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꼭 닫았는데도 칼바람이 문틈을 비집고 들어와 콧등을 콕콕 찔렀다. 어느새 칼바람은 방안을 점령해 버렸다. 두꺼운 솜이불을 뒤집어써 봐야 소용이 없었다. 미지근하던 아랫목도 써늘해진 지 오래였다. 온몸에 한기가 느껴졌다. 아무래도 연탄불이 꺼진 것 같았다. 방문을 열자 찬바람이 이때다 싶게 물밀듯 방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캄캄한 뒤꼍으로 돌아가 아궁이를 바라보았다. 뚜껑을 여니 저녁때 갈아 놓은 연탄은 두세 개 구멍만 불이 붙는 듯 꺼졌는지 썰렁한 기운이 감돌았다. 번개탄이라도 지펴야 할 것 같았다.

성냥을 그어 대자 번개탄은 이름 그대로 로켓 쏘아 올릴 때처럼 치지직 소리를 내며 꽁무니에서 불길과 연기가 치솟았다. 추석 때나 정월 때 터트리던 폭음탄, 번개탄 같았다. 갑자기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겨우 번개탄 구멍에 연탄구멍을 맞추고 불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한참이 지났다. 방바닥에 온기가 느껴졌다. 불이 살았나 보다. 그러나 방은 위풍이 세서 그런지 입김을 “호호” 불면 안개가 담배 연기처럼 흩어졌다.

온돌방의 아랫목은 발을 올려놓을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울 때도 있었다. 어쩌다 잘못해서 아랫목에 발등을 문지르면 데기도 했다. 아랫목이 절절 끓으면 어머니께서는 아랫목에서 청국장을 쑤고 떫은 감도 익혔다. 이따금 내가 방바닥이 너무 뜨겁다고 해도 어머니께서는 언제나 아랫목에 두꺼운 솜이불을 깔아 놓으셨다. 그래야 방구들이 식지 않는다고 하셨다.

어머니께서는 어쩌다 아버지께서 늦게 오시는 날에는 뜨거운 밥을 주발에 담아 아랫목에 놓아두셨다. 어떤 때는 이불 속에서 형과 발장난을 치다가 밥주발을 넘어뜨려 밥이 방바닥에 뒹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우리는 어머니께 들키지 않으려고 잽싸게 밥을 주발에 다시 담아 두기도 했다. 손에 붙은 밥알을 떼어먹으며 말이다. 아랫목은 보온밥통 이상으로 따뜻한 밥을 선사했다. 아랫목에서 꺼낸 밥주발의 뚜껑을 열면 금방 해 온 새 밥처럼 김이 모락모락 났다. 때로는 밥이 눌어붙어 밥주발에 누룽지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연탄을 갈 때가 되면 우리 형제는 서로 “네가 가서 갈아라”고 등을 떼밀었다. 그러다 보면 연탄 가는 일은 언제나 내 차지가 되었다. 형제 중에는 막내였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낮에 연탄 가는 일은 어려움이 없었지만 밤이나 새벽에 연탄 가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야 어머니께서 그 일을 다 하셨지만 커서는 모두 우리들 몫이 되었다. 더구나 방학 동안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날마다 똑같은 시간에 해야 하니 연탄 가는 일은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연탄불이 꺼지고 번개탄도 없으면 그것처럼 난감한 일도 없었다. 위풍이 심하던 우리 집에서 연탄불이 활활 탈 때까지 견딘다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우리 집에는 방이 세 개 있었는데 모두 아궁이가 따로 있었다. 하나는 연탄을 쟁여 두는 광에 있었고, 다른 하나는 네루식 아궁이로 마당 끝에 있었다. 또 다른 하나는 부엌에 있었다. 부엌에 있는 아궁이에 연탄 가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컴컴한 새벽 마당에 있는 네루식 아궁이에 연탄을 갈 때는 네루 꽁다리에 꼬챙이를 걸지 못해 애먹기 일쑤였다.

광에 있는 아궁이에서는 연탄을 옮길 수고는 덜 수 있었지만 연탄 때문에 빛이 숨어들어 아궁이가 어디에 있는지 감지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광에 갈 때는 손전등을 가지고 갔다. 어쩌다 손전등의 전지가 다하면 난감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겨우 아궁이를 찾아 뚜껑을 열면 시퍼런 불꽃이 일렁이는 연탄불이 광을 환하게 비추었다. 그러면 나는 내 키보다 높게 쌓아 놓은 연탄 더미에서 이따금 구멍을 맞추지 못해 깨트리는 일도 있었지만 조심해서 연탄을 꺼낼 수 있었다. 연탄재를 꺼내고 새 연탄을 불꽃이 일렁이는 연탄구멍에 맞추어 덮으면 광은 금세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빛이 사라지고 눈앞이 갑자기 캄캄한 어둠 속으로 빠졌을 때의 기분이란. 세상이 온통 시커멓게 변한 것처럼 무섭고 섬뜩하기가 그보다 더한 것은 없었다.

지금도 온돌방 아랫목은 절절 끓고 있다. 배를 쭉 깔고 누워 있는 나의 머릿속은 연탄을 때서 절절 끓는 아랫목이 아닌 태양열로 절절 끓는 아랫목이 되었으면 하는 상념으로 뒤숭숭하기만 하다. 지난 세밑에는 늘 그랬듯 산동네, 달동네 사는 어려운 분들에게 사랑의 연탄을 나르던 방송이 유난히 뜸했던 것 같다. 그만큼 경제가 어렵다는 말일 거다. 아직도 연탄을 때는 집들에서는 희망의 연탄이지만 연탄을 추억으로 간직한 사람들에게는 그리운 연탄이기도 할 텐데. 연탄으로 이 겨울을 나는 사람들에게는 삶의 연탄이기도 한데 말이다.

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