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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의 세설사설] “#Me Too!” 성폭력에 당한 여성들이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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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2-04 18:57:46
  •  |  본지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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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성폭력의 뿌리는 깊고도 넓다. 성범죄자는 길거리 불량배에서부터 직장인, 지식인, 권력자에 이르기까지 차고 넘친다. 성폭력에서 안전한 여성은 없다.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폭로에 많은 여성이 응원을 보내는 건 그들 자신이 바로 잠재적 피해자이기 때문 아닐까. 성폭력은 ‘일부의 문제’라는 방패막이로 합리화할 일이 아니다.


남성들도 ‘#Me Too’ 운동에 나서보면 어떨까. ‘피해 고발’이 아닌 ‘가해 고백’. 나도 이런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다는…. 그런 자기 고백과 진정한 회심 없이 ‘성폭력 문화’를 소리 높여 고발한들 위선이다. 여성들은 이제 아픈 진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 용기에 남성들의 동참이 더해진다면, 여성은 평등하고 존엄한 인격체로 거듭날 것이다.


   
‘젠더 감수성’이 특별하지도 않은 내가 남자라는 사실이 창피할 때가 있다. 처자식을 상습 폭행했거나 여자 화장실에 숨어 들어가 여성을 불문곡직 살해한 사내를 뉴스에서 볼 때 그렇다. 오죽 못났으면 처자식에게 주먹을 휘두를까, 남자에겐 시비조차 걸 용기가 없으면서 왜 여성에게만 칼을 휘두를까 싶은 거다. “에이, 못난 놈…”하고 혀를 차지만 마음이 불편하다.

이 글을 쓰는 건 최근 한 여성 검사의 성추행 피해 폭로 때문이지만 역시 마음이 편치 않다. 이유 중 하나는 나 역시 ‘잠재적 가해자’인 남성이기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이런 성폭력이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새삼 분노하기 민망하기 때문이다.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의 두려움, 수치감, 분노를 내가 얼마나 안다고 이런 글을 쓰는 걸까 하는 자의식이 고개를 쳐든다.

우리 사회 성폭력의 뿌리는 깊고도 넓다. 성범죄는 길거리 불량배에서부터 직장인, 지식인, 권력자에 이르기까지 차고 넘친다. 회식을 빙자해 여직원에게 은근슬쩍 성추행과 성희롱을 저지르는 회사 간부, 논문 통과와 강의시간 배정을 미끼로 제자에게 성폭력을 가하는 교수, 알량한 문화권력을 쥐고 등단시켜준다며 문하생을 성폭행한 시인과 소설가, 여기자의 가슴을 더듬은 국회의원…. 일일이 들먹이기도 숨차다. 성폭력의 대열엔 이념도 없다. 이름깨나 있던 진보적 시민단체 활동가가 여대생을 성추행한 적도 있지 않았던가. 여신도를 성폭행한 성직자는 또 어떻고…. 나이도 없다. 남자 대학생들은 단톡방을 열어 여성 학우를 성적으로 ‘품평’하면서 낄낄거린다.

이렇게 항변하는 남성이 많다. “어떤 사회든 일탈하는 사람이 있다. 소수 때문에 남성 전체를 도매금으로 비난하지 말라.” 글쎄, 이게 꼭 맞는 말일까. 성폭력이 오죽 보편화(?)됐어야 말이지. ‘일부’라는 방패막이로 합리화할 일이 아니지 않나.

서지현 검사의 폭로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다. 검사란 직업은 우리 사회에선 ‘권력’과 동의어가 아닌가. 그런데 검사조차도 성희롱, 성추행은 물론 성폭행까지 당하고 산다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 사회엔 성폭력에서 안전한 여성은 그 누구도 없다는 뜻이다. 서 검사의 용기 있는 폭로에 많은 여성이 열렬한 응원을 보내는 건 그들 자신이 바로 잠재적 피해자이기 때문 아닐까.

어떻게 검찰 간부란 자가 장관 앞에서 후배에게 그런 못된 짓을 했을까. 동석했던 장관은, 동료 검사들은 그때 뭐 하고 있었나. 마초끼리 똘똘 뭉쳐 “술 잘 먹고 일 잘하는 녀석인데, 뭐 그깟 일로…”하며 눈물 흘리는 여성 부하의 호소를 묵살하고 진상을 은폐한 자들은 또 누구였나. 몇 년 전 건설업자를 스폰서 삼아 룸살롱을 다녔던 검사들이 있었다. 그때 그들은 스폰서에게 이랬다던가. “이심전심으로 너와 나는 동지적 관계 아니냐, 우리의 정은 끈끈하게 유지된다.” 이심전심으로 끈끈한 정을 유지하는 동지적 관계여서 남자 후배의 성추행을 덮어줬다는 걸까.

이번 폭로에 다들 공분했던 이유는 또 하나 있다. 성추행을 한 자는 검찰국장이니 뭐니 승승장구했는데, 피해를 당한 여성 검사는 온갖 억지 꼬투리를 잡아 좌천했다는 대목이다. 주변 사람들도 계란으로 바위 치기이니 검사 계속하려면 참으라고 충고 아닌 충고를 했다니 서 검사는 얼마나 수치와 분노를 깨물며 살았을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 일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8년이 걸렸다.” 들을수록 가슴 아프다. 바로 그게 성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지배 담론이다.
직장 후배에게 술을 먹여 성폭행한 어떤 놈에 대한 기사가 실리면 우리 사회의 반응은 대개 이렇다. “성폭행한 놈도 나쁘지만, 당한 여자도 헤프네. 술 먹인다고 넙죽넙죽 받아먹나.” 도시철도에서 성추행당한 여성에겐 이렇게 혀를 찬다. “그러게 옷을 조신하게 입었어야지.”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은 성추행해도 괜찮다는 말인가. 그런 마초적,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속에서 피해 여성들은 깊은 상처를 입고 조개처럼 입을 다문다. 그리고 가해 남성들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자기들끼리 히히거린다.

서 검사가 8년의 침묵을 깬 건 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이란 자가 ‘특수활동비 돈봉투’ 사건으로 지난해 면직된 후 교회에 나가 세례받고 구원받았다며 간증하러 다니는 모습에 분노한 것도 한몫했다고 한다. 안태근은 간증에서 “억울하게 공직에서 밀려나 너무 분했는데, 하나님께 내 삶을 회개한 후 구원을 얻었다”고 했다나. 나는 오래전에 읽었던 이청준의 단편소설 ‘벌레이야기’가 떠올랐다. 영화 ‘밀양’의 원작이다.

아이가 유괴되자 엄마가 미친 듯이 찾아다닌다. 엄마의 고통을 보다 못한 이웃이 교회에 나갈 것을 권유한다. 엄마는 하나님께 아이를 찾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매달리지만 결국 아이는 주검으로 발견된다. 목사는 엄마에게 살인범을 용서해 마음의 평화를 찾으라고 권한다. 엄마는 처음엔 도리질하지만 결국엔 용서해 주려고 교도소로 면회를 간다. 그런데, 살인범은 평화로운 얼굴로 나타난다. 이미 하나님께 회개해 구원받았다는 거다. 엄마는 이렇게 외친다. “피해자인 내가 용서하기도 전에 왜 죄인이 멋대로 회개하고 구원을 얻는 거야.” 절망과 분노 속의 엄마는 결국 자살한다.

글쎄, 안태근은 하나님께 회개하고 구원을 얻기 전에 서 검사를 찾아 무릎 꿇고 용서를 빌어야 했던 게 아니었을까. ‘오래전 일이고 술에 취해 기억에는 없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면 사과한다’고? 요즘 유행어를 동원하자면, 이게 말인가, 막걸린가.

지난해 10월 할리우드 배우 알리사 밀라노에게서 비롯된 ‘#Me Too’운동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 오래전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고발을 그가 SNS에 올리자 여성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삽시간에 수십만 건의 응원 댓글이 달리고 수만 명이 “나도 피해자다”를 외쳤던 거다. 배우 기네스 펠트로, 안젤리나 졸리, 가수 레이디 가가, 체조 금메달리스트 맥케일라 마루니도 동참했다. 더스틴 호프만 같은 유명 배우, 영화감독, 방송계의 거물 앵커 등등이 줄줄이 고발당했다.

서 검사의 폭로를 계기로 한국에서도 ‘#Me Too’ 운동이 거세질 것이다. 그의 용기가 묻히지 않도록 많은 여성이 가세했으면 한다. ‘유리 천장을 깬’ 여성들이 용기를 내면 파급효과가 더 클 거다. 하지만 여성들의 피해 고백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진정으로 이런 문화를 부끄럽게 느낀다면 남성들도 ‘#Me Too’ 운동에 나서보면 어떨까. ‘피해 고발’이 아니라 ‘가해 고백’이다. 나도 이전에 이런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다는…. 그런 자기 고백 없이, 진정한 회심 없이 ‘성폭력 문화’를 소리 높여 고발한들 위선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런 소릴 하는 너는 어쨌는데?” 하고 되묻겠는가. 고백하겠다. 나는 옛적 기자 시절 선배나 취재원을 따라 여성이 술 시중을 드는 술집을 몇 차례 드나든 적이 있다. 소속사 매니저와 ‘성폭행 노예계약’을 맺은 어떤 가수의 동영상이 불법 유출됐을 때 후배의 노트북에 깔린 그 동영상을 눈을 빛내며(?) 지켜본 적도 있다. 그때 나는 왜 아무 생각 없이 술집에 따라갔을까. 왜 불법적이고 비인간적인 동영상을 촬영해 배신(?)의 방패막이로 써먹는 연예계의 못된 관행에 분노하고 고발하지 않았을까. 왜 후배에게 “그런 동영상일랑 당장 삭제하라”고 호통치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등에 진땀이 날 노릇이다. 그러니 나도 공범자다.

그 자신이 성폭력 피해자인 미국의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는 최근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실은 우리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용기 있게 털어놓은 여성들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동안 진실을 말하기 힘들었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습니다. 힘든 시간을 견뎌낸 모든 여성에게 감사합니다.”

   
그렇다. 여성들이 이제 아픈 진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여성들의 용기에 남성들의 동참이 더해진다면, ‘이 지구상의 절반의 사람’인 여성이 평등하고 존엄한 인격체로 거듭날 것이다. 한국에선 서지현 검사가 그 첫발을 디뎠다.

소설가·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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