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를 읽는 것일 터이다. 전문가든 비전문가든 그 틀을 벗어날 순 없다. 하지만 때론 읽지 않고 보거나 듣고도 시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영화 ‘패터슨’이 그런 경우다. 이 영화는 상영 한 달째인 지난 20일 현재, 저예산 비상업 영화에 적용되는 흥행 성공 기준치(관객 2만 명)의 배를 훌쩍 넘긴 5만2000여 명을 동원하며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패터슨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그 힘은 “삶의 아름다움이란 대단한 사건이 아닌 소소한 것들에 있다”는 지론을 영화로 구현한 짐 자무시 감독의 연출에 있다. 그는 영화에서 미국 뉴저지주 패터슨시의 버스 운전기사로 일하며 시를 쓰는 주인공(패터슨)을 통해 시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은 성냥갑, 잠든 아내의 모습, 버스 승객들, 퇴근길 소녀와의 조우 등등. 패터슨은 평범한 사물과 사건들을 시에 담아 생기를 불어넣는다. 일상의 재발견. 자무시 감독이 말하는 시론(詩論)이다.

‘차가운 눈 위의 햇살/봄의 첫날/혹은 겨울의 마지막/내 다리는 계단을 뛰어올라/문 밖으로 달리고/나의 상반신은 지하 서재에서 시를 쓰네’. ‘여기 세상에서 가장/아름다운 성냥이 있어요/차분하고도 격렬하게/오롯이 불꽃으로/타오를 준비가 되어/사랑하는 여인의 담배에/불을 붙일지도 몰라요/난생 처음이자 앞으로도/다시 없을 불꽃을’. 나직한 목소리로 전해지는 패터슨의 시들은 봄바람이 되어 관객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자무시 감독의 시선은 패터슨시에서 소아과 의사로 일생을 보낸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1883~1963)의 시 세계를 좇아간다. ‘많은 게/놓여 있다//빨간 바퀴/손수레에//빗물에 젖어/빛나는데//그 곁에 흰/병아리들’. 스냅 사진처럼 일상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사물주의(objectivism)’를 추구했던 윌리엄스는 ‘패터슨’이라는 제목의 서정시집을 남기기도 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애완견이 자신의 시 습작 노트를 물어뜯은 뒤 실의에 젖어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패터슨에게 윌리엄스의 흔적을 찾아온 한 일본 시인이 새 노트 한 권을 선물한다. “때론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라는 말과 함께. 끊임없이 변하는 사물처럼 늘 새롭게 쓰야 하는 게 시라는 메시지다. 비단 시뿐일까. 인생 또한 그럴 것이다. 잘 만든 영화 한 편이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