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띠인 그는 말을 아꼈다. 매사에 적극적인 성질에 건강한 기백을 닮고 싶었을 터. 그는 말을 형상화한 사인으로 작품을 마무리했다. 일필휘지한 듯한 간결한 필치에 힘이 느껴진다.

남장(南藏) 김종식(金鍾植·1918~1988) 화백 이야기다. 남장은 부산 미술 여명기를 개척한 1세대 토박이 작가이자 교육자다. 부산 동래에서 태어나 동래공립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교)와 일본 도쿄제국미술학교(현 무사시노 미술대학)를 졸업했다. 송혜수 장욱진 등이 동기다. 부산으로 돌아온 남장은 1953년 서성찬 김영교 김윤민 임호 김경 등과 함께 ‘토벽동인전’ 활동을 했다. ‘우리 민족의 생리적 체취에서 우러나오는 허식 없고 진실한 민족미술을 추구하겠다’는 목소리가 당당하다.

남장은 600여 권의 스케치북, 드로잉과 유화 2만여 점을 남길 만큼 왕성한 작품 활동과 함께 후학을 기르는 데도 힘썼다. 그만큼 품이 넓고 깊다.

‘손은 그의 영혼을 대신하여 움직였다. 영혼의 황홀한 전파를 손으로 전달받아 그리고 지우고 또 문질렀다. 끈적거리는 색채들을 마치 교향악처럼 울리어 놓을 줄 알았다. 잠자기 전까지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영혼이 쉬지 않은 까닭이다. 찬란한 손은 지금도 살아 움직이고 있다’. 1994년 범어사 기슭인 부산 금정구 청룡동 하마 마을에 세워진 ‘김종식 그림비’에 새겨넣은 글이다. 국제신문 논설주간을 지낸 고 김규태 시인이 썼다. 김 시인은 남장의 고교 후배다.

김환기 장욱진 유영국 등 근현대미술 개척자와 어깨를 겨루던 남장은 지역이라는 한계 등으로 한국 미술사에서 제대로 그 위치를 확보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올해 남장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존재 의미를 가늠하고 예술성을 회고하며 부산 문화의 젖줄로 삼으려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진다.

그 첫걸음으로 ‘사단법인 金鍾植미술관’ 창립총회가 어제 열렸다. 남장의 장남인 김헌 씨가 이사장을 맡은 이 사단법인은 행정절차가 끝나는 다음 달부터 남장의 작품세계를 재평가하는 전시회 및 출판, 김종식미술상 제정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기로 했다. 부산시립미술관도 ‘김종식 화백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오는 4월 개최한다. 부산 부산진구 연지동 김종식기념관은 김종식미술관으로 재단장해 시민을 맞는다. 남장을 오늘에 되살리는 건 부산의 몫이다.

정상도 논설위원 jsdo@kookje.co.kr