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도 측근들과 공모해 국가정보원으로부터 거액의 특수활동비를 상납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사실이라면 국가 수반이 안보와 관련한 정보 활동에 써야 할 돈을 사적으로 유용한 중대 범죄인 만큼 이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게 마땅하다.

검찰은 어제 이 전 대통령의 측근들인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과 김진모 전 민정2비서관을 구속했다. 김 전 기획관은 2008년 2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김성호·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서 특수활동비 각 2억 원씩 모두 4억 원을, 김 전 비서관은 2011년 5000만 원을 받은 혐의가 적용됐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건 김주성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이 2008년 2억 원을 상납한 뒤 이 전 대통령을 독대하며 “국정원 돈이 청와대에 전달될 경우 사고가 날 수 있다”는 보고를 했다고 검찰에 진술한 점이다. 상납이 이 전 대통령의 묵인 아래 이뤄졌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류우익 당시 대통령실장도 “독대가 있었던 것은 맞다”고 검찰에 털어놓으며 그 진술을 뒤받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통령 청와대에 대한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다.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도 1억 원을 받아 이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를 보좌하는 행정관에게 전달한 혐의로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른 상태다. 김 전 실장은 특수활동비를 달러로 바꿔 이 전 대통령의 미국 순방 직전 청와대에 건넸다는 진술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어제 기자회견을 자청해 “검찰 수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한 구체적인 반박은 없었다.

법원은 김 전 기획관 등의 영장실질심사에서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며 혐의를 인정했다. 이 전 대통령과 측근들의 뇌물수수 공모 의혹이 사실일 개연성이 높은 이유다. 이 전 대통령은 떳떳하다면 내용 없는 부인에 그칠 게 아니라 검찰 조사에 당당히 응해야 한다. 그게 전직 대통령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