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남북 정상회담 제의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대처가 살얼음판 걷듯 조심스럽다. 자칫 잘못하다간 오랜 세월 소망해온 남북 화해 기회가 물거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 정상회담 성사의 관건은 북미관계 개선이다. 북미가 지금처럼 북핵을 두고 극한대립을 지속하는 한 남북 화해는 어렵다. 문 대통령은 그래서 북한 고위급 대표단에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북미 조기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미국과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당부했다. 북미 행보에 이목이 집중되는 상황이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지난 11일(현지시간) 귀국길에 “북한이 대화를 원하면 대화하겠다”고 밝혔다는 소식은 그나마 귀를 솔깃하게 한다. 북한 인권상황에 날선 비난을 쏟아내며 대북 압박의 고삐를 죄었던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전후 행태와 다른 모습이어서다. 하지만 그는 대북 압박을 강화하겠다는 말은 거둬들이지 않았다. 북한의 비핵화 약속을 대화의 입구로 설정한 미 정부의 입장은 그대로라는 뜻으로 들린다. “북미 대화의 성사 여부는 북한에 달렸다”는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발언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이는 자국에 대한 미국의 적대시 정책 폐기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해온 북한의 입장과 상충된다. 북미가 대화 테이블에 마주 앉으려면 서로 일정 부분 양보가 불가피한 이유다. 대화의 입구를 비핵화 약속이 아닌 핵·미사일 개발 동결로 조율하는 것과 같은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선결 과제는 평창올림픽·패럴림픽 후로 예정된 한미 연합군사훈련 연기다. 한미가 북한을 상대로 전쟁준비를 하는 상태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어찌 이뤄질 수 있겠는가.

정부는 한미훈련 연기를 위한 여건 조성에 매진해야 한다. 북미에 대한 설득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한 다중외교에도 신경을 쏟을 필요가 있다. 힘들지만 포기해선 안 된다. 포기하는 순간 한반도 문제 해결의 운전석에 앉겠다는 희망도 물 건너 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