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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의 세설사설] 평창, 평양, 워싱턴의 삼각함수…해법은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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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2-11 18:53:53
  •  |  본지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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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이 아니었다면 한자리에 있기 어려웠을 분들도 있지만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던 문 대통령의 환영사처럼, 끝내 서로 외면하긴 했지만 펜스 미국 부통령과 김영남·김여정이 평창스타디움 귀빈석의 지근거리에 앉은 것도 쉽게 그려질 만한 그림은 아니었다. 각국 사절단의 수 싸움은 또 얼마나 치열했던가.


꼬이고 꼬인 북핵을 알렉산더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자르듯 풀 수는 없다. ‘콜럼버스의 달걀’ 해법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콜럼버스가 달걀 끝을 깨뜨려 탁자에 세우자 사람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비아냥했다. 콜럼버스는 이렇게 응수했다. “누군가를 따라 하기는 쉽지만 무슨 일이든 처음 하는 건 쉽지 않소.” 북핵도 결국은 ‘상식에 기초한 상상력’으로 풀어야 할 문제다.


   
요 며칠 새 눈이 핑핑 돌아갈 만큼 많은 일이 일어났다. 평창올림픽이 개막했고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남한에 왔다. 그제는 김영남과 김여정이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점심을 같이 먹더니 밤엔 남북 선수들이 함께 뛴 여자아이스하키 경기를 관중석에 나란히 앉아 관람하는 장면도 연출됐다. 상전벽해랄까, 한 달쯤 전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장면이 아닌가. 그러니 지금 한국은 ‘원더랜드’다. 개막식이 열렸던 올림픽스타디움 안쪽의 세상도 놀라웠지만 경기장 바깥의 숨 가쁜 막후 외교전 역시 놀라움의 연속이다.

우선 개막식 이야기부터. 다들 지켜보신 대로 무난하게 치러졌다. 한국 문화를 소개한 시나리오가 조금 더 정교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없지 않았지만 강원도 산골 아이들이 평화와 미래를 찾아 나선다는 발상은 괜찮았다. 단군신화와 인면조(人面鳥), 고구려 고분벽화의 사신(四神)을 내세운 것도 나쁘지 않았다. 홀로그램으로 거북선, 해시계, 다보탑을 소개한 것도 무난했다. 정한 서린 ‘정선 아라리’가 흐르는 가운데 재현된 강원도의 풍광에도 서정성이 물씬했고. 개막식을 관통한 콘셉트는 첨단 IT기술을 활용한 빛의 축제였는데, 드론을 띄워 캄캄한 허공에 거대한 오륜마크를 새긴 것도 놀라웠다.

무어니 해도, 한반도기를 앞세운 남북선수단의 공동입장에 국민의 이목이 끌렸을 터.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감회가 새로웠다. 남북 여자선수들이 성화봉을 함께 들고 달린 장면에서도 가슴이 뭉클했다. 스타디움 꼭대기 성화대의 김연아는 안데르센 동화 속 백조처럼, 아니 신화 속 여신처럼 우아했다.
올림픽이 가져온 ‘놀라움’은 경기장 밖에서도 마찬가지. 스타디움 안의 경이로움이 정교하게 연출된 결과라면 남북 간 급속한 해빙 무드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평창올림픽이 아니었다면 한자리에 있기 어려웠을 분들도 있지만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던 문 대통령의 환영사처럼, 끝내 서로 외면하긴 했지만 펜스 미국 부통령과 김영남·김여정이 평창스타디움 귀빈석의 지근거리에 앉은 것도 쉽게 그려질 만한 그림은 아니었다. 각국 사절단의 수 싸움은 또 얼마나 치열했던가. 김연아의 춤은 백조처럼 우아했지만, 문재인과 펜스, 아베, 김여정의 춤은 우아하지 않았다. 백조의 깃털처럼 화려한 리셉션장의 조명을 받으며 그들은 ‘국익’이란 이름의 물갈퀴를 물 밑에서 분주하게 휘젓고 있었던 거다.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김여정이 문 대통령에게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하고 평양으로 초청했다니 그 빠른 상황 전개가 놀랍지 않나. 하지만 “놀랍다”를 되뇌며 입만 벌리고 있기엔 상황이 그리 녹록해 보이진 않는다. 문 대통령의 거듭된 대화 제의에 콧방귀 뀌던 북한이 무슨 바람이 불어 이렇게 적극적일까 하는 미심쩍은 눈초리가 우리 사회 일각에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선수단, 공연단, 응원단을 500명씩이나 보내고 이른바 ‘백두혈통’인 김여정까지 파견했으니 앞으로 듬뿍 뜯어내려고 작정했나 보다는 의구심도 있을 거다.

북한의 평화 공세에 가장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이는 건 미국이다. 얼마 전 칼럼에서 쓴 적이 있지만 미국도 장기적으론 북한과 대화로 문제를 풀 수밖에 없다는 건 알고 있을 거다. 내가 보기엔 지금 미국 조야에선 협상론과 제재론이 힘겨룸을 하고 있는 양상이다. 백악관, 국방부, 공화당 매파기 ‘압박과 제재’에 대한 미련을 두고 있는 반면 국무부와 의회의 비둘기파는 협상 외엔 달리 방법이 없지 않으냐는 현실론을 펴고 있는 것 같다. 보수파이면서도 북한을 제한 타격한다는 ‘코피 전략(bloody nose)’에 반대했다는 빅터 차의 주한미국대사 지명이 철회된 것도 그런 내부 갈등의 한 방증이랄까. 트럼프는 워싱턴 시가에서 북한처럼 열병식을 추진하고도 있다.

어쨌든 미국의 대북 공식 입장은 ‘최대한의 제재와 압박’이다. 펜스가 청와대에 가서까지 문 대통령에게 ‘제재와 압박’을 강조한 건 매파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한국이 지나치게 급속히 북한에 경도될 것을 우려한 견제구라는 건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한편으론 북한과의 대화 국면에 대비한 기 싸움이기도 하다. 장사꾼도 흥정 전에는 일단 물건값을 호되게 불러 놓고 보지 않나. 그건 북한도 마찬가지. 평양에서 인민군 창건기념 열병식을 연 것도, “우리는 남조선 방문 때 미국에 대화를 구걸할 생각이 없다”고 일갈한 것도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도가 아니겠나. 언젠가는 북미가 만나긴 할 테지만 상당 기간 지루한 말싸움이 계속될 거다.

그건 그렇고, 문 대통령이 주최한 환영 리셉션에서 보인 펜스의 행동은 외교 무례가 아닐 수 없다. 손님으로 왔으면 주인장의 재량에 따라야지, 김영남과 얼굴 맞대기 싫다고 일부러 늑장을 부린 것도 모자라 5분 만에 휑하니 사라진 건 남의 잔치에 재 뿌리는 짓이 아닌가. 그럴 양이면 뭐 하러 왔을까. 아무리 기 싸움이래도 강대국 지도자라면서 꼭 그렇게 옹졸하게 처신해야 했을까.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더라고 펜스를 따라다니며 함께 늦게 온 주제에 문 대통령에게 한미연합 훈련을 예정대로 하라는 둥 남의 주권에 간섭한 아베도 밉살스럽기는 매한가지. 말이 난 김에 하는 말이지만, 북핵 문제가 이 지경까지 온 데는 미국의 책임도 크다. 클린턴 정권 막바지에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북미수교가 거의 합의됐지만 부시가 손바닥처럼 뒤집지 않았나. 그때 수교해 평양을 국제사회로 끌어냈으면 지금 같은 소동이 벌어지진 않았을 거다. 북한에 지불해야 할 핵 폐기의 대가를 떠맡기 싫어 6자회담이랍시고 한국은 물론 중국, 러시아, 일본까지 끌어들여 허송세월한 것은 부시 정권이고 ‘전략적 인내’라며 북한의 움직임을 방관했던 건 오바마 정권이었다. 하기야 김대중·노무현의 대북 정책을 폐기했던 이명박·박근혜 정권이라고 별다를까만.

어쨌거나 올림픽 이후가 문제다. 문재인 정부로선 북한의 구애가 한편으론 반가우면서도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미국이 눈을 부릅뜬 판에 북한이 보낼 청구서에 응할 방법이 딱히 없다. 그러니 김정은의 초청에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고 어중간하게 답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올림픽 이후로 미뤄둔 ‘한미연합훈련’이 향후 남북·북미 관계를 재는 리트머스시험지가 될 가능성이 크겠지. 훈련을 재개하면 북한은 “우리는 너희 잔치에 부조했는데 뒤통수를 때리느냐”며 또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할지 모른다.

이솝 우화에 이런 게 있다. 부자가 당나귀를 팔러 장에 갔다. 어떤 마을을 지나가는데 동네 사람들이 놀렸다. “당나귀를 타고 가면 될 텐데 그냥 끌고 가다니 참 어리석네.” 아버지가 자식을 태웠다. 이번엔 노인들이 꾸중했다. “늙은 아버지는 걸어가는데 젊은 놈이 꺼떡거리며 타고 가네.” 아버지는 아들을 내리고 자기가 탔다. 또 다른 마을을 지나가는데 여자들이 수군거렸다. “어린 아들은 걸리고 어른이 타고 가네.” 이번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탔다. 그러자 당나귀의 다리가 부러져 버렸다.

자칫 문 대통령이 이런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랬다고, 북한과 미국이 마주 앉을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게 최선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인내와 지혜로 대처할밖에.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왔는데 올림픽 끝났다고 북한에 입을 싹 씻을 수도 없지 않나. ‘핵무기의 완전한 폐기’와 ‘핵보유국 인정’이란 틈바구니에서 운신의 폭이 넓지 않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과 국제사회의 확실한 감시를 전제로 ‘핵 동결과 북한의 국제사회 복귀’ 카드쯤으로 중재에 나서면 실마리가 풀릴 수도 있지 않을까. 너무 순진한 상상인가.

   
꼬이고 꼬인 북핵을 알렉산더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자르듯 풀 수는 없다. ‘콜럼버스의 달걀’ 해법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콜럼버스가 달걀 끝을 깨뜨려 탁자에 세우자 사람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비아냥했다. 콜럼버스는 이렇게 응수했다. “누군가를 따라 하기는 쉽지만 무슨 일이든 처음 하는 건 쉽지 않소.” 북핵도 결국은 ‘상식에 기초한 상상력’으로 풀어야 할 문제다. 문재인 정부의 끈기와 상상력이 중요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소설가·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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