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모처럼의 가족 외식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본능적으로 앉았던 의자를 테이블 밑으로 밀어 넣는데 앞에 앉았던 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그냥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마친 후 계단을 내려오면서 아들에게 넌지시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날 때는 의자를 테이블 밑으로 밀어 넣고 나오는 게 더 좋지 않을까”라고 말해봤다. “아! 죄송해요, 다음부터는 그렇게 할게요”라는 대답을 은근히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왜요?”라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살짝 당황하면서 “음, 그건 원래 그렇게 되어 있었으니까 원래대로 돌려놓고 나오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인데, 너의 생각은 다르니?”라고 되물었다. “다음 사람이 와서 앉을 때 의자가 나와 있는 것이 더 앉기 편하지 않은가요? 그리고 그 ‘원래’라는 것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어디에 규정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라고 웃으며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에 화가 나지는 않았지만 말문이 막혀 서둘러 운전석에 앉았다. 집까지 운전하고 오면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렇다. 필자는 지금까지 ‘의자는 테이블 밑으로 들어가 있어야 제대로 된 위치에 있는 것이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아들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아버지인 필자에게 되물었고, 직업이 교수인 까닭에 학생들로부터 질문을 받으면 반드시 대답해줘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는 편인데 아들과의 대화 마지막이 대답이 아닌 질문으로 끝난 것에 마음의 빚을 안고 하루가 지나버렸다.

그로부터 며칠 후, 퇴근해서 아들의 방문을 빼꼼히 열고 들여다보니 옷, 책, 가방 등의 물건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시장바닥이 따로 없을 정도로 난장판이었다. 물론 이와 같은 아들 방의 광경에 매우 익숙해 있긴 하지만 왠지 지난번 식당에서의 논쟁에서 필자가 당한 의문의 1패를 오늘 상황으로 만회해보고자 “방을 좀 정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하고 비교적 점잖게 말해봤다. 이번에도 “네, 그럴게요”라는 이미 필자 마음대로 만들어놓은 대답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방바닥에 널려 있는 것이 물건 찾기도 쉽고 오히려 편리해요. 정리가 필요할 때 할게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질 수 없다는 생각에 “편할지는 모르겠지만 보기가 싫잖아!”하고 약간은 짜증 섞인 대답으로 반격해봤더니 “제가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거실을 지저분하게 쓰는 건 아니잖아요. 여기는 제방이니까 제 마음대로 쓰는 것이 문제 되지 않을 것 같은데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최근 며칠 사이 두 번 연달아 고분고분하지 않은 대답만을 돌려준 아들 녀석이 밉게 보여 아무 말 없이 문을 닫고 필자의 방으로 돌아왔다. 흥분을 가라앉힌 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들이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아들의 말대로 거실을 지저분하게 해놓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이 사실이고, 지저분한 모습이 보기 싫다면 방문을 안 열면 그만인 것을. 반격하려다가 오히려 의문의 2패까지 당하고 말았다.

쿠데타로 수립된 군사정권의 획일화된 교육철학에 의해 초·중·고등학교를 보낸 것도 모자라 대학과 대학원까지 보낸 필자. 2명 이상이 모이면 늘 “좌우로 정렬!”을 외쳤던 체육선생님, 교련선생님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렇다. 필자는 그런 식으로 교육받으며 살아왔고, 그와 같은 획일적인 의식이 몸에 배어 있다. 그러니 의자는 테이블 밑으로 들어가 있어야 마땅하고, 책은 책장이나 책꽂이에 꽂혀 있어야 하며, 옷은 옷장이나 옷걸이에 걸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생각과 표현이 보장되는 시대에 태어나 성장한 아들의 생각이 필자와 다른 것 또한 너무나 당연하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 어찌 필자 가정에서만 발생하는 일이랴!

요즘처럼 각계각층 간에 생각과 표현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시대도 일찍이 없으리라. 단순하게는 나이 기준의 세대 간 갈등부터 교육 환경이 다른 계층 간의 갈등을 지나 경제적 수준의 차이에서 오는 빈부의 갈등은 정치권에서 늘 운운하는 좌우의 사상 대립으로까지 전개되곤 하지만 서로의 차이를 ‘틀림’으로 인식해버린다면 창의성이 무한히 요구되는 4차 산업혁명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내 생각을 상대에 강요하고 다른 생각을 이유 없이 비난하는 구태에서 벗어나 ‘다름’으로 인정할 수 있는 여유와 배려가 존재하는, 진정한 선진사회가 조속히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부산가톨릭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