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한때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중심 무대였다. 1960년대는 전쟁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어갈 즈음이다. 그 즈음은 으레 지긋지긋한 전쟁의 기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발생한다. 그동안 유보했던 삶의 여유를 찾으면서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낭만을 꿈꾸는 것이다. 그 시절 낭만의 키는 항구, 부두, 마도로스 같은 바다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전쟁으로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대륙의 진로가 막혔고, 이상 세계를 향할 수 있는 곳은 바다뿐이었다. 그 바다의 중심이 부산이니 당연 부산항을 무대로 한 수많은 노래가 쏟아져 나왔다. 경북 산골에 살았던 필자 또한 그런 노래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부산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게 되었다.

나중에 막상 부산에 살고 보니 내가 동경했던 낭만적 부산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뱃고동 소리가 배경으로 깔리는 거리는 넘실대는 파도처럼 낭만으로 흥청대는 그런 도시가 아니었다. 내가 쓰는 소설 속에서도 부산이라는 지역이 가져다주는 어떤 도시적 분위기(창작 에너지)는 큰 의미가 없었다.

부산에는 예술가뿐 아니라 모든 시민이 사랑할 낭만 도시가 될 요소가 많다. 하지만 그것을 잘 살려나가지 못해서 안타깝다. 한 도시가 낭만적 분위기를 형성하려면 우선 운치가 있어야 하고, 운치는 전통 같은 오래된 미학들이 살아 움직여야 한다.

하나. 노래비.

부산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일 수 있는 6·25전쟁의 기억을 재생하는 유무형의 유산이 많다. 특히 대중가요 사상 최고의 히트 작품으로 꼽히는 ‘이별의 부산정거장’과 거기에 버금가는 ‘굳세어라 금순아’는 전후 한국인의 정서가 가장 잘 녹아 있는 불후의 명곡이다. 그 노래들은 부산의 긍지이고 정체성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말 기념비적인 노래이다. 그러기에 당연히 부산에서 기념해야 하고 후세들도 공유하게 해야 한다.

‘이별의 부산정거장’ 노래비를 부산역에 세워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노래비뿐 아니라 부산역 시그널 음악으로 해야 한다. 멀리서 기차를 타고 부산역에 도착할 즈음이면 그 노래가 나와야 한다. 그 노래를 들으면 비로소 “아, 부산이구나!”하는 상징과도 같은 노래가 되어야 한다.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비도 영도다리에 세워야 함은 말할 필요가 없다. 기왕 영도다리는 도개교 전통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예산을 투여했다. 그러나 다리만 옛날처럼 번쩍 들면 뭐하나. 거기에 따른 해프닝들이 필요하다. 가장 절실하고 실감나는 것이 다리를 들 때마다 그 주제곡이랄 수 있는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가 나와야 한다. 젊은 세대들도 자꾸 들으면 귀에 익어서 좋아하게 될 것이다.

둘. 카페 기차.

동해남부선 폐선 활용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방치 비슷한 보존의 길을 가는 것 같다. 대한민국 최고의 승지에 깔린 기찻길을 그냥 녹슨 채 방치한다는 것은 너무 대책이 없고 무책임하다. 철길에 한두 칸짜리 카페 기차를 운영하면 어떨까. 미포에서 출발해서 송정까지 아주 느리게 다니면, 움직이는 기차 카페에서 맥주나 차를 마시며 대한민국 제일의 경관을 구경할 수 있는 그야말로 낭만의 극치를 연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중간에 청사포역과 추리문학관역사를 짓고 잠시 쉬었다 갈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부산을 대표하는 온천장과 태종대를 포함한 영도에 노면전차가 다니면 어떨까. 부산이 부산다워지려면 그런 곳에 한국 유일의 노면전차 정도는 다녀야 되지 않을까.

셋. 피난수도 부산과 밀다원 다방 복원.

‘피난수도 부산’의 유산이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조건부로 등재됐다. 부산시는 최근 문화재청 심의를 거쳐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이 대한민국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조건부로 등재됐다고 밝혔다.

최근 부산소설가협회와 김동리기념사업회에서 주관하는 ‘밀다원 시대 문학제’가 4회째 열리고 있다. 김동리 소설 ‘밀다원 시대’는 피란 시절 부산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다. 소설의 주무대인 ‘밀다원’ 다방이 복원되어야 한다. ‘밀다원’ 다방을 복원한다는 것은 살아 있는 사업이다. 단순히 과거의 공간만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과 상황을 그대로 돌려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피란 시절 유물이나 전시해서 둘러보고 사진이나 찍는 그런 사업이 아니다. 그 시절의 문화 공간을 오늘날에 재생하여 오늘의 문화와 융합하는 것이다. 그 다방에 가면 피란 시절 소설가 김동리 오영수 김말봉도 만날 수 있고, 시인 박인환이나 화가 이중섭을 만날 수 있고. 국민 애창 가곡 ‘보리밭’의 박화목과 윤용하도 만나고, 한 잔의 술을 마시고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할 수도 있는 그런 공간이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