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가덕도를 만난 것은 더위가 한창이던 여름이었다. 가덕도 주민 30명을 인터뷰하고 책으로 만드는 프로젝트가 결정되고 나서부터 사흘에 한 번은 집에서 한 시간 반이나 걸리는 길을 달려 가덕도에 ‘들어가야’ 했다. 강서구의 일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뭍으로 나오는 일을 ‘부산 간다’라고 표현했다. 오랫동안 경상남도의 일부였던 섬은 정서적으로 아직 부산이 아니었다. 내가 할 일은 팔십이 넘은 노인들을 만나 옛 가덕도의 모습을 되살려 빚는 일이었다.

가덕도엔 노인들도 연애 결혼한 일이 흔했다. 거가대교가 놓이기 전엔 가덕도 안에서 마을을 이동하는 것조차 배를 타야 했으니, 소학교 동창이나 옆집 오빠들과 서먹한 눈길을 나누다 혼례를 치르는 일이 다반사였다. 여성 노인들은 대부분 남편을 앞서 보냈고, 평생 한 물질로 여태 건강한 몸을 유지하며 한 집에 한 명씩 살고 있었다. 남중마을에서 통장님을 따라 들어간 어느 집에서 김천대 할머니를 만난 것은 가덕도에 출입하기 시작한 지 두어 달 지나서였다. 작가가 인터뷰를 한다는 말에 연신 손사래를 치던 할머니는 결국 집으로 나를 안내했고, 마주 앉아 녹음기를 켜고 까만 두 눈을 응시하자 긴긴 세월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어머니가 삼은 짚신을 신고 다녔던 어린 시절 이야기, 한겨울에도 우물물에 빨래를 하며 손이 얼어 터졌던 이야기, 아이를 서너 명 낳는 동안 물질을 쉰 적이 별로 없었다는 이야기는 다른 할머니들의 입에서도 똑같은 패턴으로 흘러나오던 터라 나는 차츰 무뎌지는 중이었다. 따뜻한 온돌에 잠냄새가 조금씩 풍겼고, 할머니는 몇 번이나 한참 입을 다물고 팔십 해 너머 기억 어딘가를 더듬었다. 그러다 문득, 할머니는 죽은 남편을 처음 만난 순간을 기억해냈다.

우리 할배가 여수 사람이라. 친구들하고 배를 타고 다 같이 먼 데 물질을 나갔는데 배에서 만나가, 그래 뭐 좋아가지고 연애를 했지. 인물도 좋고, 키도 크고. 일천구백오십몇 년에, 여수에서 뱃일을 하던 총각은 가덕도의 키 작은 해녀에게 반했다. 그는 아내를 따라 가덕도로 왔고 가덕도 바다에서 평생 고기를 잡았다. 섬 밖으로 여행 한 번 못 나가는 일이 흔했던 다른 부부들과는 달리 김천대 할머니 부부는 자주 여행을 다녔다. 앨범 속엔 정장을 차려입고 지리산으로, 속리산으로 여행을 다닌 사진이 가득했다. 세월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고 서로 바짝 다가앉아 늙어가던 어느 날, 할배는 급성 폐렴으로 의식을 잃었다. 갑자기 고열이 끓더니 정신을 놓아버렸고, 용원에 있는 병원에서 한 달 동안 숨만 붙어 있다 저세상으로 갔다고 했다.

할머니는 머뭇거리다, 소녀처럼 붉어진 뺨으로 마지막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내가, 할배한테 꼭 듣고 싶은 말이 있었거든. 그게 뭔가요? 내 만나서 고생 많이 했다고…, 참 고생 많이 하고 살아서 미안하다고…, 그 말이 듣고 싶어서 맨날 병원에 갔다고. 아침에 물질하고 미역 널어 놓고, 저녁때 되면 마을버스 타고 용원에 가서 할배 침대 옆에 쪼글치고 자면서 하모 그 말을 할까, 하모 그 말 할까 얼매나 지다��는지 모른다. 그런데 말을 못 하대. 깨나지도 않고, 눈도 몬 뜨고, 할배, 할배 불러도 대답도 몬 하고…. 할머니는 울지 않았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울고 말았다. 그 한마디가 듣고 싶어서 매일 밤 병원에서 밤을 지새운 아내는 결국 듣지 못한 말을 되뇌면서도 덤덤했다. 키 크고 잘생겼던 남자, 나와 함께 노동을 하며 하루하루 늙어간 동료, 아이들의 아버지, 함께 여행을 다닌 가장 좋은 친구가 세상을 떠날 때 듣고 싶었던 말이 그것뿐 일까. 만약 할아버지가 깨어나 그 말을 해줬더라면, 할머니는 한사코 아니요, 아이라요, 하며 도리질을 쳤을 것이다. 당신 사느라 수고했어요. 아니요, 당신이 더 수고했어요. 하는 짧은 한마디로 쑤욱 내려놓을 수 있는 체증은 세월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섬 처녀에게 반해 그 먼 물길을 헤쳐 온 사내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었다. 그러나 삶의 절정은 언제나 흔적을 남긴다. 푸른빛이든 분홍빛이든 인간을 스치고 지나가는 날개는 깃털 두어 개는 떨어뜨리기 마련이고 남은 사람은 속절없이 그것을 줍는다. 품 안에 넣을 것인가, 바람에 손을 내밀어 마저 흩어지길 기다릴 것인가는 남은 자들의 숙제다. 스토리텔링을 직업으로 선택한 이후 많은 이야기를 통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 깊은 이야기를 다 껴안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저 쓸어 모았을 뿐이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