다. 아직 전국적으로 집이 턱없이 부족한 나라이고 주택수준도 아주 열악한 나라가 그동안 몇몇 대도시의 주택들이 심각한 투기장으로 변하면서 이미 선진국 도시 수준으로 오른 것이 화근이다. 그들이 만약 여기서 본격적인 주택가격 폭락이 나타나면 글로벌 차원의 금융경색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앞의 이러한 문제들로 볼 때 지금 우리나라는 글로벌 경제에서 논란이 큰 정부 부채, 소매은행 부진, 주택경기 불황 같은 모든 면에서 비교적 안정권에 있는 나라이다. 가상화폐도 너무 규제 일변도가 아닌가 할 정도로 보수적으로 다루어 장차 가상화폐 급등락이 가져올 수 있는 후폭풍도 일본이나 스위스만큼 크지 않은 입장이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왜 이런 경제 상황의 안정화가 상대적으로 가능한가 생각해보면, 하나는 지금 우리 경제는 기업이익이 중심이 되어 국가의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주로 기업투자나 기업생산이 중심이 되어 경제가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나머지 하나는 우리는 비교적 민주적인 사회가 진행돼 노동시간 단축, 국가복지예산 증대, 사회보장 시스템 확대가 이슈인 요즘 드물게 보는 친사회적 국가이다.
국민 개개인의 삶이야 늘 고단함이 크지만, 대개의 다른 나라 사정을 볼라치면 지금의 이런 우리의 입장이 다행이고 느낌이 좋다. 우리 기업을 이만큼 만드는 데는 모든 국민들의 노력과 인내와 헌신이 들어가 있다. 특히 공업을 위해 오래 헌신해준 농업이나 수산업, 그리고 근로자로 일해온 국민들이 고맙다. 우리 공업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다른 부문에 비해 그동안 특혜가 적지 않았고 또 그런 만큼 실력도 참 좋아졌다. 그래서 지금도 잘 돌아가는 우리의 제조기업이라면 그 주식 가치는 상당히 건강하다고 본다.
우리의 금융·건설· 소비 주식은 이제는 여간해선 단기간에 거품이 되기 어려운 주가 내실의 건전성도 엿보인다. 그런 면에서 여러 나라 금융시장이 흔들리더라도 우리나라는 근로와 저축과 투자가 유효한 균형 잡힌 신흥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우리가 지금 동계올림픽을 개최하고 있다.
경기대 경영전문대학원장·글로벌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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