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통이 깨지면 두 곳이 분주해졌다. 산통의 유래와 맞닿는 이야기다. 하나는 점집. 점치는 데 쓰는 산가지를 넣어두는 통이 산통(算筒)이다. 산통점(算筒占)은 괘를 새긴 산가지를 산통에 넣고 흔든 뒤 집어내 길흉화복을 판단한다. 산통이 깨졌다면 점쟁이는 밥줄을 잃은 셈이다.
또 하나는 산통계가 이뤄지던 여염집. 목돈을 마련하고자 계원을 조직한 것이 산통계(算筒契)다. 계원들은 순서를 정해 추렴한 곗돈을 탄다. 계알을 산통에 넣고 뽑는 방식이다. 계원 이름을 쓴 나무 조각이 계알이고, 이를 넣는 통이 산통이다. 모든 계원이 한 번씩 큰돈을 만질 수 있다면 해피앤딩이다. 하지만 계주가 야반도주라도 할 땐 벌집 쑤신 듯 계원들 집이 시끄러워질 수밖에.
다 되어 가던 일을 이루지 못하게 망치거나, 일이 뒤틀리는 ‘산통 깨다’ ‘산통 깨지다’는 말이 이렇게 생겼다.
가상화폐를 다루는 정부 정책은 기대 이하다. 장관 발언을 청와대가 180도 뒤집었다. 정부 대책이 발표에 앞서 유포되는가 하면 정부 컨트롤타워에 파견된 금융감독원 직원이 가상화폐 투자 수익을 챙겼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엇박자에다 불신을 부추긴 일이 이뿐만 아니다. 이래서야 영이 제대로 서겠느냐는 비난을 자초했다.
지난해 12월 11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대응 방안을 검토했다. 이날 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의 주례 오찬회동에서도 관련 논의가 있었다. ‘엄중한 인식’ ‘불법행위’ 등 청와대 브리핑에서 읽히듯 정부의 가상화폐 규제 드라이브가 시작된 시점인 듯하다.
지난달 13일에는 가상화폐의 투기 과열과 가상화폐를 이용한 범죄 행위를 막기 위한 정부 긴급대책이 나왔다. 이 같은 방침은 지난달 28일 가상화폐의 거래소 폐쇄를 위한 특별법 제정 검토로 한 발 더 나갔다.
그런데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지난 11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 특별법안을 내는 것에 부처 간 이견이 없다”며 초강경 대응 방침을 내놓고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가세하자 상황이 급변했다. 정부 대책을 예의주시하던 투자자들이 들끓었다. 급기야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확정된 사안은 아니다”며 진화에 나섰다.
정부는 지난 15일 ‘가상화폐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발표했다. 거래소 폐쇄와 관련한 충분한 협의, 가상화폐 실명제 추진, 시세조작·자금세탁·탈세 등 불법행위 엄정 대처가 핵심이다. 불씨는 여전했다. 다음 날인 16일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도 살아 있는 옵션”이라고 언급하자 또 투자자들이 흔들렸다.
이 과정에서 지난달 13일 긴급대책 보도자료가 관세청 직원의 메신저 공유 탓에 사전 유출됐으며, 지난 15일 정부 입장도 사전 유출된 사실이 확인됐다. 더 한 건 가상화폐 정책 컨트롤타워인 국무조정실에 파견된 금융감독원 직원이 가상통화에 투자해 700만 원의 수익을 올렸다는 내용이다. 그가 수익을 낸 시점은 지난해 12월 11일로 ‘긴급대책’ 발표 이틀 전이었다. ‘국민이 하면 투기고 국가기관이 하면 투자’냐는 힐난이 쏟아졌다.
정부 정책은 실기한 측면이 있는 데다 헛발질로 불신을 키웠다. 우리나라는 세계 3위 가상화폐 거래국인 데다 국제 시세보다 30~50% 비싼 ‘김치 프리미엄’이 붙어 있다. 300만 명 이상이 가상화폐 시장에 뛰어들어 24시간 시세 변동을 지켜보는 상황이다. 총량이 2100만 개로 한정되어 있고 소수점 여덟 자리까지 분할 가능한 비트코인 가격이 1년 새 2000% 이상 올랐다. 그런데도 주식시장처럼 급반등을 조정할 장치가 아무것도 없다. 정부는 그동안 뭐했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거래소 폐쇄에 꽂혀 있는 듯하지만 해외 거래소 이용이나 개인 간 거래까지 막지는 못 한다. 아직 가상화폐, 암호화폐, 가상통화 등 개념 정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가상화폐 이상과열 현상 뒤에 올 것이 뭔지 정부도 두렵다.” ‘질서 있는 퇴장’을 고민하는 이 총리의 육성이다. “가상화폐는 법정화폐가 아니고, 큰 폭의 가격 변동, 투자 사기, 거래소 해킹 우려를 수차례 경고했음에도 상당수 가상화폐 국내 시세가 해외보다 지나치게 높고, 묻지마 투기까지 기승을 부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 정부 입장이다. 규제는 맞다. 그렇다고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울 순 없다.
그래서 더 아쉽다. ‘아귀다툼하다 산통 깬다’는 말이 떠올라서다. 청와대 관계자는 ‘강원랜드에 300만 명 가까이 몰려 있다’고 가상화폐 시장을 묘사했다. 그들 대부분이 ‘가상화폐가 유일한 탈출구’라는 대한민국의 2030세대다. 이들이 아귀다툼하는 것으로 치부한 것은 정부다. ‘질서 있는 규제와 질서 있는 퇴장’은 당연히 정부 몫이다.
논설위원 jsdo @kookje.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