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戰爭史)의 치명적 매력 중 하나는 ‘재미있다’는 점이다. 전쟁은 비극이지만, 전쟁사의 주요 장면들은 박진감이 넘친다. 그 명장면들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요소가 바로 기상천외한 전략과 전술이다. 그런 전략 전술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것 중 하나가 ‘배수진(背水陣)’이다.

‘물을 등지는 형태의 군진’을 일컫는 배수진은 퇴로를 차단시킴으로써 전멸의 위험이 크기 때문에 병법에서는 일반적으로 금기시한다. 그런데 간혹 금기의 심리를 역이용한 대역전극이 벌어진다. 이것이 바로 배수진의 묘미다. 이런 기적은 대체로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는 공포감과 ‘그렇다면 목숨을 걸고 싸워 살 길을 찾자’는 정신무장이 조화됐을 때 일어난다.

그런데 상대의 전력이 압도적일 때 과연 이런 의지력만으로 승리할 수 있을까. 배수진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일컬어지는 중국 초한(楚漢)전쟁기의 천하명장 한신(韓信·기원전 230~196년)에게 물어도 그 대답은 즉각 “아니요”라고 돌아올 것이다. 실제로 사기(史記) ‘회음후열전’에 따르면 조나라 정벌에 나선 한신은 1만 명의 군사로 20만이 버틴 요새를 함락시키지 못하자, 유인책으로 배수진을 친다. 물론 그 전에 미리 2000명의 별동대를 조직, 성문 주변에 매복시켜 놓는다. 조나라 군이 방심하고 성문을 열고 나오자 한신의 본대는 슬슬 후퇴하며 죽기살기로 버티고, 그 사이 별동대가 텅 빈 요새를 점령해버린다. 순식간에 ‘집’을 빼앗긴 조나라 군은 크게 낙담한 데다 앞뒤에서 협공까지 당해 결국 대패한다.

한신의 배수진은 결국 ‘숨겨둔 한 수’가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반면 임진왜란 초기 신립 장군의 충주 탄금대 배수진은 지형지물 이용에도 서툴렀고 ‘숨겨둔 한 수’도 없었기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제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검찰수사는 보수 궤멸 노린 정치 공작이고 노 전 대통령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다. 나에게 책임을 물어라”며 현 정권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이를 두고 ‘MB의 배수진’이라는 논평이 많다. 심리전을 겸한 배수진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런데 어제 문재인 대통령이 “분노”를 표출하면서 확전되는 형국이다. 병법에서는 상대 전력이 압도적일 때 함부로 배수진을 쳐서는 안 된다고 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MB가 ‘한 수’를 숨겨 두고 배수진을 친 것인지 ‘사면초가에 몰린 항우의 외마디 외침’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전쟁’은 흥미진진하게 됐다.

이승렬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