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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 칼럼] 첫 출근하는 아들에게

‘첫 출근’의 설렘과 기대…不狂不及 마음가짐 중요, 어디 가든 변화·소통 필요

이 땅의 취준생 180만 명, 그들의 눈빛 잊어선 안돼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2-12 19:20:25
  •  |  본지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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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새봄이 오는구나. 2월의 청춘들은 마음이 먼저 자란다고 하지. 입춘 지나 바야흐로 우수 무렵이구나. 북한 동포들이 참가해 함께 펼치는 평창동계올림픽의 기운도 예사롭지 않구나. 이 기운이 이어져, 한반도를 짓누르는 핵 공포, 전쟁 공포, 남남 갈등이 눈 녹듯 풀렸으면 좋겠구나. 싫다 좋다 해도 우린 한겨레, 5000년 역사를 공유한 한민족 아니더냐.

아들아, 축하한다. 바늘구멍 같다던 공채의 벽을 뚫고 취직을 했다니, 아직도 믿기지 않는구나. 이 땅에서 취준생(취업준비생)의 삶이 어떠한지, 바닥 인생의 곤고함이 어떠한지 체감했을 테니, 앞으로의 발걸음이 한층 기대되는구나. 첫 출근! 듣기만 해도 내가 두근대고 설레는구나. ‘첫’ 자는 원래 설렘과 기대를 품는다지. 첫사랑, 첫 삽, 첫 경험, 첫 단추, 첫 만남, 첫 도전…. 이 세상의 모든 처음은 신선하고 맑고 밝고 푸르고 두근거리는 것이니, 우리말의 묘미가 얼마나 아름다우냐. 출근하고 얼마 안 있으면 ‘첫 월급’도 받겠구나. 내 경험상 첫 월급은 그 어떤 일의 대가보다 짜릿한 급료더구나.

아들아, 흙수저 아들아! 너는 출발부터 맨손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다. 항상 쪼들리는 살림, 너도 보았겠지만, 너 공부시킨다고 부모 등골이 휘었다. 외지에 보내 사립대학 4년을 공부시키자니 실로 억(億) 소리가 났다. 대충 셈해보니 1억 가까이 들어갔더구나. 여기까진 부모 몫이라 쳐도, 이제부턴 완전체로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직장이 외지라니 혼자 방을 얻어 살아야 할 테고, 밥이나 반찬, 빨래 게다가 자질구레한 민원까지 모두 혼자 처리하고 해결해야 하는 거지.

그러나 아들아, 혼자지만 세상은 결코 혼자선 살 수 없다. 혼자 거뜬히 견디고 일어서면, 주변에 사람이 생기고 연대의 손길이 닿지. 좋은 사람 만나면 못 해본 사랑도 실컷 하렴. 시시껄렁한 사랑놀음이 아니라, 놀랍고 벅찬 위대한 사랑의 시를 써 보라고. 멀리 가려면 손잡고 함께 가라는 말이 있지.

아들아, 뭔가를 이루려면 미쳐야 한단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쳐야 미친다’는 말을 늘 새겨라. 세상일 어느 것 하나 호락호락 만만한 건 없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존재감이 있어야 하고, 일 처리가 똑 부러져야 인정을 받는다. 삶이 풍요롭길 원하느냐? 여행을 즐기고 책을 읽어라. 머리맡에 항시 책을 두고, 여행 가방엔 읽을 책 한두 권을 꼭 넣어 둬라.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고,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라지. 하다 보면 풍경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사랑도 만날 테지.

시를 가까이해라. 시적 감수성은 창조적·예술적 삶의 바탕이 되지. 백석(白石)을 아느냐. 젊음의 시어가 얼마나 강렬하고 눈물겹게 아름다운지, 백석의 시를 통해 체험해 보라.

잘 가꾸고, 멋 부릴 줄도 알아야 한다. ‘제발 개구리처럼 앉지 말고 여왕처럼 앉아라’는 드니스 두해멀의 시구를 기억해라. 입에서 박하향이 나게 하고 이빨은 늘 희고 깨끗하게, 가까이 다가서고 싶도록 몸가짐에 신경 써라.
아들아, 젊음을 누리되 과신하진 마라. ‘젊음의 특권’ 같은 건 말장난이다. 도전하고 부딪히고 상상하고 창조할 때, 젊음은 그 자체가 특권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특권은 허세요 망상일 뿐이다. ‘아프니까 청춘’ 따위의 말도 하지 마라. 방황하고 흔들리고 무기력하니 아픈 거다. 너네는 ‘88만 원 세대’로 컸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여력 있으면 비트코인(가상화폐)도 해 보고, 주식 투자도 해 보라. 당당한 청부(淸富)로 사회에 기여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물신주의는 경계해야 한다. 돈, 돈 하지만 돈이 전부는 아니다. 돈의 노예가 아닌, 돈의 주인이 되면 가진 게 적어도 행복은 가까워진다.

사상가인 고 신영복 선생은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卽變 變卽通 通卽久)’란 말을 좋아했다. 주역 계사편의 한 구절이다. ‘궁하면 변하게 되고, 변하면 통하게 되고, 통하면 영원해진다’는 말이다. ‘변화 소통이 생명’이라는 뜻이다. 청와대에 이 문구가 걸렸더구나. 이 말을 마지막 당부로 삼고 싶구나. 매사에 호기심을 가지라는 거다. 질문 없는 인생은 허망하다. 물어야 새로운 게 얻어진다.

아들아, 이렇게 공개적으로 편지 쓰는 뜻을 알겠느냐. 이 땅에는 아직도 취준생이 106만 명, 노는 ‘유휴청년’이 73만 명(한국직업능력개발원 추산)이나 된다는구나. 너는 운 좋게 바늘구멍을 뚫었지만, 너 주변엔 수많은 동료·선후배가 취업문 앞을 서성거리고 있다는 사실. 그들의 눈빛과 갈망을 잊어선 안 된다. 그 사실 앞에서 너의 첫 출근은 시대적 무게감과 함께 각오가 새로워야 하리라.

칼럼니스트·스토리랩 수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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