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면 국가에서는 서울을 제외한 전국의 문예회관을 위해 큰 예술 ‘반찬 가게’를 운영한다. 반찬을 차리는 주체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한국문예회관연합회(한문연). 한문연은 직접 장을 보고 요리해서 반찬(공연예술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문 요리사(공연예술단체)가 만든 반찬을 구입해 큰 반찬가게에 진열해놓는다. 그러면 각 지역의 문예회관은 진열된 반찬 중에서 적합한 반찬을 골라 지역주민을 위해 맛있는 밥상(공연프로그램 일정표)을 차린다.
올해도 국공립예술기관 작품 58개와 민간예술단체 작품 250개 등 300여 개의 다양한 반찬이 차려졌다. 가정주부의 심정으로 가계 형편도 생각해가며 식구의 입맛에 맞는 반찬을 고르느라 문예회관은 고심한다. 연극 무용 음악 등 갖가지 공연으로 밥상을 차리자면 예산이 많이 든다. 한문연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형편을 감안해 가격을 깎아주기도 한다.
‘방방곡곡 문화공감사업’으로 불리는 이 일은 220여 곳의 문예회관이 부실한 공연프로그램으로 어려움을 겪자, 국가가 예산을 들여 프로그램을 지원하면서 시작됐다. 그런데, 근래 들어 이 사업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문예회관이 직접 반찬을 만들어 자급함은 물론, 국가에 납품해 타 지역 문예회관에 유통까지 한다는 점이다. 지난해에는 17개 문예회관이 작품을 만들어 신청했고, 이 중 4개 작품이 선정 유통돼 1만6000여 명이 관람했다. 올해는 18개 문예회관이 일합을 겨루고 있으며, 조만간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그동안 선정된 문예회관은 경기도와 강원도 지역에 비교적 많다. 경기도에 많은 것은 수도권에 실력 있는 공연단체가 많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강원도에도 적지 않은 것은 수도권 우수 공연단체들이 몇 년 전 이 지역으로 옮겨가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동남권(부산·울산·경남)의 문예회관 실적은 저조한 편이다. 문예회관 차원의 창작 활동이 미미하고 타 지역으로 유통시킨 사례도 찾아보기 어렵다. 문예회관이 수도권에서 만든 작품의 유통 공간으로만 활용되고 자체적으로 우수 작품을 창작해내지 못한다면 지역예술 발전은 요원하다. 공연예술단체의 기량이 향상되지 않으면 자기 지역 문예회관 무대에 서는 일도 어려워질 수 있다.
동남권(800만 명)은 수도권(2500만 명) 다음으로 인구가 밀집해 큰 예술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문예회관도 수도권에 필적할 정도로 많이(32개) 몰려 있고 관객의 예술 향유 욕구도 높다. 창작과 유통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관객의 수요에 따라갈 수준 높은 작품의 자체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 보니 수도권으로 관람 원정도 많이 가는 게 현실이다.
그럼, 창작에 불을 지필 획기적 방안은 없을까. 앞서가는 경기도 지역의 사례를 살펴보면 해답이 나온다. 올해 4년째 진행된 ‘경기 공연예술 페스타’는 경기도내 문예회관에 상주하고 있는 16개 공연예술단체가 우수 작품을 소개하며 그 유통을 추진하는 아트마켓 형태의 축제다. 2015년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개최된 이후 안양과 구리에 이어 올해는 안산문화재단에서 지난달 24~27일 열렸다. 가족 음악극으로 재구성한 극공장소 마방진의 ‘토끼전’ 등 4개 작품이 공연장 상주단체 작품 중 베스트컬렉션으로 무대에 올랐다. 애니메이션 주제곡만 평생 부른 가수를 주인공으로 한 연극 ‘꽃불’ 등 다채로운 작품이 관객을 만났다.
부산과 경남에서도 공연장 상주단체 행사가 열리고 있다. 하지만 ‘경기’ 페스타를 주목해야 할 점은 경쟁을 통해 작품을 선정하고 새 작품의 유통과 보급을 위한 축제형 아트마켓으로 운영된다는 사실이다. 경기문화재단이 예산을 적극 지원해준다는 점도 플러스 요인이다.
동남권에서는 부울경 3개 광역문화재단이 32개 문예회관이 소속된 한문연 부울경 지회와 연대하면 경기도에 못지않은 공연예술페스타를 개최할 잠재력이 있다. 문예회관은 상주예술단체들과 함께 작품을 창작하고, 광역문화재단이 예산을 지원해 주면 탄력을 받을 것이다. 지역 설화나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한 연극 오페라 뮤지컬 등을 창작해 독창적인 작품으로 개발하는 것도 좋겠다. 창작 과정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나 CJ문화재단 등의 창작 인력 도움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문예회관은 이렇게 만든 작품을 우선 해당 지역주민에게 선보인 뒤에 동남권의 타 지역 문예회관에 유통하고, 그 중 우수작품을 골라 아트마켓을 겸한 축제인 ‘동남권 공연예술 페스타’를 개최하자는 것이다. 한문연 부울경지회 주관으로 매년 이 행사를 부산 울산 창원 김해 진주 등 각 도시를 돌며 개최한다면 동남권 공연예술 창작에 불이 지펴지지 않을까. 동남권에 창작의 불꽃이 타오르는 것도 먼 꿈이 아닐 것이다.
김해문화의전당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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